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약처방, 바깥바람

21.03.08(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아침에 카톡을 보냈다.


“소윤이 37.4”

“헐. 여지없구만”


소윤이도 체온만 그렇지 나머지는 멀쩡하다고 했다. 시윤이는 거의 완전히 나은 듯했고, 서윤이도 나은 듯했지만 가끔씩 오락가락이라고 했다. 서윤이와 시윤이는 멀어지는 중이니 좀 안심했지만 소윤이는 갑자기 기운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사실 각오는 아내에게 진짜 필요했다.


“여보는 괜찮아?”

“나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음”


곧이어 아내의 다리를 붙잡고 서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는 서윤이 사진도 도착했다.


“토요일에 내가 나가서 점심을 먹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그때라도 나가지 않았으면 이렇게 버틸 정신력조차 없었을 거라는, 지금 매우 고되다는 의미였다. 오후에는 서윤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의 일부네”


아내의 표현이 정확했다. 이 정도면 타인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아내에게 안겨 손가락을 빠는 서윤이의 표정에서, ‘엄마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라는 의지가 보였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오후까지 미열이 있었다. 그야말로 미열이었고 다들 상태는 괜찮아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걱정이었다. 잔병이었지만 어쨌든 병치레는 병치레다. 애들이 병나는 게 동네 산불이라면 아내가 병나는 건 한라산 산불이다.


퇴근하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동태를 살폈다. 역시나 많이 지친 목소리였다. 저녁 준비를 한다고 하길래 오늘은 그냥 밖에서 사 먹자고 했다. 아내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아내는 아무 명분 없이 밖에서 사 먹는 걸 은근히 불편해한다. 물론 안 그럴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오늘도 고민해 본다고 하더니 결국 저녁을 차리고 있다고 했다.


퇴근하기 전에 통화할 때, 아내에게 오늘은 나가라고 했다. 그래 봐야 수유하는 엄마라 시간이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나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마음이 없어도 자꾸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일단 그렇게 운을 떼 놓고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더 떠밀었다.


“서윤이 깨면 어떻게 하려고?”

“뭘 어떻게 해. 자겠지”

“안아줘야 잘 텐데”

“안아주면 되지 뭐. 걱정하지 말고 나가라니까”

“계속 안아줘야 할지도 몰라. 안 잘지도 몰라”

“그럼 계속 안아주면 되지”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을까. 생각만 해도 고된 일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무척 피곤해 보였다. 다행히 아파서 힘들거나 기운이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냥 피곤하다고 했다. 저녁 먹는 것도 힘겨워 했다. 덕분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서윤이도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


거실로 나온 아내에게 얼른 나가라고 했다.


“어디 가지?”

“그냥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다 와”


아내는 일단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짐을 챙겨서 나갔다. 아내는 나갔고 이제 나의 시간이었다. 어느 정도 포기와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제발 안 깼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간의 경험상 깨면 아내가 오기 전까지 다시 눕히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고 재우는 건 가능해도 눕히는 순간 깼다. 그러니 아예 깨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불안함에 떨며 내 할 일을 했다. 아내는 너무 늦게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고 나갔는데 정말 일찍 들어왔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머물 곳도 없긴 하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서윤이는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심지어 서윤이는 아내와 내가 잘 시간이 되도록 깨지 않았다.


“여보. 얘 왜 안 깨?”

“그러게. 갑자기 왜 이러지?”


아내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불안에 떨었다. ‘불안 고문’이었다. 희망에 가득 차게 만들어 놓고 원하는 얻지 못하게 하는 게 희망 고문이라면, 불안에 떨게 만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게 불안 고문이다.


“여보. 불안 고문이 따로 없네”

“그러게”


서윤이는 요 며칠 다른 날에 비하면 꽤 늦은 시간에 처음으로 깼다. 결국 깬 서윤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니 오히려 불안함이 사라졌다. 어차피 맞을 매, 빨리 맞는 게 나은 심정과 비슷하달까.


서윤이에게 길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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