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9(화)
아내가 퇴근 직전에 카톡 하나를 보냈다.
“여보. 오늘 탕수육”
어제 밖에서 사 먹자고 했을 때 강력 추천했던 음식이 탕수육이었다. 오늘은 아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거다. 저녁 준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할 힘이 남지 않았던 건지, 소윤이와 시윤이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퇴근길에 탕수육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아내도 애들이랑 나왔다면서 자기가 찾아가겠다고 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나도 거기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식당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꼭 슬픈 일을 겪은 사람처럼 추욱 늘어진 채로.
“소윤아, 시윤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쟤네 좀 피곤한가 봐”
서윤이만 날 신나게 반겼다. 유모차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몸을 흔드는 건 물론이고 자기를 보라는 듯 고개를 쭈욱 빼는 동작도 많이 한다. 그렇게 안 해도 많이 보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밖에 나오니 졸음을 좀 떨쳐냈다.
집에 와서도 잘 먹었다. 시윤이는 오늘도 탕수육을 잘, 아니 정말 많이, 빠르게, 열심히, 누가 봐도 탕수육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큼 열정을 갖고 먹었다. 시윤이의 열정 앞에 절로 젓가락질이 경건해졌다. 아내가 탕수육과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는데, 약간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다. 가뜩이나 시윤이의 젓가락질이 그토록 활발하니. 자연스레 속도를 늦췄는데 아내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난 서윤이 옆에 앉아 서윤이 이유식을 먹이며 의도적으로 식사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여보. 더 먹어”
“나 다 먹었어. 배불러”
“에이, 더 먹으라니까”
“아니야. 진짜 배불러. 괜찮아”
아내는 정말 배가 부르다고 했고, 결국 자리를 바꿨다. 사실 나도 배가 어느 정도 차긴 했다. 짜장면 곱빼기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음식을 양보(?) 할 용의가 있으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아내가 몇 점 안 남은 탕수육을 내 그릇에 놔 줬다. 안 그러면 안 먹을 것 같다면서. 글로만 보면 내가 빼빼 마른 말라깽이인 줄 알겠네. 좀 안 먹을 필요가 다분한 몸뚱아리인데.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고 책을 읽어주는 동안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소파에 앉아서 쉬며 서윤이랑 놀기 딱 좋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잘 활용하면 ‘언젠가’ 해야 할 설거지를 ‘어느새’ 해 놓은 것으로, 신분 세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침 서윤이도 굳이 아내를 찾으며 울지 않고, 나랑 눈도 마주치며 잘 놀길래 더 부지런히 했다.
서윤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갈 즈음까지 깨지 않았다. 한두 번 속는 게 아니라 ‘이제 통잠인가’ 따위의 희망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저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사실 그것도 잘 안된다. 불안 고문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서 발표할 내용으로 아내에게 시연을 좀 하려는데 바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불문율이다.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럼 깬다. 그냥 가만히 가마니처럼 있어야 가마니의 자유라도 누릴 수 있다.
아, 딱딱한 바닥이라도 좋으니 마음 편히, 깨지 않아도 되는 잠을 자고 싶다.
(아내 앞에서 이런 말 하면 너무 가소롭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