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0일 밴쿠버-시애틀 여행 (3분의 3)
8th day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무사히 귀가, 학교 OT 전에 휴식
9th day
Orientation - Vancouver flyover
10th day
P의 귀국(엉엉.. 아직은 진짜 캐나다 고아니까..)
여행의 감상.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은 딱 한 명만 있으면 된다.
그게 한국이든, 밴쿠버든 똑같은 것 같다.
어떤 상황이든 딱 한 명이 있으면 용기가 샘솟고, 내 집 같은 기분이 든다.
(마지막 감상은 먼 길을 함께 와준 P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 날에는 다시 암트랙을 타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왔다.
왜인지 이번에는 기차가 딱 정시에 출발하는 똑부러짐을 보여줬는데,
P와 나는 이미 한 시간을 일찍 와 있었다.(^^)
그래도 기차에서의 낭만은 충실히 즐겼다. 마치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처럼.. 을 노렸으나 배고픈 한국인 2명은 기차의 식당칸에서 morning sandwich를 맛있게 먹었다.
돌아와서는 OT에 갈 준비를 했다. 마음의 준비, 생활의 준비..
그래서 가장 먼저 한인마트에 들렀다(ㅋㅋ). 밥을 먹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신조는 촬영 현장에서도, 해외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다운타운에 있는 한아름마트(과거 한남 마트..), 비싼 햇반 가격에 화들짝 놀라 무조건 밥을 해 먹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찾은 한국인들의 쌀맛과 비슷한 쌀..
사실 한국에서도 매번 밥을 해 먹자! 결심했지만 쿠팡 이츠와 배달의 민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는데, 여기선 물가가 워낙 비싸니 자연스럽게 요리를 해 먹게 된다. 한국에 돌아갈 때쯤엔 의외로 내 밥을 다 해 먹는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선 딱 20분, 20분만 일찍 일어나면 해 먹고 치우고 갈 수 있는데 항상 그 결심을 실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딱 30% 비싼 듯한 물가에 자연스레 눈을 뜨게 되었다. 정말 인간은 돈에 의해서 좌우되는 걸까(^^)
사실 밥을 해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어른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마저 오롯이 건강하게 책임질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느낌..? 실제로 여성의 수명이 남성에 비해서 긴 것 역시도 인간의 의무, 의식주 중 가장 번거롭고, 자주 해야 하는 '식'을 잘 해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환경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굳이 지난한 불평등 속에서 장점을 찾자면 말이다. (자기 밥은 자기가 알아서 해 먹는 세상이 점점 되어가는 것 같아서 기쁘다..)
실제로 엄마랑 이모랑 여행을 가면 경쟁을 하듯 밥을 서로 챙겨주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살림'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살려야만 한다, 우리 새끼들을. 하지만 이제까지 한국에서의 개인적인 삶을 보면 나는 전혀 나를 '살림'하지 못했다. 바쁜 일정에 치여서, '해 먹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싸'다는 핑계로 그랬으나,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들의 주체성을 반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이번엔 제대로 나를 '살림'할 수 있을까?
학교 생활이 2년어치를 1년으로 축약한 버전이라니, 또 불가능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건강해보고 싶다.
여하튼, 그렇게 생활의 준비를 하며 다운타운을 한참 걷다 숙소로 돌아왔다.
아홉 번째 날, 드디어 학교 OT 날이었다!
학교 OT를 또 오게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내가 벌인 일이었지만 여전히 어색했다.
우물쭈물하며 서로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는 학생들, 설레는 분위기.. 10년 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런 상황을 이미 여러 차례 겪어봤으니, 우왕좌왕하며 절절매진 않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닌가, 누군가와는 어울려야만 한다는 은근한 압박감에는 역시 시달렸다.
다행히 옆자리에 브라질에서 온 Animation을 전공할 친구와 말을 텄는데, 너무 다정하고 귀여운 친구처럼 보였다. 근처에서 나와 같은 Film Production을 전공할 친구와도 대화를 나눴는데, 37살의 인도 친구였다. 우리는 셋이 함께 인스타그램을 교환했다.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서 이 친구들과는 어떤 인연이 될까?
