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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Feb 27. 2021

경기 유랑 동두천편 1

미군기지와 동두천

이제 서울 이북의 답사는 어느덧 동두천과 포천만 남겨두고 있다. 동두천이란 이름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명이나 간혹 들려오는 미군부대 관련 사고 뉴스로만 접했을 뿐 딱히 친숙한 동네는 아니다. 양주와 연천 사이에 조그마한 면적으로 끼어있어 딱히 볼 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6.25 전쟁 이후 현재의 동두천 일대가 폐허가 되었고, 미군들이 그 일대에 주둔하게 되면서 그 일대는 미군과 외국인을 위한 위락시설이 집중되며 새롭게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미군부대는 양주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동두천을 독립된 행정도시로 변화시켰고, 특히 경제적 궁핍기에 있던 도시를 미군을 통해서 유입되는 첨단 서구문화로 국내 여타 도시보다 오히려 앞서 문화적인 풍요를 누리기도 했다. 한때 동두천 일대는 서울의 미 8군 클럽과 함께 7,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는 대중가수들의 요람이기도 했다. 특히 록의 대부인 신중현이 국내 최초의 록 밴드 애드훠(ADD4)를 결성하고 활동한 곳으로 록과 한국 대중음악의 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군의 문화적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출발한 쇼단 문화는 역설적으로 이 지역에서 걸출한 음악인들을 많이 배출하게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중현(애드훠), 유현상(백두산), 인순이, 나미, 페티김, 현미 등이 있다.

이런 동두천의 록 문화는 현재 보산역 동두천 관광특구에 있는 두드림 뮤직센터와 해마다 8월에 열리는 동두천 록 페스티벌이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따라오는 법, 동두천의 경제발전을 일으켰던 미군은 반대로 이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일으킴은 물론 한미 상호 방호 조약으로 상징되는 치외법권으로 인해 문젯거리로 전락했다. 처음 미군부대가 들어올 시기만 해도 전체 동두천 면적(95.66㎢)의 42%(40.63㎢)를 미군부대가 차지하면서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현재는 미군부대의 대다수가 철수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캠프 케이시를 중심으로 동두천 전체 부지의 19%(약 18㎢)를 차지하고 있고, 이곳이 위치한 보산역 일대가 개발에 용이한 넓은 평지여서 동두천 내에서는 ‘노른자 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풍경이 동두천만의 아이덴티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동두천에서는 미국 문화가 무엇보다 먼저 들어온 도시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한국과 미국의 독특한 문화가 결합된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두천엔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소요산이라고 하는 명산이 있고, 70,80년대 단관극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동광, 문화극장이 있어 재미있는 도시탐방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동두천으로의 여정을 한번 떠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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