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바퀴여, 안녕

21.02.27(토)

by 어깨아빠

주말 아침에 보통 다 함께 일어나는, 모두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 있기는 하다. 어떤 날은 서로 대화도 나누고 그런다. 그러다가 다시 잠들기도 하고. 물론 애들은 그러는 법이 없고 보통 아내나 내가 그런다. 오늘도 어찌하다 보니 아내가 애들을 다 데리고 나갔고 나 혼자 방에 남았다. 잠들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더 누리다 나가고 싶었다. 은밀하게 아침의 고요를 즐기려는데 눈치 없이 자꾸 재채기가 나왔다. 콧물도 나와서 훌쩍거렸다. 인간의 청각은 참 예민한 것이, 소리만 들어도 ‘저 사람이 자는지 안 자는지’를 알 수 있다. 밖에서 아내와 소윤이의 대화가 들렸다.


“엄마. 아빠 안 주무시는 거 같아여”

“그래? 그럼 아빠가 그냥 누워 계시나 보지”

“일어났는데 왜 안 나오시지?”

“일어나셨어도 그냥 혼자 계시고 싶을 수도 있는 거야”

“엄마. 잠깐 들어가서 보고 오면 안 돼여?”

“그럼 들어가서 ‘아빠 왜 안 나오냐, 얼른 나와라’ 이런 말 하지 마. 그냥 보기만 하고 나와”


소윤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난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스윽 들어왔다가 스윽 나가는 소윤이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렇게라도 지키고 싶은 나의 주말 아침. (그러고 나서 금방 나갔다)


오후에는 처가에 가기로 했다. 하루를 자고 오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연히 기대가 컸다.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자기만 해도 좋나 보다. 가는 김에 소윤이의 ‘두 발 자전거’ 연습을 시켜주려고 했다(처가 근처에 아주 좋은 공원이 있다). 차에 아이들 자전거와 중고로 산 내 자전거도 실었다. 내 자전거는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세 대를 싣고 다니는 게 할 짓 아니 할 만한 일인지 시험해 볼 겸 시도해 봤다. 역시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꾸역꾸역 싣기는 했는데 안 그래도 없던 안락함이 더더욱 사라지고, 짐차의 느낌이 증폭됐다. 맨 뒤에 혼자 앉게 된 것도 모자라 자전거의 위협(?)을 받게 된 소윤이는, 울적한 심경을 드러냈다.


처가에 도착해서 잠깐 앉았다가 바로 공원으로 나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장 보러 가셨고, 우리만 공원에 갔다. 소윤이의 첫 두 발 자전거 시도였다. 헬멧과 보호 장구를 단단히 채우고 시작했다. 소윤이는 의외로 잘 나갔다. 물론 넘어질까 봐, 아빠가 놓을까 봐 겁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계속 탔다. 그래서 힘들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낮은 자전거를 잡고 뒤에서 쫓아가려니 금방 숨이 헐떡거렸다. 조금씩 두 발의 매력을 느꼈는지 소윤이는 멈추지도 않고 계속 다시 탔다. 아내와 교대해 가며 소윤이의 뒤를 쫓아다녔다.


소윤이는 금방 적응했다. 꽤 긴 거리를 나의 보조 없이 달렸다.


“오오오오오! 소윤아! 대박!”

“아빠아악! 아하하하하하!”


이건 또 뭔가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새롭게 터득하는 게 참 많지만 대개는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게 된다. 뒤집기, 앉기, 서기, 걷기, 뛰기, 읽기, 쓰기, 외우기 등등. 물론 자기 나름대로는 여러 번 넘어지고 실패하며 얻은 성과겠지만. 두 발 자전거는 약간 새로운 세계다. 내가 자녀와 ‘함께’ 뭔가를 연습해서 이뤄낸, 첫 경험이었다. 이 기분이 꽤 짜릿했다. ‘함께’ 그 과정을 지내고, 성취를 얻어낸 쾌감이 매력적이었다. 남들 다 겪는 두 발 자전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가 싶지만, 내 나름대로 큰 배움이 있는 날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땀으로 옷이 젖었지만, 상쾌했다.


“거 봐, 소윤아. 금방 된다니까. 어때? 완전 다르지? 네 발 자전거 하고는”

“맞아여. 아빠. 진짜 재밌어여. 얼른 더 잘 타고 싶어여”


그 뒤로는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자꾸 넘어졌다. 다음을 기약하며 거기서 멈췄다.


시윤이가 신경이 쓰였다. 아내는 서윤이를 돌보는 데 집중했고 난 소윤이에게 신경 쓰다 보니 아무래도 시윤이가 좀 걸렸다. 소윤이가 쉴 때는 시윤이에게 가서 괜히 더 요란을 떨었다.


“아빠아. 저도 누나쩌럼 뒤에저 잡아주세여어. 네 발 자전거라도오”


보조바퀴가 달린 네 발 자전거지만, 뒤에서 잡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다 자기도 두 발 자전거를 타 보겠다고 해서 태워줬다. 깜짝 놀랐다. 소윤이보다 겁이 많기는 했지만 시윤이도 조금 더 연습하면 금방 익힐 것 같았다. 속으로만 놀라고 겉으로 너무 드러내지는 않았다. 시윤이한테 “오, 시윤이도 엄청 잘 타네. 금방 타겠네” 정도만 했다. 새로운 성취 경험을 만끽하고 있는 소윤이의 기분을 지켜주고 싶었다. 소윤이는 이따금씩 시윤이에게 진지하게 충고도 했다.


“시윤아. 어차피 넘어져도 돼. 헬멧도 하고 있으니까 많이 안 다쳐. 알았지?”


서윤이는 계속 유모차에 앉아 있었는데,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나랑 눈만 마주치면 웃었다. 그냥 계속 웃었다. 덕분에 좀 수월하게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오자마자 목욕을 했다. 욕조에 물 받아 놓고. 할머니 집이라서 누리는 호사랄까. 그 호사는 아내와 나도 누렸다. 목욕을 한 건 아니고 목욕의 모든 과정을 장모님이 다 알아서 하셨다. 아내와 나는 푹 쉬었다. 서윤이도 이제 ‘직계가족’의 집에서는 안정감을 느낀다. 예전처럼 낯가림하는 건 아예 사라졌다. 하도 잘 노니까 시간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 벌써 10시야?”

“그러게. 쟤 왜 이렇게 멀쩡해?”


보채고 투정 부리는 게 전혀 없었다. 그래, 낮에라도 이렇게 지내라. 밤에 그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


소윤이는 몇 번이나 내게 말했다.


“아빠. 내일 예배드리고 시간 되면 또 두 발 자전거 타러 가도 돼여?”

“시간이 되면. 내일은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혹시 시간 되면 타러 가도 돼여?”

“그럼 되지”


부모의 직감이라는 게 있다.


‘아, 내일은 왠지 시간이 없을 거 같은데’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니 단언하지 않았지만, 왠지 느낌이 그랬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묻는 걸 보면 기대가 큰 것 같다. 실망도 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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