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와 버렸다, 캐나다!

30살에 영화 학교 가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by 숭구리당당

'갑자기 유학?'

이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은 몇 달이었다.

지나가던 방송국 선배, 사촌동생을 막론하고 모두가 물었다.

그래서 수십 가지의 정답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어렸을 적 꿈이었어요(진짜임, 근데 남들한텐 어쩌라고임)

커리어가 답보 상태에 이른 것 같아요(이건 모두 다 느끼는 감정이라 설득력이 떨어짐)

커리어 전환을 해보고 싶었어요(미친(n) 긍정 시나리오일 때만 가능)

영어 공부하고 싶어요(영어 학원을 다녀)


그래서 선택한 답은 '온 우주가 저 보고 가라고 하는 것 같아요'였다.

의외로 이 답에 설득된 듯한 사람이 꽤 많았다.


'온 우주가 가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가야지'


실제로 이런 대화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사람들은 사실 생각보다 나한테 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positive). 인생은 진짜 멋대로 살아야 된다..


'온 우주'는 인생에 몇 번 쓸 수 없는 치트키이지만,

나는 이것을 이번에 쓰기로 했다.


사실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이유는 있었다.

30대가 넘으면 결혼할 남자가 있을 줄 알았고,

내가 무언가 해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에 가득할 줄 알았던 이상과는 달리

나의 현실은..


결혼할 뻔도 했지만, 결국 아~주 먼 남의 일이 되었고

게다가 무언가를 더 잘하고 싶은 열망에 아직은 휩싸여 있었다.

(이게 온 우주의 부름을 받은 이유인 것 같다ㅎ)


그래서인지 반복되는 회사 생활 속에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은 어딘가 맘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점점 멍청해지는 나 자신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특히나 회의에서 '좋아요'를 남발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내 것이라는 명확한 인식 속에서 '싫어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콘텐츠에는 정답이 없으나, 내 것이 너무 갖고 싶어졌다.


점점 안으로 파고드는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운동으로 미친 듯이 그 열망을 풀어보기도 했지만, 매일매일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말 안 되겠다, 생각하던 참에 우연히 캐나다의 영화 학교 홍보 영상을 보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님의 아들 봉효민 감독이 다녔다는

(ㅋㅋ홍보 영상에 가장 많이 언급된 포인트..)

Vancouver Film School은 어느 순간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다.


학교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실무 중심이라는 점, 학교를 다니면서도 내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휴직을 1년 이상 하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1년 코스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캐나다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안전한 나의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나를 어렵게 만들지 않으면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말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다음 날 홀린 듯이 지원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턱대고, 벼락 같이 난 유학원을 찾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듀오링고 시험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영화 시놉을 썼다.


그 이후에도

홀린 듯이 휴직원을 내고

미친 듯이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그러다가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비행기표를 사고

살던 집을 내놓고

짐을 보관 서비스에 잔뜩 맡긴 후에

가족, 친구들과 안녕 인사를 하더니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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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홀린 듯이 Bridgeton Season4를 보다 보니(옆자리 사람 절대 안 보이게 조심),

어느새 도착했다.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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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선택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동기들보다 1년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뒤처질 것이고, 무엇보다 돈이라는 기회비용은 무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지만 이 선택이 유효한 것은 내가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 순간들에

가만히 앉아서 나의 사랑스러운 구석들을 찾아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어쩔 땐 나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내 주변을 바꾸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여튼 이렇게 일 년 잘 살아봐야지, 잘 부탁해! 밴쿠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