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메뉴와 공깃밥의 배신

18.11.13(화)

by 어깨아빠

일찌감치 눈을 떠서 머리로는


'아. 지금 일어나야 늦지 않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는 몸뚱이를 어찌해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 와중에 시윤이가 배시시 웃으며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내 옆으로 왔다.


"시윤아. 잘 잤어?"

"으"


시윤이 덕분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시윤이도 쪼르르 따라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나한테 오라고 했더니 쭐래쭐래 와서는 안겼다.


"시윤아. 아빠 이제 가야 돼"

"읏냥"

"아빠 가면 시윤이는 엄마한테 가. 알았지?"

"으"


막 나가려는데 아내가 잠에서 깼다. 아내는 급히 커피와 달걀, 바나나를 챙겨줬다. 비닐봉지에 싸 줬는데 지하철에서 먹으려고 보니 계란이 반숙이었는지 봉지 안에는 노른자가 터져서 혈흔(?)이 낭자했다. 그래도 역시 반숙이 맛있긴 하다.


어제 아내가 오늘도 별 일 없으니 그냥 차 가지고 가라면서 부추겼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했다. 오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대박"

"왜?"

"내가 어제 계속 오늘 무슨 일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

"어"

"무슨 일이 있었어"

"뭐?"

"목장 모임. 이번 주부터 화요일에 한다고 했잖아"

"아. 그러네. 차 가지고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네"

"그랬으면 뭐 택시 타면 되지"


그러더니 아내는 포부를 밝혔다.


"아예 목장모임 가기 전에 병원에 갔다 올까"

"시간이 되겠어?"

"부지런히 밥 먹이고 9시 40분에 나가면 충분하지 않을까?"

"뭐라고? 지금 9시 10분인데? 9시 40분까지 밥이나 다 먹으면 다행이다"

"그런가? 목장 모임이나 안 늦으면 다행인가?"

"응"


아내는 종종 도무지 불가능한 시간 계획을 세우곤 한다. 목장 모임을 마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타 필드로 가고 있다면서 시윤이를 재우는 게 소윤이와의 공동 목표라고 했다. 잠시 후 영상통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어디야?"

"여기 카페에여"

"시윤이는? 자?"

"네. 시윤이는 딱 맞게 잤어여"


소윤이의 바람대로 시윤이는 잠들었고 엄마와의 데이트 시간이 허락됐다. 퇴근할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백석"

"여보. 그럼 스타필드로 올래?"

"그럴까?"

"저번처럼 또 저녁 먹고 들어갈까?"

"그래도 되고"


소윤이랑 시윤이, 함께 있던 하람이(505호 사모님 딸)는 스타필드를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소유..."


뛰지 말라고 습관적으로 제지하려다가 관뒀다. 어차피 혼잡하고 시끄러운 곳인데 그냥 뛰어라. 하람이(505호 사모님 딸)와 헤어지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일본 가정식을 파는 곳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연어롤과 명란아보카도 비빔밥, 키즈 메뉴를 시켰다. 우와. 키즈 메뉴가 5,000원이었는데 원가는 1,000원도 안 될 것 같았다. 일본식이라면서 동남아 볶음밥처럼 날아다니는 볶음밥, 극소량과 소시지 두 개, 메추리알 하나, 오렌지 8분의 1쪽. 너무하다 싶을 때 우리 메뉴가 나왔다. 그나마 우리 메뉴가 만족스러워서 참았다. 키즈 메뉴의 볶음밥은 도무지 나눠 먹일 수 없는 양이라 공깃밥을 하나 더 시켰다. 한참 먹다가 계산서를 본 아내가 황망한 듯 얘기했다.


"헐. 대박"

"왜?"

"공깃밥이 2,000원이야"

"진짜?"


공깃밥을 2,000원 받는 식당에 가본 적이 있었나 싶다. 누가 공짜로 먹으라고 해도 안 먹일 것 같은 키즈 메뉴를 7,000원이나 주고 사 먹다니. 분하다. 스타벅스에서 내 커피만 한 잔 사고 주차장으로 갔다.


"아. 맞다. 여보한테 말 안 한 게 있어"

"뭔데?"

"나 차 또 긁었어"

"진짜? 어디서?"

"주차장에서"

"스타필드?"

"아니. 우리 아파트. 그래도 여기 조금밖에 안 긁었어"

"응? 조금이 아닌데? 여기 다 긁혔네"

"진짜? 이건 저번에 긁은 게 아니었어?"

"어. 이것도 이번에 긁었네"


얼마 전 연희동 골목길에서 사투를 벌이다 얻은 상처를 굳이 치료하지 않길 잘했다. 오늘 기둥과 사투를 벌이며 얻은 상처까지 더해져서 우리 차의 오른쪽은 중환자가 되었다. 여보, 지금 많이 긁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차 사고 나서 이러면 곤란하니까. 지금 많이 많이 긁으세요.


다소 시간을 투자해 동네를 빙빙 돌았더니 소윤이, 시윤이 모두 차에서 잠들었다. 조심조심 카시트에서 내려주는데 소윤이가 잠에서 깼다. 다행히 눕혔더니 금방 다시 잠들었다. 운동하러 가면서 짐 가지러 주차장에 내려가 다시 차를 봤는데. 뭐랄까. 가슴이 아프지는 않은데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다. 그냥 다니자니 너무 상처가 크고 심해서 창피하기도 하고 점점 녹이 필 것 같기도 하고. 고치자니 이 차에 돈 들이는 게 영 아깝고.


여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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