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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및 정보 수집과 분석, 정리 능력의 블라인드 리더

by 미운오리새끼 민

참모에게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정보 취득 능력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적도 동지도 없는 무한 경쟁의 시대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만큼 정보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말이다. 즉, 이합집산(離合集散)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조직에 맞는 정보를 취득하여 그에 따라 조직의 이해관계를 살펴가며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에 필요한 정보 습득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에 꼭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여 이를 분석하고 검증하여 정확한 사실로 인정된 정보만을 리더에게 전달하는 것은 참모로써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이런 일을 수행하는 일만큼 참모에게 중요한 일은 없다.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참모가 바로 로잔 배더우스키이다. 한 예로 로잔 배더우스키는 잭 웰치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을 취합하여 전달하기 위해 때로는 그의 휴지통까지 뒤져가며 그가 버린 메모장, 관심 있게 읽었던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 주요 인물 명단 등을 통해 최근 잭 웰치가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를 분석했다고 한다.


‘휴지통까지 뒤져 가며 젝 웰치를 보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로잔 배더우스키의 이런 행동은 회사의 경영 상태, 잭 웰치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등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그에 맞는 적절한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 분석한 후에 젝 웰치에게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행동은 젝 웰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던 로잔 베더우스키만의 노력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젝 웰치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CEO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보력은 참모로서의 단순한 능력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많이 가진 참모일수록 리더는 그 참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리더의 핵심 참모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정보 취득을 위해 참모는 부지런해야 하며,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자신만의 취재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초기 정보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일명 지라시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정보가 다 진실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정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검증 과정을 거쳐 사실로 드러나는 것과 현재 조직과 리더에게 중요할 만한 정보가 무엇인지만 취사선택해야 한다. 즉, 선택과 집중의 정보 선택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정보력에 따라 명운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정보력에서도 지피지기가 통한다. 우리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는 무엇인지, 리더와 조직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위기 상황에서도 대처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 예로 사마의가 제갈량과 오장원에서 결전을 벌일 때였다. 그전까지 제갈량은 유선에게 수차례 출사표를 써가며 중원을 공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장원에서 위나라와의 전쟁은 그의 마지막이 될 수 있었던 일전 일대의 전투였다.


그러나 사마의는 지구전만 펼치면서 싸움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제갈량은 사마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요량으로 여인네들의 옷과 장신구를 보내 사마의를 조롱했지만, 사마의는 오히려 촉나라의 사신을 불러 지극 정성껏 위로하며 제갈량의 하루 일과에 대해 정중히 물었다.

“승상께서는 하루 일과가 어떠하신가?”

그러자 사신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 승상께서는 일찍 일어나시고 늦게 주무십니다.”

“그렇다면 업무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

“벌 이십 이상의 모든 사건은 친히 처리하십니다.”

“참으로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

“먹는 것은 하루에 서너 되가 되지 않습니다.”

사신은 또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이 대답까지 듣고 난 사마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사신을 정중히 돌려보냈다. 사신이 떠나고 나자 장수들은 이런 모욕감을 당하고 있을 수 없다며 공격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사마의는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공명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들은 장수들이 모두 의아해하자 사마의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하루에 적게 먹고 사사로운 일까지 많이 챙기면서 일을 하고, 또한 잠도 적게 자는데 어찌 몸이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사마의는 사신과의 대화에서 제갈량이 얼마나 많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보안 사항이다. 이런 보안 사항을 사신이 죄다 말해버렸으니 사마의는 가만히 앉아서 고급 정보를 얻은 것이다. 사신이 돌아가서 제갈량에게 사마의와 나눈 대화를 모두 얘기하자 제갈량은 탄식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사마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없구나! 그는 이미 내 수명까지도 헤아리고 있구나.”

결국 제갈량은 병을 앓게 되고 철군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으로서는 처음에 심리전술로 사마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싸움을 유도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마의의 정보전에 밀려 퇴각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새로운 정보의 취득과 이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가공하느냐 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리더에게 그리고 참모 자신에게 맞는 맞춤 정보 가공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정보에 있어서 가공이란, ‘진실’이라는 정보에 리더나 참모의 심리적 상황을 고려한 ‘해석’을 곁들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게 지나치면 과장되거나 허구가 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완전한 ‘팩트(fact)’를 전달하는 것은 리더나 참모 모두에게 때로는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은 리더만은 위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난세, 즉 위기 상황에서는 참모 자신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누구나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없다.’

어차피 리더가 될 수 없다면 리더를 잘 보좌하는 훌륭한 참모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조직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해성같이 등장하여 조직을 위기에서 구하는 리더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한 명만 될 수 있다. 나머지는 그 사람을 위한 조연인 것이다. 내가 주연이 되느냐 조연이 되느냐는 자신을 먼저 정확히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무모하게 자신이 주연이 되고자 했다가 그냥 사라져 간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연이지만 주연처럼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아마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 아닌가 싶다. 정도전은 고려 말엽 무능하고 부패한 고려 권력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이다. 당시로만 생각하면 역모를 꾸민 것이다. 그전에도 역모를 꿈꾼 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왕은 유지한 체 권력만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무신의 난 때 권력을 잡은 정중부, 이의방, 최충헌 등이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왕을 교체하는 혁명을 꿈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왕이 되는 혁명을 꿈꾸지는 않았다. 정도전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울 인물을 찾았다. 그런데 정도전은 왜 자신이 직접 왕이 되려 하지 않고 왕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아 나선 걸까?

