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5(목)
아침에 일어나 아내의 몸상태를 물으니 어제 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오늘은 (나의)엄마가 집에 오시기로 했다. 아내는 어젯밤부터 오늘 어머니가 오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놓인다며 좋아했다. 하루 종일 연락이 잘 안 되던 아내와 늦은 오후쯤 연락이 닿았다. 낮에 시윤이 재우러 들어가서 같이 낮잠도 잤다고 했다. 엄마는 저녁에 일이 있어서 3시쯤 돌아갔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 끝났어?"
"어. 지금 막 출발했어. 어디야?"
"나 남옥 언니랑 잠깐 스타필드에 왔어"
'잠깐' 이라는 부사가 참 덧없게 들렸다. 어제의 계획대로 아내에게 오늘 파스타를 먹겠느냐고 물었고 아내가 동의했다. 스타필드 근처에 있는, 아내가 헬스프리데이 때 자주 가는 돈까스 집에 가기로 했다. 돈까스 집이지만 파스타도 맛있었다는 아내의 평이 있었다.
스타필드에 갔더니 아내와 아이들, 하람이, 505호 사모님은 미용실에 있었다. 하람이가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소윤이한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하람이처럼 머리를 자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람이 머리 자르는 동안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머리가 없던 탓에 최대한 기르고 모으는 것이 아내와 나의 관심사였던 게 아직도 남아 있는지 소윤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게 굉장히 드문 일이 되었다. 내 생각 혹은 취향에도 짧은 것보다 긴 게 더 예쁘기도 하고.
소윤이가 하람이 머리 자르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온 걸 보더니 유모차에서 내려 망아지처럼 돌아다니는 시윤이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졸음이 가득할 소윤이와 요즘 엉덩이에 용수철이 하나 내장됐는지 도무지 앉지 않으려고 하는 시윤이를 데리고 밖에서 저녁을 먹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옳고 그름을 떠나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내가 맛있는 파스타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식당에 갔다.
소윤이는 졸음에다가 정상이 아닌 몸상태 (콧물 과다분비로 인한 잦은 기침)까지 더해져서 칭얼거렸고 시윤이도 아내 껌딱지가 되어 아내에게만 안겨 있으려고 했다. 한눈에 들어오는, 내 앞에 앉은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 보통은 매우 흐뭇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짜식들이 말이야 엄마 힘들고 피곤하니까 좀 떨어지고 그만 보채라는데 말을 안 들어 말을.
시윤이는 먹을 게 나오니 그나마 의자에 앉았지만 소윤이는 그대로였다. 아내가 아프다는 것 때문에 나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는지 엉뚱하게 소윤이한테 자꾸 쏘아댔다. 평소 같았으면 못 본 척하거나 아내에게 넘겼을 말이나 행동에 일일이 잔소리를 했다.
앉아라. 돌아다니지 마라. 얼른 열심히 먹어라. 짜증 좀 그만 내라.
소윤이도 짜증 섞인 말과 행동이었고 나는 나대로 소윤이한테 틱틱거리며 잔소리하고. 밥 다 먹고 카페에 잠시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고 집에 돌아오려고 차에 타서 아내랑 나랑 무슨 얘기를 좀 하려는데 소윤이가 대화를 방해하며 치고 들어왔다.
"엄마. 엄마"
"소윤아. 엄마랑 아빠랑 지금 얘기하잖아. 방해하지 말고 이따가 말해"
"아니. 아빠 그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엄마 아빠 얘기 다 끝난 다음에 말하라고"
아내가 중재했다.
"소윤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알았어. 그럼 소윤이가 하고 싶은 말 먼저 해 봐"
"......."
"소윤이 삐졌어?"
"......."
아내의 말에도 뚱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다.
"소윤아. 먼저 얘기 해. 아빠는 그다음 할 게"
"아빠랑 얘기 안 해"
"왜? 삐졌어?"
"아빠는 내가 말만 하면 잔소리하니까 얘기하기 싫어. 마음 상했어. 이제 엄마랑 시윤이 하고만 얘기할 거야"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아빠랑도 얘기해 줘"
"싫어. 아빠랑 얘기 안 해"
손을 슥 잡고 살살살살 마음을 좀 풀어주려고 했는데 손은 빼지 않는 걸 보니 완전히 토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내 입장에서는 애가 셋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내가 한 명 더 생긴 느낌이네.
시윤이는 진작에 잠들었고 소윤이는 카페에서 자기 입으로 졸려서 집에 가고 싶다길래 금방 잘 줄 알았는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시윤이는 바로 눕혔고 아내가 소윤이와 함께 방에 들어갔다. 난 운동하러 가고. 한 10분 정도 후에 소윤이도 잠들었다며 전화가 왔다.
아내는 낮에 (시)어머니가 오셔서 이것저것 집안일을 다 해주셨다면서 밤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너무너무 좋다고 했다. 운동 끝나고 마주한 아내의 모습도 분명 어제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애 둘 키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역시 집안일이 문제였나. 아닌가. 뭐가 됐든 하나만 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둘 다 동시에 해야 하니까 문제였나. 하긴 생각해 보면 집안일이라는 게 다 소윤이, 시윤이한테서 파생되는 거니까 결국 얘네 잘못인가.
아무튼 오래간만에 찾아온 아내의 고난의 시기를 양가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그나마 평탄히 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