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9(목)
아내와 아이들이 별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늘도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다 같이 모이는 화요일만큼 버거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고됨 기본치’가 늘 존재하는, 애 셋과의 외출. 아내의 건투를 빌었다.
그러고서는 하루 종일 연락을 못하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연락을 했다. 그때도 아내는 저녁 준비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통화하지 못했다. 홀로 아이 셋을 보는 시간 가운데, 여유롭고 바쁘지 않은 시간이 있을까 싶다.
서윤이는 어제처럼 퇴근하는 날 반겼다.
’아으, 저걸 어떻게 하지 저걸. 막 깨물고 싶은데’
그런 서윤이를 보는 나의 심정이랄까. 첫째와 둘째가 눈치챌까 봐 드러내놓지는 못하지만.
“아빠. 우리 삼촌 만났어여”
“아, 그랬어? 삼촌도 만났구나”
처치홈스쿨 모임 마치고 형님(아내 오빠)도 만났나 보다. 시윤이는 뭐가 불만인지 입이 한 접시는 나와가지고, 온 얼굴로 티를 냈다.
‘아빠. 나 지금 기분이 나빠요’
“시윤이가 기분이 나쁜가 보네. 왜 그래?
“(뚱)”
“말 안 하고 싶어?”
“(끄덕)”
“그래. 알았어”
아내도 하루 종일 시윤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인격적으로 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이게 강의 들을 때 잠깐 이러지 말고, 좀 쭉 이어져야 하는데. 유독 이번 강의(아내와 나는 부모 훈련 강의를 다시 듣고 있다)를 들으면서 시윤이 생각이 많이 났다. 무수히도 외면당했을 시윤이의 그 마음들이.
식탁에 앉아서는 입 안쪽이 아프다면서 밥을 못 먹겠다고 했다.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밥을 못 먹겠다는 건 핑계였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나오는 본능과 습관의 짜증. 감사의 부재. 아픈 건 용납이 가능하지만, 식탁 앞에서 ‘감사의 상실’은 안 된다.
“아, 그렇구나. 시윤이가 많이 아프구나. 많이 아파? 못 먹을 정도야?”
“네”
“그래. 아픈 건 아빠가 이따 한 번 볼게. 지금은 아빠가 어떻게 해주기는 어렵고. 아프면 밥 안 먹어도 돼. 숟가락 내려 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시윤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거(야채참치전)는 먹으꺼에여어”
“아니야. 이빨 아프다면서. 아프면 안 먹어도 돼. 숟가락 내려놓고 그만 먹어”
“아니이 이거는 데가 안 먹어 봐더 무든 맛인지 먹어 보고 지픈데여어?”
“아니야. 아파서 밥도 못 먹으면 이것도 못 먹지. 먹을 거면 다 먹고, 아니면 아예 먹지 않는 거야”
“먹으꺼에여어”
“밥 먹는다고?”
“네”
“그래, 그럼 아빠가 밥 조금 덜어갈게. 시윤이가 먹는다고 했으니까 이제 인상 쓰지 말고 감사히 먹어. 알았지?”
“네”
물론 그 뒤로도 푹푹 떠서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다 먹었다.
서윤이는 어제랑 비슷했다. 바닥을 뒹굴며 놀다가도 나랑 눈을 마주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미소를 날렸는데, 모두 식탁에 앉으니 돌변했다. 역시나 어제처럼 서윤이를 허벅지에 앉히고, 한 팔로 밥을 먹었다. 서윤이는 어제보다 더 격렬히 거부했다.
상추, 배추, 쌈장, 참치, 견과류 멸치볶음, 알타리 김치. 오늘의 반찬이었다. 서윤이가 울기 전까지는 쌈을 싸서 맛나게 먹었다. 나이가 들긴 들었는지 밥에 쌈장만 얹어서 싸 먹어도 맛이 기가 막혔다. 서윤이를 앉히고 나서는 한 팔을 쓸 수 없으니, 쌈도 못 싸 먹었다. 서윤이는 점점 더 격렬하고 거칠게 울며 몸을 비틀었다. 자유로운 한 팔로 밥을 욱여넣고, 배추도 욱여넣고, 쌈장도 넣고, 참치도 넣고. 입맛이 뚝 떨어질 법도 한데, 너무 맛있었다.
조선 시대를 사는 노비가 된 느낌이었다. 언제 매질을 할지 모르는 주인의 눈을 피해 배를 채워야 하는데, 그 와중에 밥은 너무 맛있고. 매질을 당하기 전에 얼른 먹어치워야 하는 급박한 상황. 그게 나였다. 가뜩이나 반찬도 뭔가 고전적이고. 서윤아, 덕분에 역사 체험했네.
소윤이는 오늘도 아내에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서 줬다. 소윤이는 진심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그게 무슨 편지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소윤이는 진심으로 썼고 정성을 다해 포장까지 했다. 엄마를 향한 크고 깊은 사랑이 마구 묻어난다. 매번 비슷한 문장과 표현이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잘 모아놨다가 나중에 보면 얼마나 보물 같을까.
오늘 밤에는 온라인으로 모임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서둘러 재워야 했다. 서둘러야 하는 건 아내와 나의 사정이었다. 우리의 사정을 핑계로 감정을 휘둘러,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나도 그랬지만 아내도 그러는 게 느껴졌다. 어떤 순간에는, 답답함에 뚜껑이 열릴 판이었지만, 참을 인자 세 번을 그리고 후후하하 라마즈 호흡법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서윤이는 잠들지 않았다.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서도. 이미 모임이 시작된 뒤라 더 재우지 못하고, 다시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배부른 서윤이는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도 잘 안겨 있었고, 아내에게도 잘 안겨 있었고, 바닥에 눕혀 놔도 잘 있었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이내 졸려졌는지 눈을 막 비볐다.
용감하게 내가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듯 크게, 더 크게 울었다.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자꾸 서윤이 얼굴을 내 가슴 쪽으로 밀며 수면을 유도했다. 가장 격렬한 몸짓과 울음을 내뱉고는, 거짓말처럼 잠잠하게 고개를 떨궜다.
‘와, 대박. 또 재웠다’
그렇게 잠든 서윤이는 물론 또 깼다. 그래도 평소에 비해 일찍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평소에 아내가 하던 일을 나도 온전히 수행한 셈이다. 며칠 전에는 낮에 재운 거고, 오늘 밤이었으니 나름의 발전이었다. 아내도 이제 내가 재워도 되는 거 아니냐며 치켜세웠다. 오늘도 깊이 생각하면 이게 정말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얕게 생각했다.
아내를 도울 일이 조금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