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치열했던, 내가 모르는 아내의 하루

21.03.10(수)

by 어깨아빠

지난밤에 서윤이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쳤다. 뭐 비단 오늘만 그런 건 아니지만. 서윤이는 기본 1-2번은 꼭 깬다. 어제 서윤이가 깨서 울 때, 소윤이도 깼는데 소윤이는 아내에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서윤이가 너무 울어서 저도 깼거든여? 그런데 아빠도 깨셨나 봐여. 아빠가 계속 ‘하아 진짜’, ‘하아아아’ 이러면서 한숨 쉬고 짜증을 내더라여”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내도 나의 한숨 소리를 듣고 바로 수유를 했다고 했다. 잠결이니 내 의지가 완전히 반영된 것도 아니고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전혀 납득이 안 가는 행동도 아니다. 정말 듣기가 괴로울 때도 있고, ‘곧 알람이 울릴 것 같다’는 압박이 매우 심하다.


밤에 약속이 있어서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꼭 가야 하는 건 아니라서 ‘여보의 상태를 보고 결정할 테니 가능 여부를 말해달라’며 아내에게 공을 넘겼다. 아내는 당연히,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퇴근할 때까지 결론을 짓지 않고 열어뒀다.


“여보. 난 엄마 집에 왔어”


퇴근하기 전에 아내랑 통화를 했는데 아내는 처가에 갔다고 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은 마음에 부담이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 아내가 말을 이었다.


“이제 가려고”

“어? 진짜? 몇 시에 갔는데? 일찍 갔어?”

“아니 그렇게 일찍 오지는 않았어. 지금은 가기 전에 잠깐 카페에 왔다가 나는 서윤이 수유하러 차에 왔어. 오빠네도 잠깐 들렀네”

“카페에 왔다고?”

“어. 여보는 우리 신경 쓰지 말고 가”

“저녁 먹었어?”

“아니. 안 먹었지. 집에 가서 먹여야지”

“괜찮겠어?”

“어, 괜찮아”

“진짜? 난 안 가도 된다니까”

“괜찮아. 일단 지금은.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내의 말이 현답이었다. 지금은 괜찮아도 일분일초를 알 수 없는 게 육아인의 삶이다. 또 혼자 그 늦은 시간에 애 셋 챙겨서 밥도 먹이고 씻겨서 재우려면 괜찮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고. 말은 이렇게 해도, 난 아내의 든든한 후원에 힘입어 내 일정대로 움직였다.


밤늦게 집에서 만난 아내는, 다행히 다소 생기가 있었다. 물론 아내도 어느 정도 (안 괜찮지만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연기를 늘 하겠지만, 아무리 연기를 해도 감출 수 없는 날도 많다. 오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힘들었어도 연기로 감출 수 있을 정도였을 거라는 말이다.


오히려 낮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목장 모임을 하다가 시윤이가 뭔가 문제(?)를 일으켜서 (그게 무엇인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방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렇게 한 20-30분을 시윤이랑 보냈고, 그 사이 아내 목장의 다른 집사님들은 아내 없이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내가 돌아오고 여차저차 목장 모임은 끝이 났다. 잠시 후 리더 집사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아내가 시윤이랑 사라졌다가 나타난 그 모습이 엄청 힘들어 보였다고 하시면서 점심거리를 사다 주시겠다고 했다는 거다. 또 잠시 후 김밥과 떡볶이 같은 걸 잔뜩 사서 집에 갖다주셨고.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나눠 먹는다는 핑계로 충동적으로 장모님한테 간 거고.


난 맨날 보고 듣는 모습이고 일상이니까 잊고 지내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엄청 놀라워하거나 긍휼히 여긴다. 아내를. 그럴 때마다 새삼 아내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 어제였나, 아내가 애들 사진을 보여 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내가 여보한테 세세하게 다 말하지는 않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지”


라고 얘기했었다. 아이가 늘고, 날이 갈수록 아내랑 호흡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아무튼 아내는 오늘 저녁을 먹고 왔다고 했다. 나랑 통화를 끝내고 어쩌다 보니 저녁도 먹게 됐는데, 내 생각에는 차라리 그게 잘 된 일이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아내와 내가 눕기 전에는 깨지 않았다. 눕고 나면 또 나의 한숨을 유발하는 울음소리를 들려주겠지만, 아내 먼저 끌려 들어가지 않고 함께 자리에 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하루 애들을 못 봤더니, 엄청 보고 싶었다. 아내에게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역시나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난 언제쯤 그걸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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