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유랑 양주 편 2-2(회암사지박물관 2)

태조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천보산 자락에 터 넓은 양지바른 평원에 자리 잡은 회암사지는 대학시절에도 종종 방문할 정도로 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유명한 비밀의 명소였다. 특히 회암사지에서 포천으로 이어지는 국도는 시골길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외진 곳이 었던 걸로 기억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2차선의 구불구불한 시골길은 어느새 4차선으로 쭉 뻗은 전용도로로 변모했고, 회암사 너머로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선 신도시가 하늘 끝까지 치솟고 있다.

하지만 꼭 안좋일만 있는 건 아니다. 회암사지 자체는 그동안 황량했던 절터에서 벗어나 유적의 품격은 높이고, 좀 더 대중들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유적공원으로 새롭게 변모했다. 시민들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역사를 자연스레 체험할 수 있게 조성하여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양주에 오면 꼭 가봐야 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주차장에 내려 유적공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면 입구에서부터 나란히 서있는 조선시대의 깃발들이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게 해 준다. 유적공원은 중간중간 디테일이 살아있는 부분이 많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초입에는 회암사지의 화려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회암사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의 입구에는 왕이 앉았던 옥좌가 재현되어 있어, 누구나 앉아서 사진을 찍게 해 놓았다. 어른들도 이런 체험을 신기해 하지만 특히 어린이들이 마치 동화 속의 왕자님과 공주님이 된 것처럼 흥미로워하는 모습에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드디어 박물관 내부로 들어왔다. 그동안 숱한 시립박물관과 사설 박물관을 두루 보아왔지만 한 유적을 테마로 하여 전시관이 아니라 박물관을 세웠다는 것은 회암사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유물들이 무척 풍부하기 때문이다.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 가면 필자가 가장 먼저 눈여겨보는 것은 바로 조명이다. 박물관의 조명은 너무 어두워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주위가 환하게 밝으면 유물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손상을 입게 된다. 회암사지 박물관의 조명은 은은한 밝기로 주위를 어둡게 해 놔 더욱 유물에 대해 집중도가 높아지고, 박물관의 품격도 높아지는 듯하다. 회암사에 대한 설명문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거대한 옛 회암사의 모형이 나타난다. 궁궐만큼 화려했다는 기록처럼 건물들이 틈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 사이를 회랑이 이어주면서 엄숙함이 느껴졌다.

건물 모형 위에는 회암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시로 상영되고 있어,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박물관에서 주로 전시하고 있는 유물은 토수와 용두, 잡상 등 기와를 장식하고 있던 조각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물에 대한 심미안이 없는 사람이라도 조각 하나하나의 정성이 대단하고, 그 화려함과 역동성에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수백 명의 수도승들이 참선을 드렸던 국내 최대의 온돌시설 서승당의 모형이 재현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상설 전시실을 나오니 회암사에서 출토된 기와무늬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패션에 적용시켜 보는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문화재의 지속적인 활용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여기 박물관만을 보기 위해 양주까지 와도 좋을 만큼 전시의 질이 무척 훌륭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암사지를 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