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2(주일)
다행히 몸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다시 완전한 정상의 상태로 돌아왔다.
아침은 시리얼과 어제 먹고 남은 가래떡으로 대신했다.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지만, 애 셋을 챙기고 준비하려면 출근하는 평일처럼 일어나야 여유가 생긴다. 이 기준에 대보면 늦었다는 거다) 밥도 없었다.
“아빠. 조청도 줄 거에여?”
“아니, 오늘은 그냥 먹어”
“왜여?”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조청 먹으면 흘리고 닦아야 해서. 오늘은 그냥 먹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쉬워했지만, 조청 없이도 잘 먹었다. 아내가 못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듣지 못하게 소리 반, 입 모양 반으로
‘여보. 내가 조청 먹고 싶다’
라고 얘기했다. 하긴 아내는 뭐 먹을 때 은근히 갖추고 따지는 편이다. 이거 먹을 때는 이게 꼭 있어야 하고, 저거 먹을 때는 저게 꼭 있어야 하고. 물론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몸뚱이를 얻게 됐…
시윤이에게 새싹꿈나무 예배에 갈 건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보내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산통을 깼다.
“시윤아. 오늘은 새싹꿈나무 갈 거야? 안 갈 거야?”
다행히 시윤이가 다른 일에 정신이 쏠려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새싹꿈나무 예배실에 올라가면서 시윤이가 소윤이에게 말했다.
“누나아. 안에는 안 들어간다고 얘기해에. 알았띠?”
예배를 다 드리고 나이별로 나눠질 때, 누나 옆에 있겠다는 말이었다. 소윤이와 나 모두 확실하게 약속했다.
“시윤아. 선생님한테 말할게”
시윤이는 순순히 들어갔다.
서윤이는 예배 시간 내내 깨어 있었다. 대신 울지도 않았다. 한참 내 무릎에 앉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고, 예배가 거의 끝날 때쯤 아내의 품으로 갔다.
축구는 하러 가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 가지 못한 놀이터를 오늘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아빠. 놀이터는 갈 거에여?”
“그래, 점심 먹고 아빠 화장실 청소하고. 갔다 오자”
점심은 국수였다. 소윤이가 어제부터 먹고 싶다고 했다.
“소윤아. 무슨 국수? 비빔국수?”
“네. 비빔국수”
“아빠아. 더는 그거 말구 국물 있는 국뚜”
“시윤아. 너는 왜 꼭 누나랑 반대로 하려고 그래”
“아니에여어. 딘따에여어”
“그래? 알았어. 그럼 시윤이는 국물 있는 국수로 줄게”
소윤이를 위한 비빔 국수와 시윤이를 위한 국물 국수를 따로 만들었다. 마침 어제 떡볶이 만들 때 남은 육수가 있었다. 사실 국수는 간편식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하다. 그래도 나름 호박과 양파까지 썰어 넣고 구색을 갖춰서 만들었다. 오히려 비빔 국수에는 아무 고명이 없었고.
“아빠아. 더는 이거 말한 게 아니에여어”
“그래? 그럼 뭐야?”
“아, 더는 그거어. 뭐더라아”
옆에서 아내가 시윤이의 마음을 읽었다.
“아, 시윤이는 콩국수 말한 거였어?”
“아, 마다여어. 그거어 그거어. 콩국뚜우”
아내가 시윤이의 마음을 달랬다. 콩국물을 파는 곳이 있으니 조만간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늦은 오후에는 (내) 엄마, 아빠가 오시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온 가족이 대청소에 돌입했고, 난 4사분기 들어 처음으로 화장실 청소를 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청소를 하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왜?”
“여보. 시윤이 똥마렵대여”
하아. 왜 꼭 화장실에서 뭘 하고 있을 때 똥이 마려운 건지. 문을 열고 시윤이가 들어왔는데, 똥은 이미 엉덩이 밖으로 나와 팬티 위에 안착한 뒤였다. 시윤이에게 한껏 잔소리 폭격을 퍼부었다. 그 와중에 소윤이는 놀이터에 갈 수 있냐고 물어봐서 괜한 핀잔을 들었다. 옆에서 아내가 말했다.
“아, 시윤이가 아까부터 마렵다고 했는데 제가 좀 참을 수 있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래서 참다가 그랬나 봐요”
다소 격앙되었지만 나도 약간 민망한 면이 있었기에 꾹 참고, 화장실 청소를 마무리했다. 시윤이의 똥팬티도 열심히 빨았다. 다행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 놀았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자마자 옷을 입혀서 놀이터로 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좀 쌀쌀하긴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스치듯 안녕에도 전염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한적한 놀이터가 반가웠다. 씁쓸한 현실이었다.
(내) 엄마와 아빠도 곧 도착한다며 연락을 하셨다. 소윤이는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했던 ‘4시’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만큼이나 나도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드디어 엄마, 아빠가 오셨고 조금 더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서윤이는 자다가 깼는데, 처음에는 매우 경계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내 품과 아내 품에 번갈아 가며 안겨서, 조금씩 경계를 허물었다.
난 너무 졸렸다. 슬쩍 안방에 들어와 누웠다. 엄청 달콤한 쪽잠이었다. 한 20분 잔 거 같은데, 너무 달았다.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먹었다. 서윤이는 아기 의자에 앉혀 놓고 쌀과자를 조금씩 잘라 주는 것으로 달랬는데, 간당간당했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바로 울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서윤이의 인내심은 밥을 거의 다 먹을 때까지 유효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아버지와 먼저 나갔고, 나도 거의 바로 뒤따라 나갔다. 아빠는 잔뜩 놀란 표정으로 시윤이에게
“시윤아. 막 그렇게 뛰어 내려오면 안 돼. 소윤이도”
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얘기를 들어 보니, 식당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경사가 꽤 심한데 거기를 소윤이가 내달렸나 보다. 그걸 본 시윤이도 따라서 달렸고. 깜짝 놀란 아빠는 시윤이를 잡으려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쭉 미끄러지셨다. 시윤이도 같이. 나는 보지 못했지만, 아빠는 적잖이 놀라신 듯했다. 집에 와서도 시윤이한테
“시윤아. 할아버지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큰일 날 뻔했어”
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이런 순간마다 감사를 느낀다. 아무 일 없어서 대수롭지 않았던 거지, 크게 다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난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거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운’으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아이를 키우면 이런 순간이 허다하다.
밥 먹을 때 거의 졸다시피 했던 시윤이는 집에 오니 정신을 차렸다. 원래 다 그렇다. 밥 먹는 게 제일 졸린가 보다. 서윤이의 경계는 흔적을 감춘 지 오래였고, 오히려 애교가 가득이었다. (내) 엄마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눈을 피해, 혹은 양해를 구하고 서윤이를 향해 눈을 돌리고 손을 뻗었다.
엄마와 아빠는 꽤 늦은 시간까지 있다 가셨다. 당연히 떠나기 직전까지 손주들과 놀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기분 좋게 잠들었고. 서윤이도 금방 잠들었고.
아내도 금방 잠들었다가 부활했다.
“여보. 집이 깨끗해서 할 일이 없네? 너무 좋다”
아내는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만끽하며, 주일 밤의 마지막 잉여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