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쐬고 들어갈까?

21.02.21(주일)

by 어깨아빠

6시쯤 서윤이가 수유를 했다. 아내는 수유를 마치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 서윤이는 그렇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생글생글 웃었다. 나도 기왕 깬 김에 서윤이 구경(?)이나 하다 자려고 했다. 서윤이는 딱히 나랑 놀지는 않았다. 공처럼 방바닥을 뒹굴뒹굴하며 여기 누웠다 저기 누웠다 그러기만 했다. 그러다 한순간 아내 옆에 자리를 잡더니 잠들었다. 서윤이가 잠들고 나서도 계속 봤다. 발도 만지고 손도 만지고. 거실에서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새벽같이 일어났나 보다.


서윤이는 깊이 잠들지 않았는지 그렇게 오래 자지는 않았다. 서윤이의 소리를 들은 (내) 엄마가 방에 들어와 서윤이를 데리고 나갔다. 더 잘 생각은 없었지만 방에 계속 누워 있었다. 아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지난번에 신림동에 왔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침부터, 밥을 먹으면서, 무려 2시간 넘게 TV를 봤었다. 이번에는 오기 전에 미리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혹시나 할머니가 TV를 보여준다고 하셔도 예배드리기 전에는 안 볼 거라고 말씀을 드리라고. 일어나면 해야 할 일부터 하고 놀라고. 소윤이는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다며 당차게 대답했다.


일단 TV를 보지 않겠다는 약속은 잘 지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굳이 TV를 보지 않고도 재밌게 시간을 쓰는 법을 잘 아는 아이들이다(라고 생각한다). 성경읽기와 필사가 좀 어려웠나 보다. 한 번의 유예(?)를 줬는데도 ‘안 하면 안 되냐’라고 물어왔다. 약속한 건 지키는 습관, 엄마와 아빠가 없어도 해야 할 건 하는 습관을 위해 ‘그건 안 된다’라고 답해줬다. 대신 아내가 분량을 많이 줄여줬다. 소윤이는 평소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 만에 마치고 나왔다. 얼굴 가득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뭐지? 생각보다 엄청 조금인데?’


라고 생각했으리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리 집에 갈 시간을 일러줬다. 점심 먹고 갈 거라고 얘기했다. ‘점심 먹고’라고 얘기해 놔야, 늦은 오후쯤 출발하게 된다. 점심 먹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TV를 보여줬다. 신림동은 요금제가 저렴한 거라 무료로 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유료로는 보여주지 않고. 결국 TV 만화 채널에서 나오고 있는 것 중에 봐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보고 싶어 하던 ‘뽀로로’, ‘타요’, ‘폴리’ 같은 건 하지 않았고, 절대 보여주지 않는 류의 만화만 나왔다. 그러던 차에 어디선가 ‘엄마 까투리’라는 만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딱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좋아했고 내용도 아주 바람직했다.


“소윤아, 시윤아. 몇 분 볼래?”

“음, 20분?”

“20분?”

“아니 아니, 30분이여”

“그래. 30분”


소박하다. 둘 다.


출발하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겼다. 샤워를 시켰다. (내) 엄마가. 나의 의지는 아니었고 아이들의 선택이었지만, 참 편했다. 서윤이도 씻겨주려고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았는데 내가 데리고 들어갔더니 막 울었다. 원래 물을 좋아하는데 울길래 오늘은 기분이 안 좋은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내가 들어가니까 괜찮았다. 나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직은 역부족이구나. 괜찮다. 소윤이 때 많이 겪었다.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날씨가 엄청 좋았다. 바람은 약간 쌀쌀한 느낌이었지만 이른 봄 같은 날씨였다. 낮에 다 함께 산책이라도 나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모두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모두 잠들었다. 소윤이가 잠든 게 이례적이었다. 거울로 소윤이 모습을 관찰했는데 소윤이는 어떻게든 잠을 깨보려고 노력했다. 눈도 꽉 감았다가 뜨고, 손으로 막 비비기도 하고. 도대체 왜 안 자려고 하는 건지 궁금하다. 결국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지긴 했다.


