20.11.18(수)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내와 첫 연락을 했다. 아내는 장모님을 만나러 나왔다고 했다. 지난주에도 몇 번, 아내에게 만나자는 의중을 비추셨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제 아내도 꽤 바쁘다. 아니, 이제라고 하기에는 원래도 너무 바쁘지. 피할 수 없는 일정이 더 생겼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멀리 대화역에서 만났다고 했다. 밥도 먹고 카페도 간다고 했다. 아내에게 코로나 확진자 추이가 다시 증가세로 접어들었고, 300명이 넘었다는 걸 알려줬다. 우리도 조금 더 조심하자는 뜻으로. 다행히 아내가 간 식당과 카페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축구도 안 가기로 했다. 운동장 대관이 막힌 건 아니었다. 축구는 하되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다. 마스크 쓰고 운동하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 정도면 안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그동안 축구하러 간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좋지 않게 볼 수도 있지만.
아내는 나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 중단된 것을 나보다 더 아쉬워했다. 아니, 사실 내가 더 아쉬웠다. 엉엉. 아내 앞에서 내색을 안 했을 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시윤이를 훈육하고 있었다. 아내의 표정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안 그런 날을 찾는 게 더 빠를 요즘이지만. 소윤이는 식탁에 앉아 한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빠. 타자가 뭐에여?”
“타자? 옛날에 타자기라는 게 있었는데. 음, 아빠 컴퓨터 하거나 노트북 할 때 손으로 키보드 쳐서 글씨 쓰잖아. 그런 걸 타자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이런 그림이 있어여?”
한 남자가 야구 방망이를 든 그림이었다.
“아. 그 타자. 야구할 때 공 던지는 사람을 투수라고 하고 공을 치는 사람을 타자라고 해. 같은 단어여도 여러 뜻이 있는 것도 많아”
서윤이는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부터 엄청 격렬하게 파닥거리더니 나에게로 기어왔다. 맙소사. 이렇게 적극적인 몸짓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고 좋아서 조금 더 멀리 앉아봤는데, 역시나 휙휙휙휙 기어 와서는 내 다리를 짚고 올랐다. 안아주면 좋아하고. 다시 내려놓고 멀리 도망가면 쫓아오고. 드디어, 이런 날이 왔구나.
“아빠. 우리한테는 서윤이 기분 좋을 때 안아주지 말고 그냥 놀게 놔두라고 했으면서 아빠는 왜 안아줘여?”
“아니야. 아빠가 안아준 게 아니라 얘가 온 거야. 아빠는 가만히 있었어”
그렇게 기분이 좋다가도 자기 혼자 바닥에 남고, 모두 식탁에 앉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칭얼거렸다. 그것도 꼭 식탁 밑으로 와서. 서윤이를 안아서 허벅지에 앉혔다.
“그랬구나. 서윤이가 혼자 바닥에 있는 게 싫었구나. 그래, 서윤이도 같이 먹자”
그러고서는 나머지 한 팔로 밥을 먹었다. 서윤이에게도 한 번씩 밥알을 먹여줬다. 잘 먹는가 싶더니 이내 짜증을 내며 몸을 비틀었다. 오늘도 나의 공감은 거절당했다.
밤에 씻길 때마다 소윤이의 앞니를 확인한다. 얼마나 흔들리는지. 사실 잘 모른다. 얼마나 흔들려야 빼야 하는 건지. 그건 잘 몰라도 빼야 하는 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는 건 느껴진다. 슬프게도.
“아빠. 이빨 빼는 게 왜 슬퍼여? 내가 너무 많이 커서?”
“어. 소윤이가 너무 빨리 큰 거 같아서 슬퍼”
“잘 크면 좋은 거져”
“맞아. 감사한 건데, 그래도 빨리 크면 아쉽기도 해”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단다.
아내는 오늘도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나왔다. 다른 날에 비하면 금방 나온 편이었다. 얘기도 하고, 각자 할 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잘 시간이 되어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가 안 보였다. 텅 빈 거실의 식탁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내며, 카톡을 했다.
“깜놀”
“호출당함”
나도 들어갔을 때는 다 자고 있었다. 조금 자세히 서윤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깰까 봐 용기를 내지 못했다. 보기는커녕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안 내려고 도둑처럼 조심히 누웠다.
그래도 고마워, 서윤아. 아빠에게 와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