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7(주일)
서윤이는 어제 정말 정말 많이 깼다. 너무 울기도 했고 아내가 머리가 뜨끈한 것 같다고 하길래 자기 전에 열을 재 봤는데 서윤이도 미열이 있었다. 서윤이는 밤새 깨고 또 깼다. 시윤이는 완전히 정상 체온은 아니었지만 조금 떨어졌고, 보기에도 멀쩡했다. 서윤이는 시윤이와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열도 약간 나고. 열은 나는데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도 똑같았다. 근원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서윤이는 시윤이에게서 옮은 게 분명했다. 아내도 서윤이 보느라 잠을 하나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소윤이 미역국은 저녁에 끓여 주기로 했다. 소윤이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축제는 어제였지만, 진짜 생일은 오늘이었다. 감기의 파도가 소윤이를 빗겨 간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침을 먹이려고 했는데 시윤이가 못 먹겠다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지난번이랑 똑같았다. 정황도 비슷했다. 시윤이가 어제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저번처럼 급히 초콜렛 한 알을 먹였다. 자고 싶다고 하길래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재웠다.
집에 병의 기운이 가득한 것이, 영 개운치 않았다.
원래 오늘부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는데 시윤이와 서윤이가 아픈 바람에, 소윤이만 데리고 갔다 왔다.
“소윤아. 오늘도 아빠랑 데이트네?”
“그러게여?”
소윤이는 두 동생이 아픈 바람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어서, 생일 아침의 기분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소윤이랑 있는 동안 수시로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아빠. 왜 계속 말해여?”
“그냥. 계속 축하해 주고 싶어서”
예배드리고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 두 잔을 샀다. 쿠키도 하나 사서 소윤이에게 줬다. 차에 타고 움직일 때는 ‘음식물 섭취 금지’가 우리 집의 규칙이지만, 이런 날은 예외다. 소윤이는 어제처럼 내 옆에 앉았고 집으로 가는 동안 쿠키를 먹었다. 잘 먹다가 절반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쿠키가 든 봉지를 고이 접길래 물어봤다.
“소윤아. 뭐해?”
“아, 남은 건 시윤이랑 엄마 주려고여”
“아니야. 그거 소윤이 다 먹어도 돼”
“시윤이랑 엄마 주고 싶어여”
“그래? 그런데 진짜로 소윤이 다 먹어도 되는데? 그건 아빠가 소윤이 먹으라고 사 준 거니까 안 남겨줘도 돼. 그건 욕심부리는 거 아니야. 소윤이가 진짜 남겨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면 상관없는데, 욕심내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돼”
“진짜로 남겨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에여”
“그래? 그럼 소윤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소윤이는 10초 정도 있다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아, 딱 한 조각만 더 먹어야겠다”
안 먹고 싶어서 남겨주는 게 아니었다. 너무 맛있는 쿠키였지만 동생과 엄마가 생각이 난 거다. 기꺼이 남은 걸 포기했고. 소윤이만의 이런 결이 있다. 참 따뜻하고 기분 좋은. 작은 손으로 쿠키 봉지를 꼭 쥐고 앉은 소윤이를, 신호에 걸릴 때마다 흐뭇하게 쳐다봤다.
“아빠. 왜 그렇게 봐여?”
“그냥. 너무 예뻐서”
시윤이와 서윤이는 콧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것만 아니면, 평소랑 비슷해 보였다. 서윤이에게는 미세하게 예민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시윤이는 평소랑 거의 다르지 않게 잘 놀았다.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서윤이는 아직 정점 가까이 있는 듯했다. 둘 다 정점이 높지 않아 다행이었고.
시윤이는 어제에 이어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번 주부터 축구장 대관이 다시 재개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를 따라 축구장에 놀러 가는 걸 엄청 기대했다. 시윤이가 멀쩡해 보이긴 했어도 어쨌든 미열도 있고,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니니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어제랑 비슷한 상황이었다. 가고 싶어 하는 시윤이를 정성스럽게 설득했다. 시윤이도 어제처럼 잘 이해해 줬다. 사실 나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시윤이도 시윤이지만 아내가 걸렸다. 아픈 아이랑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면, 어느새 나도 환자가 되어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친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아픈 녀석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아내에게 너무 몹쓸 짓이었다.
“소윤아. 그냥 우리도 가지 말까? 다음 주부터 가는 건 어때?”
소윤이는 말없이 바로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넘어갔다.
“아니, 엄마가 너무 힘드시잖아. 혼자 시윤이랑 서윤이 보려면”
소윤이는 표정을 풀지 않고 더 일그러뜨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내가 끼어들었다.