“여보.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냥 가기가 아쉽네”

“그러게. 어디 갈 데 없나”


시간이 꽤 늦어서 멀리는 부담스럽고, 집에서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싶었다. 바람이 쐬고 싶기도 했지만, 곧장 집으로 들어가서 진한 육아의 향기를 맡고 싶지 않기도 했다. 뭔가 해방된 듯한 느낌을 오래 지속하고 싶었다. 아내와 내가 애호하는 카페 근처의 아주 작은 광장에 가기로 했다. 작아도 애들 자전거 타면서 바람 쐬기에는 딱이었다. 내 느낌이겠지만, 요즘에는 바람 쐬러 나오면 항상 서윤이가 차에서 잠들고, 그럼 아내도 차에서 서윤이를 지키고 나와 소윤이, 시윤이만 나가서 놀았다. 다행히(?) 오늘은 서윤이가 잘 일어난 덕분에 온 식구가 함께 나갔다. 더군다나 서윤이는 기분이 엄청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모차에 앉아 있었고, 웃음이 끊이지 않은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아기띠로 안아주곤 했다. 나랑 장난도 많이 쳤다.


소윤이, 시윤이도 재밌게 놀았다. 한참 동안 땅따먹기를 했다(맞나? 땅따먹기?). 시윤이의 어설픈 뜀박질 덕분에 많이 웃었다. 자전거도 실컷 타고. 나무 그네가 있어서 그것도 재밌게 탔다. 소윤이와 나이가 같은 여자아이가 소윤이에게 와서


“같이 놀래?”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여자아이와 어울려 함께 킥보드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그네도 탔다.


“넌 집이 어디야?”


“저기 로케트 모양 있는데 있죠? 거기가 우리 집이구요. 저기 옆에 십자가 있는 데가 우리 교회에요”


“아, 그렇구나. 그럼 엄마랑 아빠는 집에 계시고 너희끼리 나온 거야?”

“아빠는 일하러 가셨고, 엄마는 아직 교회에 있어요”

“아 그렇구나. 좋겠다. 집 앞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어서. 자주 나오겠네”

“아니에요. 평소에는 맨날 집에 처박혀 있어요. 언니가 안 나와요”

“아, 그래? 언니가 나와야 나올 수 있구나. 너는”


그 여자아이가 사용한 ‘처박혀’라는 표현이 강렬하게 남았다. 하긴, 요즘 같은 시기에는 처박혀 있다는 표현이 과한 것도 아니긴 하지. ‘그래도 조금 더 부드러운 표현을 쓰면 좋을 텐데’하는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샀다. 예전에는 부모님 댁에 가면 제일 좋은 게 애들 재우고 혹은 재우지 않아도 누리는 자유였는데 이제 아니다. 밥 걱정 안 하는 게 제일 좋다. 뭘 먹을까, 먹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때에 맞춰 풍성히 준비되는 식사 시간이 제일 좋다. 부모님 댁을 떠나자마자 다시 밥 고민이 시작됐다. 뭔가 만들어 먹이는 건 너무 귀찮아서 김밥을 샀다. 그래도 김밥이 오랜만이라 애들도 반겼다.


신림동에서 샤워를 하고 온 덕분에 저녁 시간이 한결 홀가분했다. 재우기 전까지는 홀가분했지만, 재우러 들어가면 무겁기가 그지없다. 물론 아내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아내는 오늘도 겨우 나왔다가 쉽게 끌려 들어가고, 겨우 나왔다가 다시 끌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여보. 주말이 끝났네”

“그러게”

“그래도 다음 주 월요일은 휴일이야”

“오. 진짜 그러네?”


당장 내일(월요일)이 오지도 않았는데, 다음 주 월요일을 꿈꾸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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