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4(수)
아내가 며칠 전부터 왼쪽 손목이 심하게 아프다고 그랬다. 평소에도 뭐 타고난 약함에다가 육아로 인한 통증까지 늘 안고 살지만 가끔 이렇게 유독 심해질 때가 있다. 왼손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만큼. 애들은 꼭 이럴 때 울기도 더 많이 울고 보채기도 더 많이 보챈다. 소윤이도 콧물이 많이 흐르는 게 뭔가 최상의 상태가 아닌지 아침부터 짜증을 좀 냈다. 물론 시윤이에 비하면 애교였지만. 시윤이는 뭐가 그렇게 못마땅하고 서러운지 툭하면 울고 엄마한테 안아달라 그러고.
아내는 아침부터, 정확히 말하면 눈 뜨면서부터 이미 쓸 체력이 바닥난 느낌이었다. 손목도 손목이고 몸 전체에 기력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럴 땐 다른 거 필요 없이 그냥 약 먹고 푹 자면 되는데 그렇게 하려면 4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된다. 아직 소윤이도, 시윤이도 태어나지 않았던 그때로.
출근해서 틈틈이 전화도 하고 카톡도 했는데 애들은 괜찮음과 귀찮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듯했고 아내는 계속 힘든 것 같았다. 그러다 오후쯤 아내가 얘기했다.
"너무 힘들어서 엄마한테 와 달라고 했어"
아내는 은근히 장모님한테 와 달라는 말 잘 안 하는데 그렇게 했다는 건 많이 힘들다는 얘기였다. 열이 나거나 으슬으슬하지는 않은데 그냥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애 둘이랑 지내면서 딱히 묘수가 없으니 잠이라도 충분하게 자야 하는데 아내는 그렇지가 않다. 시간적으로 많이 잔다고 해도 중간에 깨고 치이고 하기 때문에 질은 굉장히 떨어지는데 거기에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니 몸이 견딜 리가 없다.
아내는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싫어한다.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지적하기 전에 아픈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안타까워해주길 바란다. 난 아픈 게 속상하니까 다음에 안 아프려면 이렇게 하라고. 집안일이야 어쩔 수 없지만 웹툰 보고 카톡 하고 드라마 보고 이러느라 늦게 자는 건 적어도 몸이 좀 이상하다 싶을 때는 다 덮어두고 자라고 자라고. 그렇게 말하다 보면 그게 잔소리고.
오늘도 살짝 이런 얘기를 했더니 불편한 기색을 비췄다. 아내의 짧은 한숨과 긴 공백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몸이 좀 안 좋다 싶으면 그게 7시든 8시든 일단 들어가서 눕고 하도 누워 있어서 허리가 뻐근할 때까지 자다 보면 몸은 낫는다는 게 나의 자연치유 신념인데. 내가 보기에 아내는 아플 때도 기어코 안 자고 (내 눈에는) 꼭 그때 하지 않아도 되는 뭔가를 하려고 한다.
이런 마음으로 아내에게 한두 마디 보태다 보면 언제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는다는 걸 이제 좀 알았기 때문에 오늘은 살짝 기운만 흘리고 마음속에 잘 가둬놨다. 어쨌든 장모님이 오신다니 잠시나마 해방일 거고.
집에 가보니 소윤이랑 시윤이는 바닥에 밥공기와 김을 놓고 앉아서 할머니랑 밥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가 왔기 때문에 가능한 바닥에 밥그릇 놓고 식사라는 일탈 덕분에 소윤이는 잔뜩 신나 있었다. 시윤이도 그래 보였다. 평소에는 내가 퇴근하면 경쟁하듯 달려오는 녀석들이 할머니가 있으면 본체 만 체다. 굳이 아빠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얘기다. 장인어른도 우리 집에 들러서 간단히 저녁을 드시고 장모님이랑 함께 가기로 하셨다. 그 사이 애들은 약도 먹이고 씻겨서 잘 준비는 대충 해놨다. 장인어른이 오시고 난 축구하러 떠났다. 어차피 애들은 금방 잘 거고 장인어른이랑 장모님도 계시니 아픈 아내로 인한 마음의 짐이 거의 없었다.
오늘만큼은 꼭 일찍 자라고, 애들 재우면서 그냥 같이 누워서 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아내는 오늘도 축구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자지 않고 있었다.
"여보. 오는 거 보고 자려고 그랬지"
나 먹으라고 과일이랑 오징어, 쥐포 같은 걸 예쁘게 담아놨다. 뭐지. 아내도 이제 완연한 아내이자 엄마가 된 건가. 아내는 자러 들어가고 혼자 거실에 앉아 아내가 준비해 준 씹을 거리들을 먹으며 생각해 봤다.
'아내는 왜 아플까'
수면부족 말고 무슨 이유가 더 있을까.
아내가 오늘 장모님이 오셔서 제일 좋았던 게 쌓여 있던 빨래를 해주시고 널려 있던 빨래를 걷어 주시고 다 된 빨래를 널어 주신 거라고 했다.
얼마 전에 혼자 아내한테 좀 미안한 게 있었는데 옷을 좀 찾으려고 베란다에 나갔다가 한쪽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는 선풍기가 눈에 띄었다. 거실에 있던 건 진작에 치웠었는데 방에 놨던 건 무더위가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대로였다. 난 치운 적이 없었는데 그게 베란다에 옮겨져 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아내가 아침을 챙겨 먹었는지 점심을 챙겨 먹었는지 아예 묻지도 않았다. 물어보면 맨날 안 먹었거나 애들 남긴 걸로 대충 해결했다는 대답을 몇 번 듣다 보니 또 그럴 거라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아예 손 놓고 사는 남편은 아닌 게 맞는데 그렇다고 크게 도움이 되거나 수고를 덜어주는 남편은 또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집안일에 있어서는.
아내가 왜 아플까. 왜 아내의 손목이 저릿저릿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력을 소진했을까. 자꾸 곱씹으니 슬퍼지려고 한다.
아내가 불쌍하군.
일단 내일은 보양식을 먹여야겠다. 장모님이 한살림에서 산 닭백숙을 끓여 두셨지만 내 느낌에 아내는 저걸 깨작깨작 먹는 둥 마는 둥 할 것 같다. 이럴 때는 몸에 좋은 걸 먹는 것도 좋지만 소울 푸드를 먹어야 한다.
여보, 우리 내일 송스키친에서 저녁 먹을까? 파스타랑 떡볶이?
(아, 물론 생활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