“여보. 괜찮아. 난 괜찮아. 그냥 갔다 와. 그리고 오늘 소윤이 생일인데 소윤이가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그래, 깜빡 잊고 있었구나. 적어도 오늘만큼은 소윤이에게 양보를 구하면 안 되지. 시윤이는 자기는 멀쩡한데 못 가니까 더 아쉬웠나 보다.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누나와 아빠를 웃으며 보내주긴 했지만, 벌써부터 다음 주 이야기를 하며 아쉬운 티를 팍팍 냈다.
“소윤아. 또 데이트네?”
“아빠. 우리 데이트 진짜 많이 한다여”
아빠랑 데이트인 것치고는 소윤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긴 했다. 사람이 없어서 쉴 시간 없이 계속 뛰는 바람에 소윤이하고는 쉬는 시간에 잠깐씩 노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소윤아. 시윤이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여”
“소윤이는 그래도 아빠랑 나오는 게 좋아? 이렇게 혼자 기다려도?”
“네”
“왜?”
“집에 있는 것도 좋긴 하지만 아빠랑 밖에 나오는 것도 좋아여”
무슨 심정인지 대충은 이해가 됐다.
“소윤아. 우리 집에 갈 때 꽃 사 갈까?”
“오, 그러자여. 좋아여”
“꽃 왜 사는지 알아?”
“어, 저 생일이니까 엄마한테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 맞아. 소윤이 생일이지만 엄마한테 감사하는 의미로”
작년에도 그랬었다. 일종의 조기 교육이자 나는 실천하지 않으면서 내 자녀에게는 가르치는 언행불일치 교육이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동네 꽃집이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소윤이는 매우 아쉬워했다. 나도 아쉬운 마음에 여기저기 찾아보고 전화를 했지만,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소윤아. 그럼 꽃은 어쩔 수 없고 빵이라도 사 가자”
“그러자여”
꽃은 낭만이고, 빵은 포만이다.
소윤이랑 빵 가게에 들어가서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말하려고 하는데, 소윤이가 진열대를 여기저기 살폈다.
“소윤아. 왜? 엄마는 라즈베리 바게트 사 드리면 될 거 같은데?”
“아, 그게 아니라 시윤이도 뭐 하나 사 주고 싶어서여”
“아, 시윤이. 그래 그럼 시윤이도 하나 사 주자”
“뭘 좋아할까?”
“이거 어때? 초코 스콘?”
“좋아여”
소윤이가 일곱 살 정도 되니까, 이런 게 소윤이의 타고난 (후천적일지도 모르지만) 성품이라는 게 느껴진다. 엄마와 동생을 챙기는 그 마음이 참 귀하다. 희한한 게 아빠인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 소윤이가 생각하기에도 엄마와 동생은 더 ‘챙김’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나 보다. 빵을 고르고 있을 때 시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 오냐고, 어디쯤이냐고 계속 묻는 시윤이의 목소리는 조금도 우울하지 않았지만, 누나와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내는 열심히 소윤이의 생일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야.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이 하나도 안 괜찮아 보였다. 아내는 그냥 시간이 되어서 준비된 체력이 방전된 것뿐이라고 했다.
생일상이긴 했지만 뭐 거하게 차리고 그러지는 않았다. 미역국은 축구하러 가기 전에 내가 끓였고 동그랑땡, 닭가슴살 야채볶음은 아내가 만들었다. 장모님이 주신 잡채 덕분에 잔칫상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내 말마따나 보기에는 별로 차린 게 없는데 아내의 체력은 덕분에 더 빠르게 소진됐다. 참 허무하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 피곤해서 숟가락질이 영 부진했다. 소윤이는 자기 생일상을 위해 진력을 쏟은 엄마의 노고를 조금 아는 건지, 최대한 끝까지 먹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너무 피곤해서 역부족이었지만.
장모님이 사다 주신 마카롱으로 미니 케이크를 만들어서 또 한 번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소윤아. 이제 정말 생일이 끝이네”
정작 소윤이는 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은 생각뿐인데, 아내랑 내가 더 난리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소윤이의 생일이 정말 끝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의 눕자마자 잠들었다. 소윤이는 자다 말고 몇 번이나 짜증을 내며 잠꼬대를 했다. 어딘가 불편해서 낑낑대다 못해 짜증을 낸다고 해야 하나. 보통 이러고 난 다음에는 열이 났다.
“여보. 소윤이도 아플 거 같은데”
“왠지 그럴 거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코로나가 가져다준 몇 안 되는 이득이 감기로부터 멀어진 거였는데, 애들이 크려고 그러나 온 집안에 병세가 득실득실하다.
그나저나 소윤이한테 편지라도 한 장 쓰려고 했는데 못 썼다.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써 주는 소윤이의 마음에 보답하려고 했는데. 좀 미안하네. 생일 지나더라도 꼭 써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