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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Mar 01. 2021

경기 유랑 동두천 편 2

경기도의 명산 소요산

동두천을 상징하는 명소는 어디일까? 동두천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종점인 소요산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편리성 덕분에 수많은 행락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어느 명산 못지않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다. 해발 587미터로 비교적 높이가 낮다고 우습게만 볼 산은 아니다. 경사가 꽤 급하고 험한 구간도 꽤 있고, 주봉인 의상대을 비롯해 나한대, 공주봉 등 소요산의 여럿 봉우리를 돌고 내려오면 4시간가량 걸리니 단단한 각오를 하고 올라야 한다.


소요산은 예로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했고, 그 명칭 자체도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과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소요(산책)하였다 하여 붙였을 만큼 산의 발길 닿는 장소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다. 특히 소요산의 중심 사찰인 자재암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이 곳 산으로 들어와 수행하면서 지은 것이라 한다. 


소요산역을 나오면 과연 동두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등산로 입구를 따라 우후죽순 들어서 있었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이라 꽤 쌀쌀한 편이었지만 벌써부터 많은 행락객들로 가득 찼다. 순간 이번 답사가 번잡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등산로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북적거림은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마 입구의 관광단지까지 마실 나오신 분이 많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겨울이라 잎은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앙상하지만 산의 골격이 한눈에 드러나 보인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입구 근처에 자리한 원효 굴을 들여다본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잠시 수행했다고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여졌는데 참고로 해골물을 마신 곳은 충남 예산의 가야산 일대라고 전해진다. 원효 굴에서 멀지 않은 곳엔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미 물은 꽁꽁 얼어 폭포라고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해보자. 난이도에 따라 여러 코스가 있지만 일반적인 종주코스는 자재암에서 시작해 하, 중, 상 백운대를 거쳐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계단을 오르기 전 잠깐 조그마한 암자인 자재암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요석공주와 원효대사가 함께 살았다는 장소라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암자 곳곳에는 그와 관련된 벽화나 장식이 많았다. 그다음엔 끊임없는 계단이 줄곧 이어지는데 그 숫자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급경사로 되어있어서 한걸음 오를 때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이왕 온 거 고통을 즐기며 천천히 한걸음 씩 올라간다. 어느덧 능선이 나타나고 발밑에는 주변 산세와 동두천 시내까지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태조 이성계는 회암사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이곳 소요산에서 행궁을 짓고 수행을 하기도 했으며, 자주 백운대에 올라 왕자의 난으로 실각한 자신의 회한을 달랬다고 한다. 백운대를 지나 나한대로 가는 길은 칼바위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 낙상사고가 빈번이 일어나 지금은 우회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나한대는 소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이름은 불교의 명칭을 따왔을 것이다. 원효는 물론 고려시대 나옹과 이성계가 수행하면서 소요산의 주변 봉우리의 명칭을 불교식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이제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가 나온다. 동두천 주변은 물론 예전 파주 편에서 다뤘던 감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대의 정상 비석을 눈에 담으며 이제 마지막 봉우리인 공주봉으로 향하는데, 무척 길이 험하고 등산로가 일정하게 나 있지 않아 공주봉으로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했다. 요석공주의 명칭을 따서 공주 봉이라 불린 곳인데 공주봉에 서서 의상봉의 날카로운 봉우리가 아른거린다. 아마 요석공주에게는 원효대사가 한없이 높고 접근하기 힘든 낭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나무계단을 따라 천천히 원점으로 돌아온다. 오면서 여러 글귀가 적어진 팻말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지나가는데 ‘삶은 한순간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말이 눈에 들어 들어온다. 


4시간 동안의 산행은 무척 힘들었지만 우리네 인생을 압축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것 같다. 우리나라 어느 동네나 지역을 가든 이런 명산이 하나씩은 있어 조금만 발품을 팔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점이 참 좋다. 동두천에는 이런 소요산이 있어 그 도시의 가치를 한층 끌어올린다. 동두천에는 미군 문화와 결합된 독특한 풍경이 많으니 하나한 찾아가 보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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