그 이유로 첫째, 자신과 뜻을 함께할 역성혁명 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권력에 많이 포진하고 있어야 했는데, 당시 신진세력의 힘은 미미했으며, 본인도 야인이었을 뿐만 안라 자신의 제자들 또한 아직 관료로 진출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현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단 직원인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열정을 갖고 일을 추진하려고 해도 기존 기득권 세력의 장벽에 막히거나 조직에 변화를 주려고 제안을 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듯이 정도전의 상황도 기존 세력에 혼자의 힘으로 상대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둘째, 대중적 인지도도 부족했다. 당시 정도전은 고려 민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존경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지방 관료나 사람들의 핍박을 받고 있었다. 다시 말해 누가 알아주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셋째,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필수인데 정도전에게는 그게 없었다. 물론 한나라의 왕망처럼 군사력 없이도 왕을 폐위하고 권력을 잡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오로지 혼자였다. 민군을 조직할 수도 있었지만, 무신정권 하에서 자신과 같은 문인 출신이 무신 세력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장량이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다 유방의 참모가 되었던 것도 유방이 갖고 있는 세력을 발판으로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정도전도 자신이 참모가 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판단했을 것이며, 이때부터 자신을 조선의 장량(長良)이라 자처하며, 왕보다는 한고조를 도와 나라를 세운 장량처럼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듯 정보의 수집과 분석은 조직과 러더를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모 자신을 위해서도 정보 수집과 분석은 매우 필수적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말로는 장량처럼 아름답지 못했으니 조선 건국 후의 정세에 대한 정보 수집과 판단 능력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정도전과 비슷한 사례가 삼고초려로 유명한 제갈량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자신의 군사로 받아들이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일화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제갈량이 유비의 참모가 된 것은 유비가 삼고초려까지 하며 제갈량을 자신의 참모로 등용하고자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은 제갈량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인물로 유비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제갈량이 판단한 당시 후한 말엽의 상황은 이미 위나라와 오나라에 수많은 인재들이 즐비했기에 자신의 능력을 믿고 절대적으로 재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리더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유비였는데 유비는 세력도 없고 근거지도 없었지만, 황손의 후예여서 한왕조 재건이라는 명분도 있을뿐더러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리더였던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조건이 맞물렸기 때문에 제갈량은 유비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근거지도 없고 세력도 없는 유비를 먼저 찾아간다는 것은 제갈량으로서는 선뜻 내키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가 찾아오게 만들었으며, 단번에 유비의 청을 수락한 게 아니라 유비가 자신을 절실하게 필요하게끔 느낄 수 있도록 세 번씩 찾아오게 만든 것이다. 즉, 유비에 의해서 선택된 것보다는 제갈량이 유비가 자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참모는 자신을 귀하게 인정받게 리더에게 보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잘 활용한 사람 중 소하 또한 충실히 수행하였다. 소하는 전쟁의 와중에서 한나라가 나라의 기틀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유방이 진나라의 인수를 받고 함양에 들어가 진나라의 황궁과 시녀들에게 매료되어 향락적인 일상을 보낼 때 소하는 제일 먼저 진나라 황궁의 서적과 법령, 문서 등 각종 자료들을 챙겼다.


소하는 근거지도 없고, 유방이 자신의 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나라 황궁의 문서들을 챙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먼 미래를 내다본 전략이었다. 언젠가는 유방도 자신의 근거지를 마련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국가 기틀을 마련하는 게 중요했다.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령과 제도 등이 체계화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국가를 운영할 수 없기에 소하는 이 부분에서 미리미리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런 소하의 노력 덕분에 그가 갖고 나온 진나라의 자료들은 항우에 의해 아방궁이 탈 때에도 안전하게 보전될 수 있었으며, 훗날 한(漢) 나라의 제도와 문물, 양식, 예법 등의 기초가 되었다. 소하는 행정가로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완벽하게 처리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정보의 수집만큼 이를 분석하고 정리하며,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장량은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 가공하여 조직에 맞게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유방이 진나라의 인수를 받고 진나라 황궁에 머물 때 장량은 유방에게 천하를 얻으려면 황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과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내세워 민심을 다독여야 한다고 했다.


당시 장량에게는 함양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조만간 항우가 함양에 들어올 것이며, 결국 중국 통일은 항우와 유방의 싸움인데 지금 항우를 군사적으로 이기기는 힘들다는 판단하에 민심을 얻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런 바탕에는 항우와 유방의 처한 상황이나 두 사람의 성품을 잘 분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는 힘이 아니라 민심이 우선이라는 장량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장량은 시종일관 시대 저류에 흐르고 있는 민심을 얻기 위한 정치에 노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전투의 패배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았고, 전쟁 전체 판도의 흐름을 파악하며, 대세를 장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가였다. 민심을 얻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것을 장량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이다.


PS : 정보의 바닷속에 살고 있는 지금 여러분은 정보 취득과 분류 정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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