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하는 저녁 식사의 양면

21.02.17(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낮에 목장 모임이 있었다. 최근에 목장이 바뀌었는데 좋은 리더님을 만난 듯하다. 집사님께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아내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고, 눈에는 경탄이 가득했다. 아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이 썩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됐다.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요즘에는 두 가지 생각을 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기르고 싶다는 생각. 아내가 좋은 분을 만난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목장 모임이 끝나고 전화가 왔다. 아내랑 통화하면, 공식 질문이 세 가지 정도 던진다.


‘뭐 하고 있었어?’

‘애들은 뭐해?’

‘여보는 괜찮아?’


목장 모임을 막 끝내고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특별히 힘들거나 괴로운 상황도 아니었고. 애들은 뭐 하냐는 질문에는 보통 ‘둘이 놀고 있어’, ‘방에서 놀고 있어’, ‘책 읽고 있어’ 등의 답이 돌아오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소윤이는 지금 상심했어요”


숙모 집에 가기로 했었는데, 숙모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고 이로 인해 숙모 집에 가는 일정이 취소된 거다. 내 짐작이지만, 숙모는 소윤이 수준에 잘 맞춰서 놀아주니 좋아하는 거 같다. 아무튼 소윤이 입장에서는 받았다 뺏긴 상황이니 상심이 큰 것도 이해가 갔다. 1-2시간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숙모 집에 가기로 했다면서. 아마 소윤이의 마음을 헤아린 아내와 숙모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였을 거다.


퇴근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 또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퇴근하고 있지”

“여보. 오늘은 외식을 해야겠어”

“그래”

“밖에서 먹자는 건 아니고 내가 집에 가는 길에 사서 갈게”

“그래”

“그때 우리 못 먹었던 짬뽕집 거기서 사 갈게. 여보는 뭐 먹을래?”

“나는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 같은데? 그냥 여보랑 애들 것만 사. 어차피 탕수육도 살 거지? 난 그거 먹을게”

“그래? 시간이 많이 촉박한가?”

“그럴 거 같아”


저녁에는 나의 목장 모임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목장 모임이 시작할 즈음 집에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 같이 저녁 먹을 수 있어여?”

“아니. 아빠 이제 목장 모임 시작해야 돼”

“아쉽다”


오늘도 아빠와 저녁을 먹지 못하는 거냐며 아쉬워했다. 나도 미안하고 아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윤이가 말을 보탰다.


“아빠아. 우리가아 임진각에 안 갔즈면 같이 먹을 주 있쩠을텐데에”

“임진각?”

“네에. 임지인가악”

“그게 어디야?”

“네?”


소윤이가 옆에서 의역을 했다.


“메이저진?”

“어, 맞아. 거기이”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는 식탁에 앉아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서윤이는 어쩌다 보니 내가 안게 됐다. 목장 모임도 시작이 됐다. 서윤이는 얌전히 있었다. 입막음용으로 쌀튀밥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래도 의외였다. 당장 엄마한테 가겠다고 그럴 줄 알았는데 내 허벅지 위에 앉아서 쌀튀밥을 주워 먹으며 놀았다. 책상 위의 온갖 것을 잡으려고 하길래, 그럴 때마다 그걸 치웠는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뒤로 젖혀 나를 쳐다봤다. 마치 ‘얼른 뽀뽀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윤이와 몇 번이나 뽀뽀를 주고 받았 아니 받지는 못했고 주기만 했다. 어제 나의 수고와 희생에 감복한 걸까. 아주 잠깐이었지만 오늘도 서윤이에게 큼직하게 마음을 뺏겼다.


물론 끝까지 그렇게 앉아 있지는 않았다. 당연히 엄마를 찾으며 칭얼댔고 아내가 데리고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러 들어가기 전에 나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고작 이틀,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 20-30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건데, 서로 애틋했다. 일주일 내내 애들 자는 것만 보며 출퇴근하는 아빠가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목장 모임을 마치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내 몫으로 탕수육과 사천탕면을 남겨놨다. 홀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진짜 혼자라서, 매일 이렇게 저녁을 보낸다면 그건 (나에게는) 끔찍한 일이지만, 함께 있으면서 가끔씩 이런 시간을 갖는 건 은근히 짜릿하다. 은근함과 짜릿함이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오늘도 꽤 늦게 나왔다. 아내는 어제의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줬다. 역시 아내랑 노는 게 제일 재밌다.


아내가 오늘 재밌는 표현을 들려줬다. 어느 오래된 부부의 아내가 말하길, 남편이 흡사 ‘비에 젖은 낙엽 같다’라고 했다는 거다. 아무리 털어내도 떨어지지 않고 찰싹 붙는다면서. 아내가 날 그런 취급하면 정말 슬플 거다. 그래서 열심히 투자하고 있다. 내가 커피 셔틀, 빵 셔틀을 괜히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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