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도 있는 것처럼

21.02.28(주일)

by 어깨아빠

당연히 방에 남은 건 나와 아내, 그리고 서윤이었다. 서윤이도 어느샌가 거실에 나가고 없었다. 아내는 잤고, 난 잠과 깸의 경계 위에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하는데 거실에서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의 소리였는데 대충 들어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뭔가 짜증을 내며 고성을 지르려는 듯한 목소리였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한발 늦었다. 막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이미 시윤이가 얼굴을 찌푸리고 소리를 지르며 식탁에 놓인 반찬을 집어던졌다. 그걸 내가 보고 말았다. 바로 시윤이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이유는 둘째 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책임만 물었다. 우리 집에서 타인을 향한 폭력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는 행동이었다.


시윤이의 훈육을 마치고 소윤이를 살짝 불러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소윤이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객관적으로 상황을 진술했다. 소윤이에게 들어 보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아침을 먹는데 시윤이랑 소윤이가 자꾸 장난을 치니까 장모님이 몇 번을 잘 먹으라고 했고, 시윤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장모님이 좀 세게 얘기를 했더니, 시윤이가 선을 넘고 만 거다. 엄마나 아빠가 아닌 사람이, 특히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는 건 적응이 안 됐나 보다. 아내랑 이야기하다 보니 소윤이도 한창 그럴 때가 있었다.


나의 양육 혹은 훈육 목적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내가 없어도 내가 있을 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내 품을 떠나서도 내 품에서 배운 가르침대로 사는 것. 나의 가르침이 어딘가 부족하고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아도 잘 이해하고 그걸 뛰어넘어 사는 것.


언제나 그렇듯 깔끔한 훈육은 서로에게 뒤끝이 없다. 시윤이는 금방 자기 기분을 되찾았고, 나도 방에서 나온 뒤로는 더 이상 시윤이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역시나 소윤이는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러 갈 수 있는지 계속 물어봤다. 점심때는 형님(아내 오빠)네도 잠깐 들렀는데, 밥 먹고 커피 사 와서 마시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소윤이가 물어볼 때마다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어, 소윤아. 아무래도 오늘은 시간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 소윤이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그럼 아주 잠깐은여? 혹시라도 잠깐 시간 되면 타러 가자여”


그럼 나는 또 이렇게.


“그래. 시간이 되면 타러 가는데 아마 오늘은 안 될 거 같아”


게다가 형님네의 이사 준비 때문에 형님네와 장모님, 장인어른은 급히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결국 소윤이는 서럽게 울고 말았다.


“아빠아아. 그게 아니라아아. 저느으은 자전거도 타고 싶긴 했지마아안.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에 보여 드리고 싶었어여어어. 엉엉엉”


소윤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래, 그래’라고 하며 안고 달래줬다. 소윤이는 꽤 한참 울었다. 안 그래도 서운한데 시간까지 촉박해서 급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서윤이는 오늘도 어제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때는 노트북을 손에 닿는 위치에 뒀는데도 만지지 않았다. 만지려고 할 때쯤 “안 돼”라고 하면 씨익 웃으면서 쳐다보고는 손을 내렸다. 얘는 자기의 위상을 아는 건 물론이고 그 위상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는 게 분명하다. 오후에 아내와 내가 잠깐 커피를 사러 나갔다 왔는데, 서윤이도 데리고 갔다. 유모차에 태웠는데 갔다 오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낮과 밤이 다른 두 얼굴의 막내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애들도 비슷했는데, 아내와 나는 애들 재우고 먹으면 되지만 애들은 그럴 수 없으니 그래도 저녁을 먹였다. 어제 먹고 남은 계란 카레를 데워서 밥에 비벼줬다. 별로 배도 안 고프고, 어제 먹었던 건데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맛있게 먹었다. 기특하다.


처가에 가서 잘 쉬고 왔는데 왜 이렇게 피곤했는지 모르겠다. 잘 준비 다 하고 아내가 애들 책을 읽어주는 동안 옆에서 기다렸는데, 코를 골며 졸았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는 길에 차에서 잤기 때문에 일찍 잠들 리는 없었다. 자기 전에 미리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너희가 낮잠을 잤기 때문에 일찍 잠들지는 못할 거야. 그래도 떠들거나 돌아다니면 안 돼. 그러다 서윤이 깨면 안 되니까. 엄마도 서윤이만 잠들면 나오실 거야. 알았지?”


엄마는 나와서 아빠랑 라면도 끓여 먹고, 영화도 보고, 과자도 먹어야 하거든.


나의 엄포가 먹혔는지 평소에는 화장실을 핑계로 꼭 한 번씩 나오던 녀석들이 오늘은 나오지 않고 잘 있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아내와 평화로운 주말의 마지막 밤이지만 월요일도 휴일이라 너무나 즐거운 밤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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