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약과 라면

20.11.21(토)

by 어깨아빠

엄청 늦게 일어났다. 이른 아침에 아내와 아이들의 소란에 잠시 잠이 깨긴 했지만, 아주 살짝이었고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떴을 때는 방에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몇 시나 됐나 싶어 시계를 봤는데 무려 9시 45분이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잤는데 몸이 찌푸둥했다.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무엇보다 코가 난리였다. 비염이 너무 심해 컨디션이 저하되었나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6시 30분쯤 일어났다고 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단순한 피로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예 아픈 건 아니었다. 경계선 위에 선 느낌이었다. 주말답게 신나게 움직이기도 어렵고, 환자처럼 축 처질만한 정도는 또 아니었다.


힘을 내서 움직였지만 힘이 나지 않는, 힘이 나지 않지만 힘을 낸 토요일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 놀이터에서 너무 조금 놀았고, 대신 내일(오늘) 아빠랑 놀이터에 가기로 했다면서, 오늘 놀이터에 갈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내 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하기 어렵기도 했고, 실제로 시간의 여유가 어떨지도 몰라서, ‘상황을 봐서’라고 대답했다.


아침에는 토스트를 먹고 싶다고 해서 토스트를 해 줬다. 물론 아내가. 점심에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만들어 주기로 했다. 재료는 없었다. 심지어 떡도.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떡을 사러 가기로 했다. 걸어가면 10분이면 가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평소에 못 타는 나의 출퇴근용 차를. 나도 내심 좋았다. 걸어가기에는 뭔가 귀찮았다.


엄청 금방이었다. 금방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최소한의 욕구는 해갈이 가능하다. 아마 내 마음속에서 이미 ‘오늘 놀이터는 힘들겠다’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놀이터를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외출도 아닌 외출이었지만, 그거라도 있어야 덜 미안하니까.


떡볶이도 후다닥 만들어서 먹었다. 떡볶이를 먹기 전에, 먹고 나서는 낮잠을 자기로 했다. 소윤이는 오전부터


“아, 피곤하다”


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아침에 좀 더 자라고 해도 기를 쓰고 일찍 일어나더니, 이른 시간부터 피곤하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훅 하고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피곤하면 낮잠을 자라고 하면, 또 낮잠 자기 싫다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그런 태도에 괜히 더 열불이 나기도 했고, 실제로 오늘은 밤늦게까지 일정이 있기도 했고, 나도 낮잠이 필요했다.


애들 재우고 저녁에 있을 모임을 준비 좀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낮잠을 자야 할 것 같았다. 약국에 가서 ‘가장 강력한 비염 약 주세요’하고 샀던 비염약 한 알을 먹고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눈 뜨지 말고 얼른 자. 알았지?”


라고 얘기하고 난 거의 바로 잠들었다. 서윤이도 함께 잤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거하게 자고 난 뒤라 아내와 서윤이는 거실에 남았다. 잠든 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간에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눕혔다. 아내가 뭐라고 얘기를 한 건 기억이 나는데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결에 ‘서윤이도 자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자면서 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지긴 했는데, 이게 나의 착각인지 현실인지 확신은 없었다.


아내가 와서 깨울 때까지 잤다. 눈을 딱 떴을 때, ‘좀 나아졌는데?’라고 느꼈다. 일어나서 첫 발을 뗐을 때,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열도 재봤는데, 정상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낮잠을 자고 난 뒤에는 바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저녁에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난 뒤에는 내 친구들도 만났다. 원래 모임이 끝나고 나 혼자 만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끝나서,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만났다. 매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토요일 끝. 낮잠을 자서 그랬나 하루가 참 금방 지나갔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는 하루였다.


“여보. 하루가 금방 끝났네. 허무하게”


소윤이와 시윤이 하고는 별로 한 게 없었는데, 애들을 재우고 나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아내와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자기 전에는 비염 약 하나 더 먹고.


과연 라면의 유해성이 더 강할지, 비염 약의 효능이 더 강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