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
리더에게 나쁜 참모
중국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여황제가 바로 측천무후이다. 황후로써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한 인물은 여럿 있었지만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여 나라를 세운 사람은 측천무후가 유일하다. 무후는 권력과 사랑에 빠진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어느 누구보다 권력욕이 강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한 행동들은 사람으로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측천무후는 빈한한 가문 출신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부터 아름답고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14살에 황궁 재인(才人)의 지위로 들어가 12년간 황제 이세민의 시중을 들었다. 이후 태종 이세민 죽고 나자 당시 예법에 따라 비구니가 되어 감업사라는 절에 출가를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후의 삶은 빛을 못 보고 그럭저럭 비구니로 끝을 맺는 듯했다.
하지만 이세민이 죽고 1년 후 황제가 된 이치가 예불을 올리기 위해 감업사를 찾으면서 무후에게 인생 전환의 기회가 찾아왔다. 무후는 직감적으로 황제 이치를 지금 사로잡지 않으면 자신은 영영 감업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어쩌면 권력에 대한 본능적 감각일 수도 있다. 무후의 입장에서 황제 이치의 방문은 하늘이 자기에게 준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고, 그것을 직감적으로 받아 채 자기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결국 무후의 적극적인 유혹에 황제 이치가 넘어갔다. 하지만 황제와 정분을 통하긴 하였으나, 당시 예법에 막혀 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무후에게 기회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왕이 될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인지 엉뚱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황후 왕씨가 무후의 환궁을 지원했던 것이다. 당시 황제 이치가 소숙비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 황후 왕씨는 무후를 통해 황제 이치와 소숙비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던 것이다. 무후의 입장에서는 두 번째 맞는 기회였다. 그러고 보면 무후가 황제가 되었을 때 반란이 몇 번 있었지만 쉽게 진압되는 것을 보면 무후는 정말 황제가 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황후 왕씨의 이런 계책은 결과적으로 황후에게는 패착의 요인이 되었고, 무후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무후는 총명하기만 했던 그 옛날 소녀가 아니라 노련함과 잔인함까지 겸비한 완숙한 여인이었다. 그것도 권력욕이 강한 집념의 여인으로 변신한 후였다.
무후는 황궁으로 다시 입궁하게 해 준 황후를 도와 소숙비를 모함에 빠뜨려 제거하였다. 무후는 황후 왕씨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항상 겸손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본심을 감췄다. 그리고 주변의 환관과 궁녀들에게 환심을 사서 자신을 호의적으로 대하게 하였다. 무후의 이런 본심도 모르고 황후 왕씨는 무후를 아꼈다.
그 후 무후는 황후가 자신의 아기를 죽였다는 누명을 씌워 황후마저 제거하고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황후가 된 후 무후는 권력에 대한 욕심을 본격적으로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황제 이치는 허울뿐인 황제이지 실권은 무후가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무후는 제일 먼저 자신의 황후 등극에 반대했던 세력들을 제거하였으며, 뒤를 이어 태자를 폐하고 자신의 큰아들을 태자로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지할 세력으로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인 북문 학사를 세워 자신의 지지기반을 유지하는데 활용하였다. 실제 이 북문 학사 출신들은 무후의 정권 유지에 뒷받침을 하였으며, 무후가 황제로 등극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무후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아들을 두 명이나 죽였는데, 권력을 위해서라면 모정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황제 이치가 죽고 셋째 아들 이현이 황제가 되었지만, 자신의 장인을 재상으로 삼으려고 한 게 문제가 되어서 불과 두 달도 안돼서 쫓겨나고 막내인 이단이 황제가 되었다. 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자는 그 어느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점차 조정은 무씨 일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뜻있는 관료들을 중심으로 무후를 축출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기세는 불과 40여 일을 가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승상 배염 등 그나마 조정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관료들마저 사라지고 자신의 조카인 무승사를 재상으로 앉히는 등 무씨 위주로 관료들을 채워나갔다.
결국 황제 이치가 죽고 나서 6년 만에 전 세계를 통틀어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자신의 아들에게서 어머니가 나라를 물려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였다. 이는 단순히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받치는 형태였기에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이었으며, 무후의 권력 의지가 단순히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창업이라는 형태의 제국을 꿈꾸었기에 그의 권력의지가 대단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 이름도 당(唐)에서 주(周)로 바꿨던 것이다.
무후는 주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시작했다. 그 대상은 역시 당나라의 황족 출신들이었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으니 이전 나라의 황족들의 뿌리를 뽑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이들을 남겨둘 경우 반란의 씨앗이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 남은 두 아들을 살려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었다. 무후의 이런 행동은 천년만년 자신의 제국을 이어가고자 한 바람의 표현이었는데 결국 죽기 전에 그 뜻의 허망함을 깨달았으니 권력의 무상함과 권력의 유한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보는 거 같다.
무후는 황족들을 제거하기 위해 포상을 통한 밀고 제도를 활용하였고, 밀고를 당한 사람은 그것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혹독한 고문을 통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무후가 집권하던 시기 공포정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인재 수혈과 인재 등용 방식의 개선을 통해 지배계층의 관료에게만 국한되었던 벼슬길이 개인의 능력 중심으로 변화되면서 가난한 집안의 자재들도 관료사회에 편입될 수 있었다.
무후는 마지막에 권력을 셋째 아들 이현에게 물려주고 다시 모든 것을 되돌려 놓았다. 죽기 전에 권력의 덧없음을 깨달은 것인지 자신의 묘비에 아무것도 세기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여인이 그것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의 지휘에 오른 경우는 측천무후가 유일할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단순히 권력욕이 강해서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유방도 자신의 제국을 만들 때 수많은 인재들의 도움을 받아서 건설할 수 있었다. 물론 무후도 자신의 지지세력인 북문 학사와 무씨 출신들의 지원을 받아서 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지만 지원세력의 힘 자체가 다르다.
처음에는 황후 왕씨의 참모로서 그리고 황제 이치의 참모로서 그리고 두 아들의 참모로써 무후는 활약했지만 본인에게는 참모의 기질보다는 리더의 기질이 더욱 강했던 거 같다. 리더가 되기 위해 권력을 빼앗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정적들을 살해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무후는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일까?
PS : 참모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리더가 왜 되고 싶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