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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Feb 20. 2021

경기 유랑 양주 편 4-1 (일영역)

추억이 묻어있는 장흥유원지

치열했던 공부했던 고3 시절을 지나 대학을 들어오면서 이때까지 누리지 못했던 자유로운 해방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첫출발은 입학하고 얼마 후 떠나는 일명 mt라고 불리는 과별 모임인데, 입학하고 대학에 대한 환상이 극대화될 때다. 그때는 누구나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우정, 아련한 사랑...... 하지만 정작 모임에 가선 기대는 사라지고 선배가 주는 술만 잔뜩 마시고 꽐라가 된 채 초췌한 몰골로 차에 몸을 싣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추억들이 있는 장소가 북한산 뒤쪽 자락을 따라 옛날 교외선 열차가 다녔던 일영, 송추, 장흥 일대에 몰려있었다. 예전에는 의정부에서 고양까지 교외선 열차가 다녔기에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면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계곡에는 노점상들이 빽빽이 자리 잡아 백숙이나 닭볶음탕을 팔며 비싼 식사를 하지 않으면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상업적인 모습에 눈살이 찌푸러진 기억도 더러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아 고기를 구우며 쓰레기를 여기저기 버리는 등 환경오염의 문제도 심각했다.

더 이상 교외선 열차는 다니지 않지만 이제 장흥지역은 번잡했던 유원지에서 벗어나 아름자운 자연에서 예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미술관도 생기고, 연인이나 가족끼리 경치를 감상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도 들어서고 있다. 서울 근교지만 도시의 번잡함이 전혀 없고, 가볍게 드라이브 삼아 다녀올 수 있는 양주의 장흥면은 행정구역상으로 양주에 속해 있다. 북한산 산자락에 깊숙이 웅크리고 있고, 정작 양주 도심보다 서울, 의정부와 더 가까워 양주와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장흥면의 계곡을 따라 교외선 기찻길이 이어져있다. 2004년까지 통일호가 운행되다가, 여객열차의 맥은 끊기고, 가끔 군용, 화물열차만 한적한 이 노선을 지나갔었다. 2019년 이 열차의 운행도 중단되면서 한동안 노선은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한 폐역으로 전락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적한 장흥, 일영, 송추역에 사진가들의 발길은 이어졌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일영역에서 ‘봄날’이란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여기서 촬영하기도 했었다.

옛 추억을 살려 먼저 일영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깊은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교외선 철도길은 보일 듯 말 듯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질 않는다. 드디어 주택가가 조금 모여있는 좁은 길목 사이로 일영역의 표지판과 함께 방탄소년단의 ‘봄날’ 촬영지를 알리는 글귀가 덩달아 조그맣게 붙어있어 이 장소를 찾는 사람이 꽤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영역은 옛날 시골 읍내 역처럼 조그맣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많이 낡아 녹이 슬고 간판의 글씨는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정겨웠다.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 대합실을 지나자마자 시원하게 쭉 뻗은 철길과 플랫폼이 나타났다. 경춘선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전철화 이후 일반 철길과 다름 없어져서 무척 아쉬웠는데 낮은 플랫폼이 무척 반가웠다. 대학시절은 우리의 봄날일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을 지나 꽃을 만개하는 봄처럼 우리의 꿈은 마음껏 활개 쳤고 우리의 목표를 위하여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갔었던 시기였다. 이제 취업을 위해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하고, 어른이 되고, 꿈을 수확해야 하는 가을을 위해 노력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봄이 그립다. 가을 추수에 실패하고 혹독한 겨울을 겪고 있지만 다시 돌아올 봄날을 한번 더 기다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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