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4(주일)
나는 전혀 몰랐는데 간밤에 난리가 났었다고, 아내가 말해줬다. 시윤이는 자다가 오줌을 싸서 서윤이와 소윤이, 시윤이의 잠자리를 구분하는 용도로 쓰고 있는 바디필로우를 다 적셨다. 당연히 시윤이의 옷도 다 젖었고, 아내는 그 새벽에 샤워를 시켰다고 했다. 시윤이를 수습하고 누운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번에는 서윤이가 깼고, 서윤이의 바지도 흠뻑 젖어 있었다고 했다. 그거 처리하느라 또 생고생을 했고. 거짓말 같겠지만, 난 진짜 전혀 몰랐다.
원래 어제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는데 한살림과 자연드림이 모두 문을 안 열어서 못 사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롯데슈퍼에서라도 사 달라고 했지만 하루만 참고 내일 먹자고 잘 설득했다.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 점심을 먹기도 전에 자연드림에 다녀왔다. 서윤이도 데리고 갔다. 아내는 홀로 집을 지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둘은 같은 걸 골랐다. 아이스크림과 탄산수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서윤이가 울지도 않고 잘 있어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유를 주고 싶었지만, 셋을 데리고 어디 갈 데가 없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카페라도 가서 시간을 더 쓰고 왔을 텐데. 물론 엄마 없는 서윤이를 데리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지만.
“아빠. 아이스크림 언제 먹어여?”
“지금 먹어”
“네? 지금이여?”
“어, 지금”
“밥 먹기 전에?”
“응. 아빠가 어제 약속했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얘기했다.
“아. 너무 맛있다”
“벌써 이만큼이나 먹었다니”
“아. 또 먹고 싶다”
“아. 맨날 맨날 먹고 싶다”
평소에 아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가 줄고 있어. 아쉽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혓바닥으로 할짝할짝 아이스크림을 핥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점심에는 떡국을 끓여 먹었다. 금요일에 만든 만두도 몇 개 남아 있었는데 거의 시윤이가 만든 만두였다. 피와 소의 비율이 9대1 정도 되고 모양은 크레페에 가까운, 한마디로 상품성과 맛 모두 잃은 만두랄까. 물에 적셔 먹는 것보다는 기름에 구워 먹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프라이팬에 따로 구웠다.
“우와. 시윤이가 만든 만두를 굽고 있네. 엄청 맛있겠다”
시윤아, 너도 살면서 배우게 될 거야.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걸.
떡이 조금 모자랐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정량을 떠 주고 나니 너무 조금 남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스낵면을 하나 꺼내서 넣었다. 떡라면인지 라면떡국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면으로 양을 채웠다.
“여보. 맛있겠다”
“여보. 나 모자라서 이거 먹는 거야”
어쩌다 보니 나만 특식을 먹는 모양새가 됐다. 게다가 먹지 못하는 게 아니고서는 웬만하면 천국의 맛을 본 것처럼 무엇이든 맛있게 먹으니 더 그랬다. 정말 맛은 없었다. 스낵면은 내 취향이 아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아내는 ‘오늘(카페이름)’ 카페에 가자고 했다. 애들한테도 미리 얘기했다. 차로 30분 정도 가야 해서 애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오늘은 ‘엄마의 권리’를 내세웠다. ‘연휴 내내 너희를 먹이고 챙기느라 얼마나 힘드셨냐, 밤에는 서윤이가 어찌나 깨는지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했다’ 등의 이유를 들어 소윤이와 시윤이를 설득했다. 설득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가기로 정했지만.
소윤이는 카페에 갔다 오는 내내 둘이 잘 놀았다. 자기들끼리 끝말잇기도 하고(물론 시윤이 덕분에 정상적인 진행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말장난을 치며 깔깔대기도 했다. 서윤이는 푹 잤다. 아내는 카페에서 산, 나는 이름을 모르는 크림이 잔뜩 든 빵을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다 먹었다. 크림을 대하는 아내의 진심이 느껴졌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바로 집에 가기 아쉽다면서 ‘어디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야외의 어딘가를 가는 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실내의 어딘가를 가는 것도 찜찜했다. 자꾸 마지막 마지막 하기에는 고작 4일 연휴의 마지막이긴 해도, 어쨌든 마지막 날이니 소윤이와 시윤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기도 했고.
“여보. 아니면 애들 옷 바꿀 거 바꾸러 갈까? 사람 많으면 그냥 오고”
“그럴까?”
스타필드에 있는 매장이었다.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 차들이 줄지어 서 있으면 바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코로나여도 오는 사람들은 다 오나 보네.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붐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기도 가자, 저기도 가자 요청이 많았지만 정말 딱 옷만 교환했다. 아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 둘이 사부작대며 잘 놀기는 했다. 둘이 손잡고 다니면서 누나, 시윤아 부르며 노는 걸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소윤아, 시윤아. 어묵 사러 갈까?”
“네에. 좋아여”
아무것도 못 하고 가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묵을 사러 갔다. 별거 아닌데 엄청 좋아한다. 거기서 먹는 건 좀 찝찝하니 집에 와서 저녁 반찬으로 같이 먹었다.
저녁에는 장모님이 사 주신 새우를 쪄 먹었다.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찌니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일단 아내와 애들을 까 주고 나서 나도 좀 먹을 생각이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애들 먹는 속도와 지구력이 역시나 상상 이상이었다. 차마 새우에 손을 대기 어려웠다. 아내는 애들 그만 주고 좀 먹으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껍질을 까서 몸통은 애들을 주고 난 뗀 머리를 쪽쪽 빨아먹었다. 새우가 좋아서 그런가 머리도 맛있었다. 진짜로 맛있었다. 새우 몸통보다 머리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머리도 맛있었다. 아이, 덕분에 영양 보충 실컷 했네. 원래 머리에 영양분이 더 많ㅇ…또르륵.
“시윤아. 연휴가 끝났네”
“아빠아 내일 쭐근이에여어?”
“그렇지”
“아쉽다아. 그럼 내일만 가면 또 쉬는 거에여어?”
“아니. 주말 될 때까지 계속 출근해야지”
짧겠지 짧겠지 했는데 정말 짧다. 같이 놀 사람을 잃어 아쉬운 아이들, 같이 혹은 대신해주는 사람을 잃은 아내, 대장에서 대리로 전락(?)하는 나. 누가 가장 후유증에 시달릴까 궁금하네. 나는 왠지 아내일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