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빵을 존중하는 아내의 자세

21.03.03(수)

by 어깨아빠

아내가, 낮에 스타필드에 갔다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코로나가 여전히 한창인데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괜찮을지 묻는 거였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아깝게 의사가 되지 못한 것도 아닌, 그저 일개 시민이지만 아내는 늘 나의 의견을 묻는다. 동의를 구하는 거다. 아내가 아무 이유 없이 가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 나름대로 충분한 고민을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웬만하면 아내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너무 꺼림직할 때만 안 가는 게 좋지 않겠냐 정도로 말하곤 한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나의 의견을 존중해서, 가지 않는다. 사소하지만 아내가 나를 존중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랄까.


아내는 옷을 좀 봐야 한다고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애들 옷 브랜드 매장이 스타필드에 있다. 퇴근해서 보니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옷이 각각 하나씩이었다. 곧 다가올 서윤이의 첫 생일에 입힐 새하얀 서윤이의 옷. 서윤이와 시밀러룩을 연출하기 위한 옷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역시 새하얀 소윤이의 원피스. 그리고 앞선 두 옷과 다르게 칙칙하기 이를 데 없는, 얼핏 보면 검은색이고 집중해서 보면 남색이 느껴지기도 하는, 누가 봐도 구색 맞추기용이 분명한 기본 중의 기본스러운 시윤이의 티셔츠. 옷을 보니 괜히 시윤이가 불쌍했다. 물론 시윤이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래서 더 불쌍했다.


오늘도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나의 목장 모임이었다. 애들 입장에서는 엄마는 해당되지 않으니 다행이요, 아내 입장에서는 ‘그림의 남편’이라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해 아쉬운 상황이었다. 나도 아내와 애들이 방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음이 영 불편하다. 지친 아내와 까불거리는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아예 안 보면 모를까.


아내는 목장 모임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방에서 나왔다. 느릿느릿 걸어서 와도 1초면 오는 거리를, 잔발을 총총거리고 촐싹대며 왔다. 뭐라고 얘기를 하면서 왔는데 잘 안 들렸다.


“뭐라고?”

“라본느 가려고 했는데. 라본느. 라본느”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익살을 떨며 얘기했다.


“몇 시까지 하는데?”

“아홉 시. 아홉 시”


그때 시간이 8시 50분쯤이었다. 아내는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가능하겠어?”

“뛰어야지”


아내는 뛰쳐나갔다. 빵에 진심인 아내가 귀여웠다. 8시 56분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도착했어. 피 맛 나기 직전”


우와, 정말 열심히 뛰었나 보다. 5분 만에 주파를 하다니. 한숨 돌리고 나니 밤공기가 좀 느껴졌는지, 기분이 좋다며 조금 걷다 들어오겠다고 했다. 과연 아내가 빵을 사는 데 실패했어도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왔을지 상상해 봤다. 아닐 거라고 본다.


아내는 승리자의 당당함과 함께 귀환했다. 아내가 무슨 빵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철저히 독자적으로 빵을 즐겼다(이렇게만 써 놓으면 아내가 너무 탐욕스러워 보이겠지? 아내는 마트에서 할인 판매하던 닭강정을, 나 먹으라고 사 왔다).


불쌍한 아내의 여유 시간은 고작해야 두 시간 남짓이었다. 서윤이는 요즘, 아주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11시 30분쯤 꼭 깬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내와는 그렇게 이별이었다. 서윤아, 오늘도 그렇고 요즘 아빠가 퇴근하면 너무 잘 웃어주고, 아빠랑 놀아줘서 고마워. 그래서 봐 주는 거야. 그래도 엄마는 좀 놔 줘라. 아빠도 엄마랑 좀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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