학교 OT는 에너지가 넘쳤다. 애니메이션 학과장(?) 님이 진행을 하셨는데,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올려주셨다. 젊은 에너지, 영화를 만들며 지지고 볶으면 느낄 수많은 감정들, 그분의 드라마틱한 설명에 따르면 그곳에 모인 모두는 '요동치는 1년'을 보낼 것만 같았다. 아, 애니메이션이랑 VFX 부는 빼고 말이다. '애니메이션, VFX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어차피 너네는 12시간 동안 앉아만 있을 거니까..'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첨언한 학과장님이었다.(ㅋㅋ)
하지만 나의 관심은 한 학생의 자기소개로 향했는데, 영화 학교답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 goes to Washington'이라고 했는데, 그때 깨달았다! 나는 영화들의 영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저 영화가 뭐지? 부랴부랴 검색을 했는데, 1939년 영화가 나왔다. <Mr.Smith goes to Washington>.
콘텐츠를 만들 때 어떤 레퍼런스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소통의 퀄리티가 달라진다는 생각은 항상 해왔다. 소리, 화면, 박자의 조합이 다 합쳐진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장황한 설명보단 레퍼런스 한 마디가 소통을 빠르게 해 주기 때문이다. 회의를 할 때도 '그 영화 있잖아' '그거 봤어?' '거기서 그 부분을 약간 따오고~' 같은 식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학교 생활의 첫 걸림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이 친구들과 나는 레퍼런스가 많이 다르겠구나.. 이 친구들에게 <세계의 주인>의 간결함을 설명하고, <버닝>의 복잡 미묘함을 설명하려면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새로운 재미로 즐겨야지,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까 친해진 인도 친구와 좀 더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왔냐는 질문을 하자 그녀는 '학교 다니는 게 난 좋아'라고 답하며 특히 '영화인들이 좋다'라고 했다. 콘텐츠에는 정답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가 굉장히 열려있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름 8년 동안 콘텐츠 업계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지점이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누리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회사 안에 '특이한 사람들' 역시 개인의 취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 같다. 감정적인 행동들도 제작자의 치기 혹은 열정으로 해석되기도 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커다란 둥지 같은 곳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금 내가 속한 업계가 좋아졌다. 아직은 그 업계에서 아무것도 크게 이뤄내진 못했지만, 11살 때부터 줄곧 선망해 왔던 이유가 그 때문일까 싶기도 했다. 유독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않고 '틀렸다'라고 단정 짓는 분위기를 숨 막혀했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 탓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결국은 사람을 이해할만한 구석은 요만큼씩은 발견할 수 있었다. 콘텐츠 업계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틀린 답이 없다는 점.
여하튼, 결국은 또 업계에서 좀 더 레벨업하기 위한 시간을 잘 보내야지, 결심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뜬금없이 스케이트를 타고, Vancouver Flyover를 탔다(Vancouver Flyover는 대만족).
그렇게 이곳에 적응하기 위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
다음날, P의 귀국 날이었다.
눈물이 났다(ㅋㅋ). 고마워서 운 것 같다. 여러 우연이 겹쳐서 P는 나의 적응을 완벽히 도와줬다.
첫 번째 우연은 P가 20살 때 밴쿠버 어학연수를 받았을 당시 P가 다녔던 학원이 지금은 내 학교, 그것도 Film Production 건물이라는 것, 두 번째 우연은 P가 살았던 홈스테이가 있던 동네가 바로 내가 살 기숙사가 있는 동네라는 것이었다.(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었다ㅋㅋ)
물론 그것이 아니었어도 같이 길을 찾고, 여행 다니며 밴쿠버에 한껏 익숙해졌었을 테지만, 익숙한 P의 공간이었던 덕분에 헤매지 않고 편안하게 이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곧 또 볼 테지만, 고마운 인연이 귀국하게 되니 괜스레 슬퍼졌다. 이제 정말 혼자 잘 살아야지, 걱정 안 끼치게 힘내서 살아야지!
이 결심을 실현해내기 위해서도 기숙사 돌아와서는 열심히 짐 정리를 하고 밥을 해 먹었다. 맛난 쌀밥! 이곳에 있을 365일 중에 벌써 하루가 지났다.
9박 10일의 여정은 잘 공부하기 위한 좋은 놂이었던 것 같다.
이젠 아무렇지 않게 Expo Line을 타고 원하는 카페에 갈 수 있고, 장을 봐야 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산책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 익숙한 P의 공간을 빌려, 웃고 떠드는 즐거움 속에 낯선 이곳에 무사히 착륙했다.
한국에선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 두었던 나를, 이곳에선 기필코 정성껏 '살림'해 보려 한다. 비싼 햇반 대신 갓 지은 쌀밥의 온기를 챙기고, 낯선 영화 제목들 사이에서 나만의 레퍼런스를 찾아내면서.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