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미덕인 시대가 있었는데,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모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참모인데, 참모는 절대 자신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참모는 항상 리더보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자만심에 빠져서 자신만이 최고이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각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또한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신이 소하를 만나지 못하고 유방에게 천거되지 않았다면 한신은 그저 그런 인물로 사라졌을 것이다. 소하가 능력을 알아보고 유방에게 예로써 그를 대우했기에 한신이란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소하가 유방을 위한 사람이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참모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항상 보완해야 하고,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아닌 우리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야구의 경우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으며, 축구에서 골키퍼가 골을 아무리 잘 막아도 우리 팀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참모는 리더보다 더 큰 신망을 얻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의 존경과 신망을 얻어야 할 사람은 리더이지 참모가 아니다. 성과에 따른 결과가 리더보다 참모의 역할이 커서 주변에서 좋은 호응을 얻게 될 경우 리더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경우 리더는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둘 중 하나다. 리더에 의해서 죽임 또는 쫓겨나거나 아니면 리더를 밀어내고 자신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둘 다 결과는 좋지 않았기에 능력 있는 참모는 항상 자신의 행동과 몸가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양수는 조조의 참모였다. 조조에게 여러 참모들이 있었지만, 그중 양수는 조조의 마음을 읽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어느 날 조조가 정원을 만들라고 하였다. 이윽고 그 정원이 완성되자 조조는 정원을 산책 한 후 문에다 활(活)자를 쓰고 돌아갔다. 다른 대신들은 조조가 왜 활(活)자를 쓰고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양수는 그 의미를 알고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에다 활자를 써 놓은 것은 곧, 넓을 활(闊 )자를 의미합니다. 곧 승상께서는 정원의 크기가 너무 넓다는 뜻이니 이는 곳 정원의 크기를 줄이라는 뜻이지요."
이처럼 양수는 조조의 마음을 헤아리고 움직일 줄 아는 참모였다.
하지만 너무 리더의 생각을 앞서가면 결국에는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조조가 한중을 얻기 위해 유비와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조조는 계속 유비에게 싸움에 지면서 이길 승산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닭 갈비탕을 먹고 있는데 장수 하우돈이 군막에 들어와 조조에게 오늘의 암호를 무엇으로 할지를 물었다. 이에 조조는 "계륵, 계륵..."이라는 말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하우돈은 그게 암호로 알고 병사들에게 전파를 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서로들 수군대고 있었는데 이때 양수가 그것을 풀이해 줬다.
"닭의 갈비는 버리기는 아깝지만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한중을 얻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한중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리 정한 것입니다. 아마도 곧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하고 퇴각할 준비를 하자 병사들도 퇴각할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이런 양수를 바라보는 조조의 마음은 편치 않았던 거 같다. 조조는 자신의 속마음이 계속 들춰지는 것이 불안하고 불쾌하여 군심을 흩트린 죄로 결국 양수를 죽였다. 양수는 생각이 빠르고 재능이 뛰어났지만 자신의 재능만 믿고 행동하다가 결국 조조의 심기를 건드려서 죽었던 것이다. 참모는 리더보다 뛰어나야겠지만 그렇다고 리더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장량은 항상 스스로 자신을 낮추었으며,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낮추며 살았다. 장량의 장점은 절제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으며, 불편함 마음이 있을 때에도 이를 표현하지 않고 견뎌내는 평정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나라 초기 각종 반란과 모반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한신이나 영포, 번쾌처럼 토사구팽 당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다른 공신들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할 때 장량은 조용히 물러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권력은 절대 누구와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장량은 잘 알고 있었다.
명나라의 주원장은 확실히 이를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참모들을 무참히 죽인 대표적인 사람이다. 한 번에 2만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 적도 있다고 하니 조금만 자신의 눈에 권력을 찬탈할 기미가 보이면 공신이건 친족이건 가리지 않고, 갖가지 죄목을 씌워서 죽여 버린 것이다. 그에게 있어 권력을 나눠 갖는다는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원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그의 아들 주표마저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주원장은 자신의 이런 행동을 가시 돋친 지팡이를 갖고 설명하였다. 태자 주표를 데리고 교외로 나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길가에 버려진 가시 돋친 나무를 가리키며 태자에게 말했다.
"저 나뭇가지를 주워 오너라."
태자가 그 나무를 주우려고 하니 가시가 많아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주원장이 옆에 있는 신하에게 가시를 모두 제거하라고 했다. 태자는 가시가 모두 제거가 된 나무를 갖고 주원장에게 갔다. 주원장은 태자에게 말했다.
"가시가 돋친 상태에서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을 수 있더냐?"
"아닙니다."
"가시가 있는 상태에서는 손으로 잡기 힘들지만 이를 걷어내고 나면 그것은 지팡이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가시는 너를 위협하는 신하들인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너에게 해(害)가 될 수 있는 신하들을 제거함으로써 후에 너를 찌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네가 후에 신하들을 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즉, 리더는 지팡이이고 가시는 참모를 지칭하는 것이다. 참모들이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리더를 위협하게 되면 가시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야만 지팡이를 손으로 잡고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시 돋친 참모는 리더에게는 항상 제거의 대상이란 걸 명심하고 겸손, 또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겸손의 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참모에게는 지나치지 않다. 상앙은 이런 겸손의 미덕을 잃었기에 그 마지막은 불운했던 것이다. 상앙은 진효공의 지지만 믿고 귀족과 대신들 간에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관철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이런 상앙의 자만심은 귀족들의 반발을 샀으며, 진효공 입장에서도 자신의 사후에는 제거 대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즉 상앙은 가시 돋친 지팡이었던 것이다. 태자가 왕이 되었을 때 상앙의 존재는 벅찬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칫 왕위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효공의 사후에 그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참모였던 것이다.
참모는 자신의 지위와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리더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살펴야 하며, 자신의 공이 아무리 빼어나다 할지라도 리더에게 도전하거나 그의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리더는 언제든 참모를 내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참모로서 리더에게 삼가야 할 것이 있는데, 첫째, 권력을 갖고 리더를 위협하는 행동이며, 둘째, 지모와 지략이 출중하여 리더를 없이 여기는 태도, 셋째, 공을 많이 세워 주변인들로부터 리더보다 인정을 받는 일이다.
참모의 자리는 항상 리더로부터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자리이다. 참모는 이점을 항상 자각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도 잘 들으며 주변의 평판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리더가 항상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처신에 더욱 조심하고 겸손해야 한다.
PS : 리더나 중간관리자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부하 직원을 경계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