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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5(목)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의 오늘 첫 끼는 무려 돼지고기였다. 어제 누가 질 좋은 고기를 주고 가서 아내는 아침부터 그걸 구웠다. 아내의 표현처럼 아침부터 럭셔리한 식탁이었다.


요즘 아내가 보내주는 ‘낮의 일상’ 사진을 보면 서윤이가 부쩍 잘 어우러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너무 아기 같아서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요새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언니와 오빠가 하는 걸 제법 잘 따라하고, 같이 놀아 주는 건지 아닌지를 아는 느낌이다. 언니와 오빠 사이에 낀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오늘도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이번 주는 특히 저녁에 뭔가 일이 많아서 좀 미안했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아무 일이 없는 날은 피곤하다고 못 받아주고, 아무 일 있는 날은 그 핑계로 못 받아주고.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린 아내를 위해 말미를 주지 않고 일찍 재우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다. 만약 아내가 ‘아빠하고도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한다’라며 배려를 해줬으면, 참 힘들었을 거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난 온라인 모임을 준비했다. 회의를 개설하고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뭔가 짜증 비스무리한 감정이 조금씩 쌓였던 것 같다. 물론 모임은 잘 마쳤지만 뭔가 개운치 않았다. 잘 밟으면 으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가만히 두면 무럭무럭 자랄 것 같기도 한, 영 불편한 감정이 어딘가 숨어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운동을 핑계로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얼마 전에 중고로 산 거라 뒷바퀴에 바람을 좀 넣어야 했다. 단지 안에 바람 넣는 기계가 있긴 했는데, 다 고장이 나서 제 기능을 하는 게 없었다. 인근 단지에는 혹시나 있을까 싶어 돌아다녔는데 마찬가지였다. 못 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 놓고 달리기에는 위험한 정도라, 그렇게 동네 아파트만 순회하다가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 공유 자전거 보관소에 펌프가 있는 걸 발견했다. 바람을 빵빵하게 채웠지만 더 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결국 생각처럼 ‘쌩쌩’ 달리며 스트레스를 풀지는 못하고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서 내 책상을 봤는데, 엉망이었다.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 있었다. 물론 내가 어질러 놓은 것도 있었지만, 그때 내 눈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올려놓은 것만 보였다. 그게 또 언짢았다. ‘여기다 아무거나 휙휙 갖다 놓지 말라고 해도 왜 그렇게 그걸 못 지키지?’ 하는 생각과 함께 ‘불편한 마음’은 ‘화’로 구체화되어 차곡차곡 쌓였다.


티가 났나 보다. 아내가 나의 기색을 살피며 ‘기분이 안 좋냐, 자기 때문에 그런 거냐’라고 물었지만 그냥 아니라고 했다. 물론 아닌 게 아니라는 걸 아내도 알아차렸겠지만. 그렇게 말없이 소파에 앉아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내 기분을 신경 쓰며 맞춰주려던 아내도 답답했는지 자기 할 일을 했다. 나의 이런 모습(?)에 아내도 썩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난 이런 걸 너무 빠릿하게 느껴서 문제다. 난 이게 또 못마땅했다. ‘내가 기분이 좀 안 좋으면 풀어주거나 그냥 기다리면 되지 거기다 대고 자기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람. 나는 기분 좀 나쁘면 안 되나’하는 생각과 함께 또 나쁜 감정을 적립했다.


빨래를 개는 아내에게 한마디 내뱉었다.


“여보도 기분이 안 좋아?”

“아니”

“뭘 아니야. 안 좋구만”

“나도 썩 좋지는 않지”

“여보는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항상 그런 식이네. 항상 같이 기분이 안 좋네”


아내가 뭐라고 받아쳤는데 그걸 듣지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바로 누웠다. 잠귀가 밝은 우리 막내는 나의 소리에 잠이 깨서 울었고, 아내도 이어서 들어왔다. 물론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난 그냥 잤고, 아내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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