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1(월)
거실에 나간 소윤이와 아내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성경을 읽자는 아내의 목소리와 힘들어서 못 읽겠다는 소윤이. 아내는 평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자주 겪기 때문에 마음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윽 나가서 내가 나설지 말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나갔는데 소윤이가 죽상이었다.
“소윤아. 왜? 힘들어?”
“(끄덕끄덕)”
“뭐가 힘들어? 성경 읽는 게 힘들다는 거야, 몸이 힘들다는 거야?”
난 당연히 전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거였다. 몸이 힘든 게 아니면 힘들어도 읽어야 한다고 하려고.
“몸이 힘들어여”
“어? 몸이 힘들다고?”
“네”
“어디가?”
“모르겠어여. 그냥 힘들어여”
“그래?”
약간 당황했다. 아주 순간적으로는 ‘꾀병’을 부리나 의심도 했다. 찬찬히 보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힘들면 방에 가서 누우라고 했더니 누웠다. 그때 알아차렸다.
‘아, 소윤이가 어딘가 안 좋구나’
누워있던 소윤이는 속이 울렁거린다면서 화장실로 갔고, 토했다. 음식물이 넘어 오지는 않았고 위액만 많이 넘겼다. 열은 없었다. 손과 발이 차지도 않았다. 그냥 기운이 없고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아예 축축 처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누워 있기는 했어도 대화도 잘 하고, 웃기도 잘 웃었다. 다만 먹지를 못했다. 속이 많이 불편했나 보다. 아침은 아예 먹지를 않았고, 점심에는 서윤이 이유식으로 만든 걸 데워서 줬는데 몇 숟가락 먹더니 숟가락을 내려놨다.
“소윤아. 못 먹겠어?”
“네”
“왜? 맛이 너무 없어?”
“그런 건 아니고 속이 좀 안 좋아여”
가끔씩 시윤이랑 장난도 치고 서윤이랑 놀아주기도 했다. 어딘가 안 좋은 건 분명했는데 많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소윤이, 시윤이와 오늘 하기로 약속했던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동물 다큐멘터리 보면서 팝콘 먹기. 팝콘은 집에서 튀기고. 아픈 소윤이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속이 안 좋아서 밥도 못 먹었는데 팝콘부터 먹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누나가 아프니까 다음에’라고 하기에는 시윤이한테도 미안한 일이었다. 소윤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쪽을 택했다. 소윤이는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아내와 나는 팝콘, 시윤이는 팝콘과 과일, 소윤이는 과일을 먹으며 다큐멘터리를 봤다. ‘우리의 지구’라는 유명한 다큐 영상이었다. 무려 50분이었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동물의 왕국’ 같은 걸 챙겨 볼 정도로 동물 영상을 좋아했다. 특히 호랑이를 아주 좋아했다. 동물원에 처음 가서 축 늘어진 호랑이를 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했던 걸 잊지 못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50분 동안 아주 집중해서 봤다. 사실 내가 더 신나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요란한 빈 수레였달까.
소윤이에게 미안할 일은 또 있었다. 시윤이가 어제부터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했고, 오늘 사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당연히 소윤이가 이럴 줄은 몰랐고. 시윤이에게 넌지시 다른 음식을 권해봤는데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소윤이에게 이해를 구했다. 소윤이는 이번에도 받아줬다. 평소에 자주 시켜 먹는 곳에 전화를 했는데 휴무였다. 그다음 자주 시켜 먹는 곳에 전화를 했는데 또 휴무였다. 그제서야 여기저기 검색을 해봤는데 애초에 월요일이 정기 휴무인 곳이 많았다. 영업을 하는 곳도 물론 있었는데, 가성비를 생각하면 좀 아까웠다. 다시 한번 시윤이에게 슬쩍 다음을 기약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다.
“시윤아. 우리 탕수육은 다음에 먹는 건 어때?”
“아, 시러여어. 아빠랑 먹고 싶단 말이에여어”
“아빠랑? 평일에 저녁에 먹으면 되지”
“아빠 퇴근하고오?”
“응. 그럼 되지. 그때는 누나도 안 아프니까 같이 먹을 수 있고”
시윤이가 설득이 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펑펑 울었다.
“시윤아. 왜 울어. 괜찮은 거 아니었어?”
“엄마아. 저느은 아빠라앙 아빠가아 쉴 때에 같이 먹고 싶은 거에여어엉”
탕수육이 그렇게 서러울 일이니. 시윤이의 울음으로 저녁은 다시 탕수육으로 결정됐다. 아내가 서윤이, 소윤이와 방에 들어가서 한숨 잘 동안 난 시윤이와 나가서 저녁도 사고, 커피도 샀다. 아내가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다고 하니까 소윤이가 그랬나 시윤이가 그랬나
“아빠. 집에서 마시는 것도 맛있다면서여”
라고 물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생판 남인 전문가가 타 주는 돈 내고 마시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단다.
시윤이도 많이 피곤했는지 탕수육 받으러 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차에 앉아 졸았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는 않아서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소윤이는 저녁에도 자기를 뺀 나머지 식구가 탕수육 먹는 걸 그저 지켜봐야 했다. 소윤이에게는 밥에 물을 좀 붓고 끓여서 줬다. 그래도 아침, 점심에 비하면 좀 먹었다. 여전히 기운은 없었지만 자기 직전에는 완전히 멀쩡한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열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심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씩이나마 소윤이 상태도 나아졌고. 시윤이는 오늘도 탕수육을 정말 잘 먹었다. 시윤이에게 탕수육은 소울 푸드인가 보다.
비록 연휴의 마지막 날을 아픈 소윤이와 보내긴 했지만 덕분에 큰 체력 소모 없이 잘 쉬면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