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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후 토사구팽 당한 문종

불운한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월나라의 범려와 문종은 구천이 와신상담을 통해 오나라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게 한 참모였지만, 범려는 구천의 성품을 알고 스스로 물러났고 문종은 구천의 곁에 남아 있다가 결국 구천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 문종은 월나라에서 치욕의 3년을 보내고 나서 오나라로 돌아왔을 때, 월왕 구천에게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7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후에 문종의 발목을 잡는 독이 되었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구천은 이미 과거 지혜롭고 야망이 강한 구천이 아니었다. 그는 검소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잘 따르던

이전과 다르게 방탕하고 탐욕스러운 생활을 했다.


자연스레 그 주변에는 간신의 무리들이 들끓기 시작했고 문종이 아무리 바른말을 해도 이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종에 대한 간언을 일삼는 신하들이 항상 있었다. 과거 구천이 문종과 범려의 말을 따르고, 백성들과 함께 하며, 검소하게 생활했던 이유는 오로지 오나라의 오자서에게 받은 굴욕을 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문종의 충언을 구천도 듣는 척하였지만, 그 강도가 심해지고 문종이 자신에게 사사건건 귀에 거슬리는 말만 하자 구천의 심기는 날로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문종도 구천이 자신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거기서 멈추고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 아니면 좀 다른 방법으로 구천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구천과 가까운 신하나 또는 시종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직언을 하기보다는 우회적인 표현 등을 통해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종의 주변에는 그를 도와줄만한 참모나 신하가 없었던 거 같다. 아마도 구천의 행동을 봤을 때 문종을 지지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본다면 문종은 자신의 참모나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참모가 사조직을 만드는 것은 금물이지만 적당한 세력은 자신의 안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종의 지속적인 충언에 참다못한 구천은 결국 문종을 불러 꾸짖었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에게 7가지 계책을 말했지만 그중 3가지만 사용하고 나머지 4가지 계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따져 묻는다. 문종은 그제야 자신이 더 이상 살아 있을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지난날 범려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자결했다.


죽기 전 문종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범려와 함께 춘추시대 패업을 이루기 위해 초나라에서 월나라로 들어와 오나라에 의해 멸망까지 갈 뻔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춘추 5패의 한나라로 만들기까지 수십 년을 함께 고생하며 동고동락했던 범려와 구천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범려가 토사구팽의 말로 문종을 설득하였을 때 문종 또한 많은 고민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려와 문종 모두 월나라를 떠나고 나면 과거 오자서가 죽음으로써 오나라가 멸망의 길을 걸었듯이 월나라도 그런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을 문종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문종은 자신이 20년 넘게 공들여 세운 나라가 허망하게 망하는 꼴은 보기 싫었을 것이다. 물론 구천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지만 한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자, 신하로서 왕을 등지고 자신만 살겠다고 떠나는 것은 충신으로써 올바른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런 문종의 관점에서 보자면 참모로서 무엇이 우선인지 정말 고민스러울 수 있을 거 같다. 자신의 목숨이냐,

나라의 안위냐는 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신하로서 선택 불가적인 일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본인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문제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범려와 함께 떠났거나 죽거나 문종이 없는 상황은 발생하는 것이고 자신이 없더라도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면 문종의 최후는 범려처럼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정도전이 죽었지만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조선의 국가 시스템이 500년을 이어왔듯이 문종에게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PS : 조직이나 모임에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나요? 그럴 때가 언제일까요? 또는 '나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일을 할 거야' 하는 생각을 가질 때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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