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4

by 미운오리새끼 민

미라는 상우의 입안에 넣어 두었던 솜뭉치들을 하나 둘씩 빼냈다. 마취약이 담긴 주사바늘이 이곳저곳 잇몸 주위를 꾹꾹 눌러보더니 나갔다. 다시 여러 도구들이 상우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상우의 귀에 드릴이 움직이는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고요함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긴장감마저 깨지는 못했다.

입안이 꺼끌꺼끌 했다. 모래가루처럼 잘게 부서진 사랑니의 가루들이 입 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다. 앞에 눈이라도 달린 듯 쎡션은 그것들까지 찾아 깨끗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핸드피스의 움직임이 멈춰 서자 다음에는 스푼익스카베이터가 사랑니의 조각들을 긁어내고 있었다. 미라의 얼굴에는 다시 이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번엔 제발 …….’


상우는 눈을 감으며 사랑니가 빨리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미라는 사랑니를 잘게 조각냈다.힘을 가한다고 해서 사랑니가 빠지지 않을 거 같았다.

‘분명히 엑스레이 사진 상 보이지 않는쪽으로 사랑니가 휘어져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안 빠질 리가 없어. 게다가 이미 이 환자의 사랑니는 살 속을 파고들고 있었잖아.’

미라는 자신에게 계속 최면을 걸었다. 대체로 뿌리가 휘어져 있으면 이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미라는 가능한 밑동이 보일 때까지 사랑니를 부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이라서 쉽게 쪼개지지가 않았다. 핸드피스의 떨림이 점점 손에서 몸으로 전해졌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 이 남자, 사랑은 제대로 했을까?’

사랑니가 잘 나야지 사랑도 쉽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같이 느껴졌다.

문득 대학 때 치아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 해 주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니에는 그 사람의 사랑이 묻어 있어. 그래서 아픈 사랑을 한 사람일수록 사랑니의 고통은 더욱 더 크지. 가슴속에 절절이 묻어 있는 사랑이 사랑니에게로 옮겨가기 때문이야. 사랑니에게로 온 사랑은 조각조각 나뉘어져 그리움이 되고, 그것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 않으면 한이 되어 남아.’

미라는 가루가 되어가는 사랑니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처럼 이 남자의 사랑은 한이 된 그리움들이 뿌리까지 녹아내려 사랑의 그리움들을 움켜쥔 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가슴 속에 품고 아픔을 삭이고 있는 걸까? 누굴까 그 사람은 …….’

미라는 핸드피스를 움직이면서 천으로 가려진 상우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았다.미라는 남자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이 남자의 사랑니 속에는 어떤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일까?’



“나 아기 가졌어.”

“……!”

동하가 놀라면서 미라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동하가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빈말이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었다. 아니 다른 누구의 축복보다도 그의 말 한마디가 더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 축하 안 해줘?”

“얼마나 됐어?”

축하한다는 말은 없고 동하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렸다.

“6주 째야.”

“지워!”

그가 툭 던진 한마디에 미라는 너무나 놀랐다. 자신의 임신 사실을 말하면 동하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의 말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오빠 의사 맞아? 그게 지금 의사로서 할 얘기야?”

“난 이제 의사가 아니야. 그리고 누구하고도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아빠가 된다고? 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말도 안 돼는 소리 집어치워!”

동하의 말은 얼음같이 차가웠다.살을 에듯이 미라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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