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는 상우에게 사랑니를 보여 주었다. 위는 평평하면서 둥그스름한 네모 각에 뿌리로 갈수록 좁아져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평범한 치아의 모습이었다. 삐뚤어지지도 않았고, 처음 것처럼 뿌리가 넓게 펴져 있지도 않았었다. 그 생김생김이 너무나도 이전 거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피가 당분간 나올 거니까 입을 꼭 다물고 계셔요. 그리고 집에 가서 얼음찜질을 해 주시고, 음식은 부드러운 것을 드세요. 오른쪽 사랑니는 일주일 후에 실밥 빼내면서 뽑을 겁니다.”
미라는 두터운 솜을 윗니 주변에 꼬깃꼬깃 넣으며 주의해야 될 점들을 천천히 상우에게 설명해 주었다.
상우는 병원을 나왔다. 커다란 눈깔사탕을 물고 있는 듯 왼쪽 입안이 불룩해져 있었다. 서서히 마취가 사라지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온 몸이 저리고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데 너무나 많은 힘이 들었다.
미라는 원장실로 들어가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미라는 인터폰으로 한 간호사를 불렀다.
“예약 환자 또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원장님 좀 쉬세요. 힘들었을 텐데.”
한 간호사도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미라는 고개를 의자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노크 소리가 나며 한 간호사가 들어와 차를 책상에 두고 나갔다.
미라는 한동안 모과 향이 나는 차의 향기를 맡았다. 한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솜이불 같은 햇살이 부드럽게 미라를 감싸주었다. 꽃샘추위로 사람들의 몸은 움츠려 있었지만 햇살은 완연한 봄이었다.
병원을 나선 상우가 건널목을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총총 걷는 모습과는 달리 그는 땅이라도 꺼질까봐 매우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힘없는 상우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미라는 턱을 어루만졌다.
병실엔 그녀 혼자만 있었다. 미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동하는 서울을 떠나고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가볼 만한 곳은 가보기도 하고 수소문을 했지만, 이미 사라지기로 마음먹고 떠난 사람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
미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생명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이 살아 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는 미라에게 신호를 보냈었다. 그것을 알면서 아기를 지울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하가 떠나간 고통보다는 아기에 대한 갈등이 미라를 더 힘들게 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흘러갔고 아이는 예정일을 조금 넘어서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
그래도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면 동하고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보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는 커가면서 동하를 더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나지금도 그 사람에 대해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니를 뺀 것이 그쯤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질간질하던 사랑니가 아기를 낳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아파 오기 시작했다. 몸도 많이 피로했었고,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니란 이름 때문인지 사랑니가 아파 오면 동하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다 지난 일인데 …….’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낯선 사람의 사랑니를 통해 자신의 오래 전 일들이 영화필름 돌아가듯 머릿속에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