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마지막 안식처
예전에는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가 이제는 이름이 국립수목원으로 바뀐 그곳으로 간다. 광릉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길 건너편에 국립수목원의 입구가 보이면서 '여기서부터 포천입니다' 알리는 표지판에 눈길이 간다.
불과 몇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광릉은 남양주시에 속하고 국립수목원은 포천시에 있는 아이러니함이 전해져 온다. 그래도 같은 남양주권에 속해있는 만큼 국립수목원도 남양주 편에서 함께 다루기로 한다. 몇백 년 전부터 울창한 산림이 조성되어 있는 광릉숲을 바탕으로 조성된 국립수목원은 다른 수목원들과 달리 미리 전화나 인터넷 예약을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다.
절차가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는 벌써 차로 가득해서 좀처럼 주차를 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숲으로 돌아가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꽤 크구나 엿볼 수 있었다. 국립수목원은 과연 그 명성답게 입구에서부터 참나무의 우람한 자태가 멀리서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수백 년 동안 금단의 구역으로 풀 한 포기조차 뽑는 걸 금지했기에 이렇게 생태가 잘 보전되었을지도 모른다.
광릉숲은 세계적인 희귀종 크낙새·하늘다람쥐·장수하늘소·원앙새 등 20여 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천연림을 비롯한 2931종의 식물과, 2881종의 동물이 뛰어놀고 있어 생태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동식물의 낙원이며 천연의 자연사박물관이라 불린다. 이곳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수목원 내 조성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침엽수원, 전나무숲 등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난대식물원실, 산림박물관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특히 국립수목원 한쪽 끝에는 육림호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그 곁에 있는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며 바라보는 전망이 무척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규모가 무척 넓은 만큼 어디를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 든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아 나무와 꽃들이 앙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뭇가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푸른 멍울이 조그맣게 피어있다.
유난히 추웠던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라 봄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년은 국가적, 아니 전 세계적 재앙으로 인해 누구나 가릴 것 없이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나무에 피는 멍울을 보면서 조그마한 희망을 발견했다.
▲ 국립수목원 내부에 있는 산림박물관의 풍경 우리나라 산림과 임업의 역사와 현황, 미래를 설명하는 각종 임업사료와 유물, 목제품 등을 주로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전시와 동선자체가 무척 훌륭한 박물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단 첫 목적지를 산림박물관으로 잡고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한없이 마셔보는 호사를 누려본다. 어느 순간 거대한 국토녹화기념탑과 함께 다소 수목원과 어울리지 않는 여러 시설물이 배치되어있었다. 대통령이 심은 식수와 여러 분재나무들 그리고 수목원에 기여하신 사람들의 명예의 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 아름다운 수목원이 현재까지 잘 보존된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티를 내면서 비석을 세우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이런 사람들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드디어 거대한 박물관이 눈앞에 들어온다. 1987년에 개관한 산림박물관은 우리나라 산림과 임업의 역사와 현황, 미래를 설명하는 각종 임업 사료와 유물, 목제품 등 4900여 점에 이르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다소 낡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박물관의 내부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마치 거대한 산장 안으로 들어온 듯 나무로 장식된 인테리어와 함께 강한 나무의 향기가 코를 거쳐 폐 속을 찔렀다.
▲ 산림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광릉숲의 미니어쳐 세조의 능지가 조성되면서 능 주변 사방 6킬로미터의 숲이 부속림으로 지정되 엄격하게 관리되고 보호되었던 광릉숲의 미니어처를 보여준다.
바로 옆에 있는 1 전시실에서는 거대한 나무의 밑동을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의 표본을 살펴볼 수 있으며 거대한 나무의 주위로 수목원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의 박제를 진열해 놓아서 더욱 실감 나는 관람이 되었다. 곧이어 2층으로 올라가면 산림의 역사부터 목재의 가공과 이용, 광릉숲에 대한 정보를 최첨단 기법과 모형으로 설명해놨다. 전시 구성과 관람 동선까지 훌륭했다. 자연스럽게 동선은 1층으로 이어지고, 어느덧 박물관 밖으로 나와 바로 온실에 당도하게 된다.
온실까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수목원 끝에 있는 육림호로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마시는 숲의 향기와 눈이 시원해지는 수목의 향연 그리고 새의 소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니 오감 전체가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수목원이 잘 보존돼서 경기도의 명물로 계속 남아있길 고대한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절, 봉선사
▲ 운악산 봉선사의 한글명팔을 달고 있는 일주문 봉선사는 다른 절에 비해 한글 명판을 단 건물이 유난히 많다. 입구인 일주문에서부터 그런 느낌이 전해져온다.
이제 수목원을 나와 광릉숲의 초입에 위치한 봉선사로 다시 돌아간다. 봉선사는 광릉에 입구에 있는 만큼 세조와 관련이 있다. 원래는 고려 광종 시기 운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작은 절이었다.
하지만 조선 예종 시기 세조의 광릉을 조성하면서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89칸 규모로 중창하고 봉선사(奉先寺)라 고쳐 불렀다. 봉선사의 명칭 자체가 선왕의 능을 받들어 모신다(奉護先王之陵)는 뜻이 담겨 있으니 세조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는 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으로 알려졌던 문정왕후가 불교중흥 정책을 펴면서 강남 봉은사를 선종의 대표로, 이곳 봉선사를 교종의 우두머리로 삼고 전국 사찰을 관장하게 했었다. 그런 연유로 봉선사의 앞마당에서는 승려의 과거시험인 승과시가 열리기도 해서 크게 번창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도 봉선사는 조계종 25 교구 본사로서 그 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 호수를 끼고 있는 봉선사의 풍경 봉선사는 다른 산사들과 달리 절 앞마당에 호수와 잔디밭을 끼고 있고 호수의 한가운데는 분수가 솟구치며 클래식이 울리는 카페도 있다.
봉선사의 입구는 광릉의 상업지구와 혼재되어 있어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경내로 들어오자마자 기존의 절과 다른 점이 몇 가지 보였다. 우선 일주문의 현판이 한글이다. 그리고 문화센터에 온 것처럼 예절교육, 사찰요리수업, 연등 만들기 체험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보였다.
그리고 경내의 초입에는 거대한 호수와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있는 카페도 보여서 순간 공원에 온 건지 절에 와있는 건지 아리송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봉선사의 중심 법당은 대웅전이 아니라 한글로 '큰 법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린 곳이었다. 상해에서 흥사단에 가입, 독립운동을 펼치다 30세에 출가한 운허(雲虛, 1901~1980) 스님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운허 스님은 동국대 역경원장을 지내면서 이곳에서 대장경의 한글 번역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중교화에 주력한 그 교풍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 같다.
▲ 봉선사의 중심법당, 큰법당 봉선사의 중심건물로서 대웅전이 아니라 큰법당이라 불린다. 특이하게 나무가 아니라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다.
그 밖에도 봉선사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범종과 춘원 이광수의 추모비가 서 있어 눈길을 끈다. 산사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가수 유현상이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장소로도 유명하며 가왕 조용필 역시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던 사연도 있는 만큼 나름 내력이 있는 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 코스로 광릉과 국립수목원 그리고 봉선사까지 둘러보면서 역사와 그 장소에 담긴 여러 이야기도 되새겨보고, 시원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나름 호사도 누려봤다. 남양주에는 사연 많은 왕들의 무덤이 유난히 많다. 이번엔 조선 마지막 왕가의 무덤군으로 떠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