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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Feb 13. 2021

경기 유랑 양주 편 2-3(회암사지 공원 3)

태조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박물관에서 회암사지까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의 공간을 역사테마공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가족끼리 캠핑을 할 수 있는 캠핑장도 있고, 가볍게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넓은 잔디밭도 함께 위치했다. 혹자는 문화유적과 이질적인 시설들이 생겨 걱정 어린 의견을 하시는 분도 더러 있지만 그런 염려는 더 이상 없어도 좋을 만큼 시설의 구성이 알차게 되어있다. 유적지와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서 혹시 모를 훼손이나 소음공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잔디밭 같은 공원시설물뿐만 아니라 회암사지와 관련된 테마구역으로 만들어져 역사나 회암사지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흥미를 돋우게 하는 시설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다.


우선 공원 초입에 가면 시간의 미로라 불리는 것을 체험해 볼 수 있는데, 미로의 벽은 회암사지에서 발굴된 기와 파편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로 속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회암사지 관련 o, x퀴즈를 풀어가며 자연스럽게 역사를 이해하며 배울 수 있는 놀이공간이라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박물관에서 회암사지에 대한 공부를 꼼꼼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의 난이도가 의외로 높아 미로를 탈출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소모했었다.


미로를 지나 잔디밭으로 가면 사진을 찍을 만한 조형물들이 눈길을 끈다. 단순히 크기만 우람하고, 쓸데없이 보여주고 싶은 부문만 강조하는 괴기한 모양의 조각품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봐도 될 정도로 퀄리티가 훌륭했다. 특히 검은색 그림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이성계의 어가행렬을 재현한 조형물에 눈길이 간다. 가는 길마다 사진을 찍으며 보내다 보면 아직 회암사지에 채 닿기도 전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걸 쳐다만 봐야 할지도 모른다.


드디어 멀리서부터 석축이 겹겹이 쌓여있는 회암사지의 자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감춰졌던 건물의 터가 환하게 드러난다. 다른 절터와 달리 석탑은 따로 존재하지 않지만 빽빽하게 남아있는 기단의 흔적에서 성대했던 과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회암사지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보이는 건물터를 제1구역이라 지칭한다. 1구역에서는 당간지주와 괘불대를 볼 수 있으며, 중앙 진입계단의 난간에는 아름다운 부조가 세겨져 있어 과연 왕궁에 버금가는 위세를 자랑했던 화암사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회암사의 뒤쪽으로 갈수록 기단은 점점 높아지고 그만큼 위에서 밑으로 바라보는 전망도 훌륭해진다. 원래 전망이 좋은 자리는 권력자들의 전유물인 만큼 아마 중요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뒤쪽으로 갈수록 예전의 배수시설이나 담장터 심지어 맷돌이나 석조물까지 엿볼 수 있어 답사의 재미를 더해준다. 2구역을 거쳐 3구역까지 올라오면 드디어 회암사지의 중심권역이 나타난다. 3구역에는 중심 불전이라 할 수 있는 보광전을 비롯하여 7개소의 건물지와 배수시설을 비롯한 여러 유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보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일자 건물지와 서쪽에는 앞서 소개했던 서승당의 터가 남아있다. 거대한 보광전의 석축에 올라가 건물터를 두루 살펴본다. 비록 건물을 불에 타 없어졌지만 남아있는 석축의 만듦새나 부조의 조각들이 만만치 않다. 보광전은 정방형에 가까운 2층의 중층건물이 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6.2미터에 달하는 월대가 놓여 있었고, 월대를 포함하여 사방에 답석을 깔아 비 오는 날에도 무사히 통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뒤쪽을 돌아보면 가장 높은 곳에 꽤 커다란 승탑이 자리한 걸 볼 수 있다. 보통 승탑은 사원의 외곽에 설치되어야 하는데,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걸 보면 위상이 꽤 높으신 스님의 사리탑으로 추청 한다. 현재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조선 명종 시기 명성을 날렸던 보우 스님의 승탑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스님의 말년을 볼 때 죄인의 신분으로 화려한 승탑을 세웠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절터를 내려다보며 이런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질시하고 시기해서 불에 타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화려한 영화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허전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새로 재건된 회암사에 가서 이 절을 빛낸 고승들의 승탑을 직접 봐야 이 길고 긴 여행이 마무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속 발걸음을 욺 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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