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 이제 다 나았어여!

21.03.02(화)

by 어깨아빠

소윤이가 전화를 했다.


“아빠! 저 이제 다 나았어여”


첫 ‘아빠’가 이미 달랐다. 소윤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서 통화를 마쳤다. 조금 뒤에 아내에게 소윤이가 뭘 좀 먹었냐고 물어봤더니 바나나, 핫초코, 끓인 밥, 사과 주스를 먹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 먹던 녀석이 이것저것 먹었다는 건 회복이 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까랑까랑한 소윤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막 일어나서는 누가 봐도 아픈 사람처럼 축 처져서 기운이 없었다고 했다. 아마 어제부터 제대로 한 끼도 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씩 먹더니 기운을 차린 것 같다. 오늘 다들 입학한다고 난리던데, 우리 딸도 거기에 맞춰서 크려고 아팠나.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돼서, ‘뭐 하고 있냐’는 나의 질문에 아내는 오랜만에 ‘폭풍’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잠시 폭풍을 겪었다’고 했다. 들어 보니 엎친 데 덮치고 그 위에 또 엎고 또 덮친 격이었다.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가 살짝 잠이 들었는데 시윤이가 똥이 마렵다고 해서 급히 나왔는데 시윤이를 변기에 앉히려는데 변기에 앉기 전에 팬티에 읍읍. 시윤이는 똥을 참지 못했고 아내는 화를 참지 못했다. 아내는 상황을 수습하고 나서 사과했다고 했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꽤 늦은 시간에 시작이었다. 늦게 시작하는 만큼 저녁 먹고 애들 재울 준비를 하기에는 좀 여유로웠다. 시간의 여유는 마음의 여유와 비례할 때가 많고 마음의 여유는 당연히 너그러운 태도로 이어진다. 대신 아내와 나의 시간은 줄어든다. 모임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 길어져서 다 끝나고 나니 12시였다.


“여보. 12시네?”

“그러게”

“여보. 바로 잘 거야?”

“아니. 정리 좀 하고. 왜?”

“아, 그럼 나도 일기 좀 쓰게”


한 10분 지났나, 서윤이가 깨서 울었다.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나에게 물어봤다.


“여보. 더 쓰다 잘 거야?”

“아니. 자야겠다”


아내는 똥으로 촉발된 폭풍까지 겪은 하루였지만, 난 함께한 시간이 부족해 아쉬운 하루였다. 아내가 찍어 놓은 사진을 보는 것으로 그리움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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