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20.11.20(금)

by 어깨아빠

‘어, 오늘은 좀 덜 깼나 본데? 좀 개운한데?’


이런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새벽에 잠깐 깼을 때 잠결에 아내가 살짝 코를 고는 게 들렸다. 보통은 코 골면서 자면 깊이 못 자는 거라고 하던데, 난 반대로 느껴졌다. 아내가 간만에 좀 푹 자는 느낌이었다.


아침에는 오랜만에 온 식구의 배웅을 받았다. 가장 먼저 시윤이가 깼고, 그다음 아내와 서윤이가 깼고, 소윤이도 깼고.


“여보. 어제 서윤이 조금 깼나?”

“어, 그런 거 같아. 그랬네”

“어쩐지. 나도 좀 개운하더라. 여보도 푹 자는 거 같던데”

“맞아. 나도 좀 깊이 잔 느낌이야”


그래,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안 그러니 서윤아. 그때(거의 6시) 깨서는 9시나 되어서야 다시 자긴 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만 있었다. 아내는 집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전해줬다. 봐도 봐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곤히 자는 서윤이 모습, 키우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머리가 자란’ 서윤이 모습, 동생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소윤이와 온 얼굴에 이유식이 묻은 서윤이 모습, 서윤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누나 뒤에서 낭독 동냥을 하는 시윤이 모습.


이게 참 신기하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아내의 목소리, 아내가 보내주는 사진, 주고받는 메시지 등에서 느껴지는 통일된 분위기가 있다. 물론 아내의 목소리가 어떤가가 해석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내의 목소리가 밝으면 사진도 밝고, 메시지도 밝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안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느낌인가. 아무튼 일종의 ‘촉’이다. 부부의 세계, 육아의 세계에 발 담근 연차에서 나오는 ‘촉’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애들을 위해, 이 추운 날씨에도 밖에 나갔다 왔다. 장도 보고 놀이터도 가고. 오늘만 집에 있었지 일주일 단위로 끊으면, 사실 그렇게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닌데.


퇴근하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문 앞까지 와서 반겨준다. 둘 다 기분이 엄청 좋을 때는 꽤 촐싹거리면서. 아빠의 체통 따위는 필요 없다. 나도 같이 촐싹거리며 애들이랑 똑같은 몸짓으로 인사한다.


“강소윤, 강시윤. 안뇽”


요즘은 그 뒤에서 서윤이도 반갑게 웃으며 빠르게 기어 온다. 서윤이는 아직 ‘코로나 때문에 손을 먼저 씻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아빠가 날 안아주지 않고 외면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니 일단 서윤이는 한번 안는다. 이때가 나에게 가장 저항 없이 안겨 있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기 전에, 막간의 짬을 이용해 아빠와 놀기 위해 바쁘다. 1호, 2호와는 놀아주면서, 이제 나에게 열심히 기어 오는 3호까지 챙겨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1호, 2호, 3호 모두에게 반응해 주고 싶다.


특히 서윤이는 그 시간이 지나면 돌변하니까 더 그렇다. 오늘도 멀쩡하다가 다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싹 바뀌었다. 그때는 한번 울음이 시작되면 내가 달래기 어렵다. 안아도 울고 내려놔도 우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안아줘야 서윤이도 위로받는다고 느낄 거 같으니 웬만하면 안아준다. 잠시 식사를 중단하고 안고 있다가 아내가 다 먹으면 역할을 바꾼다. 서윤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다. 모르면 왜 울겠나. 아니까 울지.


오늘은 아내가 먼저 데리고 들어가서 수유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직 밥을 먹고 있었는데, 둘 다 어찌나 잘 먹던지 소윤이는 두 번이나 밥을 더 떠 줬다. 반찬이 깻잎무침, 데친 굴, 시금치, 두부, 돈까스였다. 소윤이는 깻잎무침과 굴을 잘 먹었다. 굴은 몇 개 없어서 엄청 아껴 먹었고, 깻잎무침은 김처럼 먹었다. 이럴 때마다 아내와 나는 뿌듯하다. 인스턴트 많이 안 먹이고 집에서 해 먹인 보람을 마구 느낀다.


아내는 오늘도 하루 종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했다. 특히 시윤이를 상대할 때. 공감해 주고, 인격적으로 대하기 위해서. 말은 쉬운데 현실은 어렵기 짝이 없다. 굳게 마음먹고 공감하고, 인격적으로 대했는데 떼와 짜증으로 응수할 때가 허다하니까. 그래도 한 번 더 꾹 누르고, 또 공감. 셋 중에 누가 가장 공감을 못 받았을까를 굳이 따지자면, 아무래도 시윤이일 거다. 아내의 선한 결심이 부디 오래도록 견고하길.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준비를 끝내고 방에 들어갔을 때는 수유가 끝나고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 서윤이는 잠들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절대 정숙을 요구하고, 방에서 나왔다. 아내는 아직 방에 있었다. 나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졸았다. 거의 30분을. 무척 피곤했다.


아내도 잠들었다가 깨서 나왔다. 아내도 나도 피곤했다.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난리였다. 내가 할 테니 너는 쉬라는 게 아내와 나의 공통된 메시지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11시 무렵, 영화라도 볼까 싶어 아내랑 볼지 말지, 보면 뭘 볼지를 얘기하는데 안방에서 소리가 났다. 아내와 나 모두 들었다. 아주 짧은 소리였지만 우리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여보. 방금 서윤이 깼지?”

“그런가 본데?”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보가 나올 수 있을까?”

“나올 거다”


못 나왔다. 내심 기다렸는데,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안녕, 금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