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받는 블라인드 리더란
길을 걸을 때 리더보다 앞서서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에 있어서 리더 아래 있는 사람이 리더보다 먼저 앞서거나 행동하는 일은 없다. 일례로 예전에 당시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위원장보다 한걸음 가량 앞서 걷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황급해 뒤로 물러섰던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보다 먼저 걷는 사례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아마 이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리더나 대통령, 왕보다 먼저 걷는 사례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1인자가 아닌 이상 그보다 앞서 걷거나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 리더 입장에서 깜박 잊고 있었던 일이거나, 해야 할 일인데 미루고 있었던 일을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서 일을 처리해 줬다면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자주 일어난다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뭔가 찜찜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인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들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리더의 어떤 행동, 표시 하나로 자신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들켜 버린다면 과연 그 사람을 가까이 대할까 멀리할까?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리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블라인드 리더였던 양수이다.
조조에게 여러 블라인들 리더들이 있었지만 그중 양수는 조조의 마음을 읽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자.
조조가 정원을 만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윽고 그 정원이 완성되자 조조는 정원을 산책한 후 문에다 활(活)자를 쓰고 돌아갔다. 다른 대신들은 조조가 왜 활자를 쓰고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양수는 그 의미를 알고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에다 활자를 써 놓은 것은 곧, 넓을 활(闊 )자를 의미합니다. 곧 승상께서는 정원에 들어가는 문의 크기가 너무 넓다는 뜻임입니다."
이후 조조가 와서 이를 보고 만족하였다고 한다.
또한 조조는 누군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워 거짓말로 자신은 꿈속에서 사람을 잘 죽인다고 하며 함부로 자신이 잠들어 있을 때 곁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 난 후 자는 척하다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이걸 본 내관이 조조를 제자리에 눕히려 하자 조조가 칼을 빼서 그를 죽이고 다시 침대로 올라가 태연히 자는 척했다. 이후 조조가 깨어나서 자신이 내관을 죽인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정말로 조조가 그런 잠버릇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양수만이 조조의 마음을 알고 내관의 죽음을 가엾게 여겼다. 이를 전해 들은 조조는 양수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이처럼 양수는 조조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블라인드 리더였다. 하지만 마음만 읽었지 그 마음을 헤아리고 움직일 줄 아는 블라인드 리더는 아니었다. 너무 리더의 생각을 앞서가면 결국에는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조조가 한중을 얻기 위해 유비와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조조는 계속 유비에게 싸움에 지면서 이길 승산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닭 갈비탕을 먹고 있는데 장수 하우돈이 군막에 들어와 조조에게 오늘의 암호를 무엇으로 할지 물었다. 이에 조조는 "계륵, 계륵..."이라는 말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하우돈은 그게 암호로 알고 병사들에게 전파를 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서로들 수군대고 있었는데 이때 양수가 이렇게 말했다.
"닭의 갈비는 버리기는 아깝지만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한중을 얻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한중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리 정한 것입니다. 아마도 곧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퇴각할 준비를 하자 병사들도 따라서 퇴각할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이런 양수를 바라보는 조조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조조는 자신의 속마음이 계속 들춰지는 것이 불안하고 불쾌하여 군심을 흩트린 죄로 결국 양수를 죽였다.
양수는 남보다 생각이 빠르고 재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식도 풍부하고 언변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남보다 뛰어났던 것은 리더의 생각을 먼저 읽고 앞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지만 양수는 그런 리더의 마음을 이해하고 먼저 실행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만 믿고 행동하다가 결국 조조의 심기를 건드려서 죽었다. 양수가 자신의 그런 행동이 조조의 심기를 건드리고 그렇게 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까지 헤아렸더라면 양수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블라인드 리더가 리더의 마음을 먼저 읽고 헤아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냥 자신만 알고 넘어가는 선에서 리더의 일을 처리한다면 리더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리더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리더는 분명 자신의 생각이 들통난 것으로 생각하여 블라인드 리더를 멀리할 것이다.
또한 블라인드 리더는 리더보다 뛰어나야겠지만 그렇다고 리더에게 자신의 재능을 뽐내서도 안된다. 이런 행동에서도 리더보다 앞서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따라서 리더 앞에서는 알고도 모른척하고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옛말에 시집을 가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봉사 삼 년이란 말이 있었다. 고된 시집살이를 표현한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가서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곳 환경과 문화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그만큼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절대권력자라면 그 시간의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블라인드 리더는 절대로 리더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항상 리더보다 앞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리더보다는 반보 느린 생각과 행동을 해야 오래도록 리더와 함께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PS :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읽혔다면 어떨까? 그보다 앞서 한 발 먼저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 어떤 감정인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