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정산

21.02.26(금)

by 어깨아빠

어제, 아내와 그렇게(?) 마무리하고 나서는 당연히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모두 곤히 자는 새벽에 집에서 나오니까. 혹시라도 아내가 수유를 하고 있었더라도, 아주 건조한 인사 정도 나눴겠지만. 서로 마음만 먹으면 퇴근해서 만날 때까지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늘은 하필 월급날이었다. 지금 회사로 옮긴 후로는 대표님이 카톡으로 월급 명세표를 보내 주시면 그걸 복사해서 아내에게도 보내는, 우리 집만의 전통(?)아닌 전통이 생겼다. 그러면서 서로 한 달 동안 수고했고, 감사했다고 짧은 격려, 감사도 덧붙인다. 명세서를 핑계 삼아 아내에게 짧은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정말 짧은). 아내도 답장을 보냈다. 사과에 화답하는 내용과 한 달의 노고를 치하하는 내용도 함께. 평일 정산을 깔끔하게 하고 주말에 돌입하는 게 좋다. 안 그러면 아까운 주말의 시간을 다투는데 낭비하게 된다.


퇴근이 가까워졌을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길래 받았는데, 소윤이었다.


“아빠. 어디에여?”

“아빠? 사무실이지. 소윤이는 어디 나갔어?”

“아, 네. 우리 카페 왔는데 엄마가 아빠 커피도 사 가냐고 물어보라고 하셨어여”

“아, 그래? 무슨 카페 갔는데?”

“아, 모르겠어여 저는. 아무튼 카페 왔는데 아빠 커피도 사 갈까여?”

“그래. 아빠 커피도 사 줘”

“아이스 아메리카노?”

“응”

“알았어여. 엄마 바꿔줄게여”


여전히 신기할 때가 있다. 소윤이랑 이렇게 일상의 이야기로 의사소통이 되는 게. 소윤이랑 함께 서윤이를 보면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 소윤아. 아빠는 소윤이가 지금 서윤이만큼 컸을 때도 다 기억이 나는데”

“그래여?”

“그럼.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소윤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야말로,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아내는 일명 밤리단길(정발산역 일대의 ‘밤가시마을’ 곳곳의 카페와 식당이 분포된 곳을 이르는 말)에 있는 카페에 갔다고 했다. 주말이나 쉬는 날, 뭔가 새로운 곳에 가고 싶으면 마음먹고 가는 게 대부분이다. 평일에, 밥 먹듯이 가는 곳은 당연히 아니고 마음먹고라도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다.


“네임드? 갑자기?”

“어, 그냥. 드라이브도 하고 싶고 해서”


아이 셋과 함께 하는 ‘드라이브’가, 보통 떠올리는 ‘그런 드라이브’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내의 드라이브 욕구가 혹시 어제 있었던 나와의 일과 관련이 있는가 싶어서 뜨끔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평이했고, 소윤이의 음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괜찮았다.


마침 그 근처에 아내 아는 동생이 하는 브런치 가게도 있다고 했다. 거기도 잠시 들렀다가 온다고 했는데, 아내는 아예 거기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도 사 왔다. 저녁에 교회에 가야 해서 오늘도 시간이 촉박했다. 물론 오늘은 나만 촉박한 거라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일이 있는 거냐’는 식의 아쉬움을 표현했다.


“내일 주말이고, 월요일에도 쉬잖아”


서윤이는 잠깐이었지만 아주 기분 좋게 나랑 놀아줬다. 요즘은 내가 서윤이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서윤이가 나랑 놀아준다. 특히 먹을 거라도 좀 주면 정말 강아지처럼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웃음도 주고, 침도 주고, 냄새도 주고, 볼도 주고, 엉덩이도 주고 내가 좋아하는 걸 다 준다. 먹을 게 소진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떠날 때가 많긴 하지만.


교회에 다녀오니 아내는 쉬고 있었다. 방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애초에 자러 들어간 시간이 늦었는데, 애들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아내 덕분(?)이었다고 했다. 모든 걸 마치고 재우러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진이 빠져서 그냥 가만히 앉아 체력을 회복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신나서 노는 동안,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떤 기분, 상태였는지 알 것 같았다. 결코 기분이 나쁘거나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그냥 몸이 지친 상태였을 거다. 어쨌든 나랑 다시 만났을 때는 체력을 조금 채운 상태였다. 사실 모두 재우고 다시 거실로 나오는 그 순간에 사실은, 거짓말처럼 체력이 원상복구되기는 한다.


영화를 보기에는 너무 늦어서, 영화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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