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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Feb 11. 2021

경기 유랑 양주 편 1

경기도의 큰 고을 양주


어린 시절 넓은 공터나 마당에서 익살스러운 가면을 쓰고 흥겨운 춤과 놀이로 펼쳐진 마당놀이를 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가면이란 형태의 놀이문화는 베니스의 카니발 축제를 비롯해, 중국의 변검과 일본의 전통 극 노(能)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정체를 감춰주는 익명성으로 인해 도덕이나 신분의 굴레로 인해 차마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마음껏 펼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도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가면들을 자신의 신분을 넘어 양반은 물론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도구로 이용해 힘든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 서민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배우들은 탈을 쓰고, 흥겨운 가락에 맞춰서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었던 시대에 큰 재미를 주었다. 이번에 소개할 도시인 양주에서는 지금까지 원형이 잘 남아 있고, 상설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양주 별산대놀이란 이름을 가진 가면극은 송파의 본산대 놀이를 본받아서 18세기 중엽에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 부근에서 150년간 지속되었다.


지금의 양주는 근처 남양주에게도 이름값이 조금 밀리고, 기껏해야 근처에서 군 복무하신 분들은 국군 양주병원 정도로만 기억에 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 양주의 영역은 정말 컸었다고 한다. 서울의 노원, 도봉, 중랑, 광진구를 비롯해 의정부, 남양주, 동두천, 구리에 이르기까지 전부 양주의 영역이었으며 품계상으로도 조선시대에 ‘양주목’이라 지정해서 관리할 정도로 엄청 큰 고을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경기도의 옛 명칭이 광주와 양주의 두 글자를 따서 양광 도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과거의 위세는 말할 것 도 없었다.


최근 서울 집값의 상승에 따른 효과로 인해 다른 수도권 도시와 마찬가지로 ‘옥정 신도시’라 불리는 전형적인 배드타운 역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주는 경기도 북부를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적어도 회암사지라는 조선 초기 전국에서 가장 크고 위세가 가장 컸던 유적이 양주에 남아 있다. 절터의 크기나 남아 있는 초석의 흔적만 해도 어마어마했던 당시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절터를 주위로 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 유적공원과 박물관이 회암사지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양주는 조선시대 화려했던 고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목관아와 뒤편의 별산대 놀이마당 그리고 양주를 대표할 수 있는 명산인 불곡산이 있어 함께 돌아볼 만하다. 그리고 예전 90년대 많은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사랑을 받았던 북한산 자락의 장흥유원지가 굵직한 작가들의 미술관과 조각공원, 박물관으로 구색을 새롭게 갖춰 가족, 연인,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의 큰 고을 양주로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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