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5(월)
아내가 보내주는 아이들의 일상의 사진을 보니, 역시나 참 그리웠다. 4일을, 내 생각에는 크게 후회할 만한 행동없이 잘 지내서 더 그랬나 보다. 이건 나만의 감정이다. 아내는 느낄 수 없는 감정.
그리움, 보고싶음.
아, 아내도 느끼긴 하겠구나. 남편을 향한 그리움, 보고싶음.
아니나 다를까, 오전부터 짬이 날 때마다 통화를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반면, 아내의 목소리를 덮는 서윤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많이 힘들어?”
“뭐. 그렇지 뭐. 여보랑 같이 하던 일상을 혼자 하려니”
“맨날 혼자 하면서 뭘”
“그래도. 4일을 같이 보냈으니까. 다르지”
그런 와중에도 아내는 저녁으로 특별식을 준비했다. 요즘 얼마전 산 솥(?)냄비를 애용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걸로 솥밥을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오늘은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거기서부터 들렸다. 천천히 걸어도 10초면 가는 짧은 거리인데도 마음이 조급해져서 걸음을 재촉했다. 서윤이랑 아내의 표정이 비슷했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가히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하루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서윤이가 낮잠을 한 번 건너 뛰었다고 했다. 원래 두 번을 자는데 두 번째 잠을 그냥 지나간 거다. 듣고 보니 엄청 졸려 보였다. 졸린데 못 자니 짜증이 났나 보다. 아직 솥밥을 마치지 못한 아내에게서 서윤이를 떼어내고 내가 안았다. 당연히 울었다. 그것도 엄청 슬프게.
“여보. 그냥 여보가 마무리 좀 해 줄래요?”
다시 아내에게 서윤이를 넘기고 마무리를 했다. 아내가 불러주는대로 달래장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서윤이는 아내가 계속 안고 있었고, 우리가 밥을 먹을 때는 같이 이유식도 먹었다. 엄마 품에 한참 안겨 있어서 그랬는지 배가 차서 그랬는지 아무튼 그 뒤로는 의외로 수월했다. 아내는 서윤이를 먼저 재우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괜찮았고, 평소처럼 언니와 오빠가 잘 때 같이 잤다.
솥밥은 아주 맛있었다. 여러 재료를 넣고 솥으로 지은 밥에서 나는 특유의 향기가 입맛을 당겼고, 실제로 맛도 있었다. 인사동에 가면 아내와 내가 연애할 때부터 몇 번 가 본 ‘조금’이라는 솥밥집이 있다. 거기 이름이 왜 ‘조금’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오늘 아내가 만들어 준 솥밥의 이름도 ‘조금’으로 짓고 싶었다. 양이 참 ‘조금’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모자란 듯 정갈하게 먹는 게 솥밥 감성인 것 같긴 하지만. 허리띠 풀고 먹으면 세 솥밥은 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정도면 가마솥밥을 먹는 게 낫나. 아무튼 누룽지도 제대로 눌러 붙어서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면서 ‘아빠 안 보고 싶었냐’고 물어봤다. 둘 다 언제나 대답이 비슷하다. 시윤이는 ‘엄청 보고 싶었다. 하늘만큼 땅만큼. 백개 넘게’ 소윤이는 ‘보고 싶었다. 계속’ 엎드려 절받기라고 해도 좋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사이에 오늘도 집에서 나왔다. 빵을 사러 나왔다. 너무 매일 사다 주면 감동의 내성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뭐 빵이라면 감동이 없더라도 입은 즐거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먹을 빵 하나, 내일 애들이 먹을 빵 하나를 사서 돌아왔다.
아내는 아직 나오기 전이었다. 사 온 빵은 아내가 보지 못하도록 싱크대 밑 장에 넣었다. 당장 보지는 못하되 반드시 열 것 같았다. 거기에는 아내가 낮에 사 놓은 카카오 와플도 있었다.
아내가 곧 나왔고 아내에게 커피를 한 잔 타 줬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커피를 마시다 보니 카카오 와플이 생각났는지 그걸 꺼내려고 장을 열었다. 아내는 설거지를 하느라 옆에 선 내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헐. 이거 뭐야?”
“뭐긴 뭐야. 빵이지”
“언제 갔다 왔어?”
“아까”
“바로 나갔어?”
“어, 거의”
“대박. 진짜 대박”
아내는 맛나게 먹었다.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