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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Sep 28. 2020

경기 유랑 파주 편 1-1 (임진각)

개성 20km 평양 160km 백두산 468km

가까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곳,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훨씬 먼 곳, 문이 열리길 한없이 기다리는 도시 파주를 향해 떠나보려고 한다. 김포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나한테 파주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봤던 북한 마을의 풍경, 외교적으로 큰일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판문점, 임진각에서의 굳은 헌병들의 표정, 굳이 꺼내자면 이선균 주연의 영화 <<파주>>정도가 떠오른다고 할까?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한둘이 아니지만 파주는 특히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은 도시인만큼 그 무게감 이 있어 가기 꺼려졌던 게 사실이다.

물론 최근에 파주 남쪽에 운정신도시가 생겨서 인구가  늘고, 출판단지, 헤이리 예술마을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관광지가 어느 정도 생겨서 예전만큼 접경도시의 이미지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것만으로 파주의 정체성을 설명하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비게이션을 임진각으로 설정하고 거기서부터 파주를 알아가 보기로 한다. 일산대교를 건너 자유로를 타고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향을 맡으며 계속 올라간다. 한없이 넓은 자유로를 많은 차량들이 쌩쌩 달리며 지나간다. 북한과는 가깝다곤 하지만 한강변의 철조망과 초소만이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줄 뿐 여전히 도로는 북적인다. 일산신도시를 거쳐 파주로 들어왔지만 넓고 길게 뻗은 도로는 과속 생각을 절로 나게 만든다.

운정신도시를 지나 차량의 행렬도 점점 줄어들어 출발 전에 들었던 긴장감도 서서히 녹아갈 무렵 파란색 거대한 표지판이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 개성 20km, 평양 160km, 백두산 468km >> 여기서 개성의 거리가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순간 여기가 접견 지역인 사실이 실감이 났고 강 건너편이 바로 북한이란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니 어느새 운전대를 잡은 손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민간인이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최북단 임진각에 도착했다. 경계가 삼엄하고 엄중한 분위기란 기대를 안고 터널을 지나 넓은 공터로 나서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또 한 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이킹, 범퍼카, 회전목마 등 각종 놀이기구들이 흥겨운 음악을 내뱉으며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바람개비들이 흩날리는 초록색 언덕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건너편엔 곤돌라가 저 멀리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유원지 같은 모습에 무척 놀라 순간 내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게 아닌지 의심도 했었지만 한 구석에 국립 6 25 전쟁 납북자 기념관이 있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안에서는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납북되거나 행방불명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납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기법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납북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을 볼 때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사람이었던 사람들이 이념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전쟁을 이유로 생 이별을 하게 되고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가신다는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다. 접경지역이 대부분의 비율을 차지하지만 전라도, 경상도에서 끌려오신 분 들도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드디어 임진각에 다다랐다. 임진각 앞의 망배단에서는 매년 명절 때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곳으로 향로와 망배 탑이 있다. 전망대로 올라서니 멀리 자유의 다리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개성 땅이 아른거린다. 걸어서라도 금방 갈 수 있는데 가지 못하는 비극을 현장에서 체험하니 확 와 닿는 게 있다. 건너편 장단지역의 판문점까지 가보면 더욱 실감이 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녹슨 장단역 증기기관차 앞에 선다.

철마는 더 이상 북으로 달리지 못하고 나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춰야 하지만 파주로 향한 길은 이제 시작이다. ”기다림의 도시 파주“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앞으로의 여정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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