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7(수)
퇴근하고 집에 바로 가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야 해서 바로 약속 장소로 갔다. 아빠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아이들은 영상 통화를 요청했고, 차에서 짧게 영상 통화를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교대를 했다. 이번에는 아내가 나가야 했다. 사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부부를 만나야 했는데, 한꺼번에 같이 만날 수 없으니 남편끼리 따로, 아내끼리 따로 만난 거다. 아내와 나에게는 첫 시도였다. 아내가 밤에 이토록 길게 외출하는 건. 과연 서윤이가 깨지 않을지, 깨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자기는 할지. 모든 것이 안개속이었다.
아내는 나갔고 난 홀로 남았다.
‘오. 역시 난 행운아인가.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가다니’
라고 생각하며 깝죽거릴 때쯤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다시 자는 건 아닐까 싶어 기다려 봤지만, 울음소리는 오히려 가까워지고, 커졌다. 문을 열어보니 문 앞까지 와서 공기청정기를 붙잡고 서서 울고 있었다. 안고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에 잠시 눈을 찌푸리더니 초점을 맞추고 나서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한 5초는 응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뭔가를 열심히 찾았다.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였을 거다. 일부러 화장실도 보여 주고, 작은방도 보여 주고, 구석구석 안고 다녔다. 엄마가 이 집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려줬다. 이 쪼그마한 게 진짜 뭘 아는 건지, 울지도 않고 조용히 내 품에 안겨서 가만히 있었다. 완전히 푹 기대는 때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긴 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손을 빨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기도 졸렸는지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열심히 손가락을 빨았다. 자려고 하는데 잠이 안 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잠이 안 오는데 자는 척하는 느낌이었다. 손가락 빠는 소리가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다. 한참 안고 있으려니 팔도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아기띠로 바꿔 안았다. 아기띠를 메는 동안 잠시 바닥에 내려놨는데, 그때도 안 울었다. 이게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다. 보통은 ‘어디 감히 나를 바닥에 내려놓느냐’는 듯 세차게 운다. 오늘은 나를 말똥말똥 쳐다봤다. 그것도 약간의 미소가 느껴질 정도로. 마치 얼마든지 기다려 줄 테니 천천히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기띠를 메고 안아주자 바로 가슴에 고개를 묻고, 다시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마찬가지로 한참 동안 그 상태였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드디어 소리가 좀 작아지고, 나머지 한 손은 축 늘어졌다. 잠이 조금 깊게 들었다는 신호였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라 나도 거실에서 같이 잘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서윤이를 눕혔다. 5초 정도 지켜봤는데 깨지 않았다. 거실이라 좀 추울 테니 내 옷이라도 덮어주려고 작은방 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 순간, 서윤이가 깨서 울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수월할 리가 없지’
다시 아기띠를 메고 서윤이를 안았다. 서윤이는 각성을 했는지 아까보다 더 안 잘 것 같았다. 심지어 나를 ‘의도적으로’ 보면서 웃어주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난 또 그게 좋다고 실컷 즐겼다. 정말 0.00001%도 악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서윤이를 키우면서 많이 하는 생각인데,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윤이처럼 느긋하고 넓게 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매 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아쉬운 게 많다. 대할 때는 남의 자식 대하듯 하고, 사랑할 때는 막내를 사랑하듯 하면 참 모범적인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무튼 서윤이는 그 뒤로는 자지 않았다. 그러다 아내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무슨 큰일이 난 듯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내를 보고 나서도 울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가겠다고 막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나에게 안긴 채, 아내에게 웃음을 띠었다. 아내가 보기에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기분이 좋았다. 서윤이가 아빠를 조금 더 받아들인 게 아닐까 싶었다. 육아공학적으로 보자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부녀관계학적 측면에서는 반길 만한 일이었다. 자녀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건, 언제나 그 자체로 기쁘고 뿌듯한 일이다.
오늘의 일을 통해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한 계단 더 올라섰다. 이제 아내가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면 얼마든지 나가도 된다는 임상 결과를 쌓았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줄 수 있는 보람찬 일이 가능해진 거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오늘처럼 울지 않고 안겨 있는다는 보장도 없고, 울지 않더라도 1시간 넘게 안고 자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ㄱ...여보, 이거 좋은 거 맞지? 나 막내랑 친해졌으니까 좋은 거지? 그렇지?
여보. 아직 코로나가 한창이야. 함부로 돌아다니고 그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알지? 자유도 좋지만 지금은 집에서 자중해야 할 때야. 알지? 내가 결코 여보가 이제 막 나가고 그럴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 절대 절대 절대 아니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