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의 여유

20.11.23(월)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가 바닥에 깐 매트를 들어서 거실 한가운데를 가리는 커다란 차단 벽을 만들었다(아내가 사진을 보내줬다). 둘이 앉아서 메모리 게임을 하고 싶은데 참견 지수가 가득 찬 서윤이가 가만두지 않으니, 서윤이를 막기 위한 나름의 방편을 마련한 거다. 서윤이의 방해 욕구가 점점 늘고 있고, 실제 능력도 상승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서윤이하고는 싸울 군번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피해 다니느라 나름 애를 먹고 있다. 무언의 파괴자의 활동이 날로 활발해진다.


시윤이는 눈물이 많아졌다. 아니, 눈물이 많아졌는데 엄청 잘 참는다. 아내와 내가 생각하기에 눈물을 흘릴 정도가 아닌 일이나 말에도 쉽게 울먹거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울음을 삼킨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이 주먹을 먹으며 통화할 때처럼. ‘이 정도 하면 울지도 모르겠다’라고 예상하고 상대하는 건 내 나름대로 수위 조절이 가능한데, 너무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그러니까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보통은 자기가 원하는 게 관철되지 못했을 때 그러는데, 기류를 감지했을 때 잽싸게 시윤이의 요구를 들어주면 잘 삼키곤 한다. 분명한 건, 시윤이 마음은 여전히 말랑말랑하다. 아내는 매일 시윤이의 말랑한 마음이 찌그러지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다.


이렇게만 써 놓으면 시윤이가 나중에 오해하겠구나. 엄마는 매일 참을 인을 일흔 번씩 일곱 번 마음에 새긴단다. 지금 시윤이가 그런 시기인가 봐. 말 안 들을 때는 경도가 매우 높은 바위처럼 단단해졌다가도, 순식간에 물풍선처럼 말랑해지고. 엄마는 오늘도 정말 많이 노력했다고 아빠한테 얘기했단다.


퇴근하면서 치킨을 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고 싶다고 한 지는 꽤 됐고, 주말에 먹을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넘어갔다. 아내도 마침 저녁을 준비하기 전이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먹는 치킨 집에서 샀는데, 꽤 오랜만이었다. 그 사이 튀김 옷에 매운맛을 조금 첨가했는지, 소윤이와 시윤이가 맵다며 헤헤거렸다. 사실 난 잘 못 느꼈는데 애들 혀에는 바로 느껴졌나 보다. 게다가 시윤이는 졸음까지 겹쳐서 매우 힘들어했다.


다행히 서윤이는 울지 않았다. 아기 의자에 앉혀서 이유식을 먹이려고 했는데, 한 숟가락도 제대로 안 먹었다. 이번 이유식에 브로콜리랑 또 뭐가 들어갔다고 했는데, 이번 건 대부분 이랬다고 했다. 대신 숟가락은 열심히 빨았다. 치킨 먹는 동안 옆에 앉아서 숟가락 빠느라 조용했다. 한 번씩 너무 깊이 넣어서 “꾸에엑”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뭔가 기분이 좋았다. 매우 피곤했지만 오늘만큼은 취침을 채근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매 순간 아내의 의중을 고려했다. (그렇다고 뭐 엄청 많이 하고, 오래 논 건 아니다. 평소에는 먹고, 씻고, 바로 잤다면 오늘은 먹고, 씻고, 아주 조금 놀고, 잤다는 차이 정도)


“아빠. 그럼 우리 메모리 게임 할까여?”

“메모리 게임? 그럴까? 괜찮나?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엄마. 메모리 게임해도 돼여?”

“아, 메모리 게임은 너무 오래 걸려서 안 돼. 엄마가 너무 힘들어”


오랜만에 책을 읽어줬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대신 정성껏 읽었다. 또박또박, 정속으로. 자기 전에는 쎄쎄쎄(표준 명칭이 이게 맞는지 모르지만)를 했다. 파주 할머니에게 배웠다면서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를 하자고 했다. 쎄쎄쎄 하나로 많이 웃고, 재밌게 놀았다.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재밌고, 아빠랑 얘기하는 게 제일 속이 시원하게 만드는 게 나의 작은 바람이다. 아니, 큰 바람인가. 아무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니 무형의 유익한 가치를 많이 물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래 봐야 한 30분인데. 이게 그렇게 피곤해서 여유가 안 생긴다. 강서윤도 책임이 있다. 서윤이가 밤에 좀 푹 자야, 취침이 늦어져도 부담이 없을 테니까. 나야 퇴근하고 왔으니 그리움 수치가 많이 올라간 상태지만, 아내는 마이너스 상태일 테니 아내에게 맞춰야 하기도 하고.


아무튼 오늘은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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