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멈춤이란 단어는 있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일은 물론 휴식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며 쉬어야 직성이 풀릴지도 모른다. 멍을 때린다는 행위는 점점 찾기 힘든 일상의 사치품 일지 모른다. 어느 날 우연히 브라운관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항상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바쁘게 걸어 다니는 군중의 모습만 보다가 단체로 맹한 표정을 지으며 멍 때리는 모습을 한 풍경 자체가 현실세계와 무척 괴리가 있어 보였다.
크러쉬라는 유명 연예인이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세간에 무척 화제였지만, 그보다 이 대회 자체가 하나의 예술 퍼포먼스라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2014년에 시작한 멍 때리기 대회는 중국, 대만, 홍콩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21년 현재 잠시 멍 때리기 대회는 숨 고르기를 하고 있고, 이 대회의 쿠베르탱 남작(올림픽 대회를 만들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웁쓰양 작가는 <그림 좋다>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면서 새롭게 세상을 들썩일 준비를 하고 있다.
공항철도 홍대입구역에서 연남동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로처럼 얽혀있는 동진시장의 골목 초입에 플레이스 막 1이라는 갤러리가 있다. 지난 18일 그곳을 방문했다. 입구에서부터 <그림 좋다>의 강렬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웁쓰양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물었다.
"작가로서 9년간 멍 때렸던 시간, 나쁘지 않았어요"
▲ 플레이스막 1에서 개최되는 웁쓰양의 개인전 <<그림좋다>>
플레이스막 1에서 개최되는 웁쓰양의 개인전 <<그림좋다>>는 홍대입구에서 멀지 않은 연희동 동진시장에 위치해있다. 갤러리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1. 이번 미술 전시회가 9년 만에 열렸다고 알고 있는데 전시회에 대한 소감?
" 9년이라는 세월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죠. 화가로서 오랜만에 작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계기가 되어 펜과 붓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드로잉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공백기에도 작업은 꾸준히 조금씩은 하고 있었죠. 저는 그 긴 시간이 기쁘다고 생각해요.어찌보면 회화작가로서 9년간 멍때렸던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기간 동안의 꾸준히 가졌던 생각들이나 경험이 저의 예술 작품에 녹아들어서 좀 더 괜찮은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봅니다. 전시회도 적당한 때에 열린 것 같고요."
2. 제목이 <<그림 좋다>>라 지었는데 무슨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지었을까요?
"9년 전에 회화를 멈췄을 때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젊은 예술가로서 치기 어린 생각이지만 회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었죠. 그림은 걸렸다 내리면 끝이고, 연속성이 없었다고 봤어요. 그 과정에서 회의를 느꼈었고,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뭐 그림도 잘 안 팔리기도 했고요.(웃음)"
"다시 그림을 그리고서는 그 사이에 회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작업 자체가 편안해졌고요.그림은 그림일 뿐이다는 거죠. 회화 자체로서의 그림과 맛을 느꼈습니다. 행복하게 작업해서요. 관람객들이 그림을 보고 희열이나 좋다 라는 감정을 느껴서 <<그림 좋다>>라는 의미도 있고,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좋다 해서 가지는 기분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림 좋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뭐 중의적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3. 전시회를 열린 장소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동네이던데 평소 소통하시고 관람자가 완성하는 예술을 추구하는 웁쓰양의 가치관과 연관이 있을까요
"전시장소자체는 대중들과 소통을 염두해서한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전시회가 열리는 플레이스 막 1의 주변 환경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기 때문에 딱히 갤러리를 찾기 위해 어딘가를 찾지 않더라도 데이트나 나들이로 돌아다니면서 보기 딱 좋아한 건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또 그렇게도 되겠군요.(웃음) "
"사실 많은 미술 평론가들이 저의 전시회에 관한 서문을 써주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제 작업 자체가 대중들과 맞닿아 있는 만큼 어머니, 지인 분등 그림에 관심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전시에 관한 글을 받아 실었습니다. 그들의 시각으로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참여형 퍼포먼스를 주로 했었던 저의 가치관과 어울린다고 봅니다."
4. 확실히 드로잉을 그릴 때와 색이 입혀진 아크릴에 그린 그림을 볼 때 편안함이 다르거든요 감정에 따라 그림의 톤이 달라지는지?
"드로잉은 선으로 빠르게 그림을 그려가죠. 직관적으로 그때그때 감정을 드러내기엔 가장 좋은 매체라고 봐요. 처음에 공황장애가 왔을 때 치유목적으로 드로잉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좀 더 감정이나 미학적으로 깊이 있게 가져가고 싶어서 페인팅을 하기 시작했어요."
"페인팅을 진행할 때 감정조절 쉽지 않아서 페인팅을 하기까지 혼자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드로잉과 페인팅의 감정이 달라져 보이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5. 다시 그림을 그렸던 계기가 있었을까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주위의 환경이 달라진 이유 때문일까요?
"공황장애가 있어서 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치유를 해보기도 했고, 해소하는 용도로 다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드로잉을 1년 정도 작업하니 주변에서 미술 하는 동료들이 페인팅 권유를 했죠. 막상 말로는 알겠다고 했지만시도하는 건 별개의 노력이 필요해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스 막 대표님께서 전시제안을 주셨습니다. 일을 벌여놓니까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진행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자의는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 조금씩 용기를 내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멍때리기 대회로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온 웁쓰양 작가 멍때리기 대회로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온 웁쓰양 작가는 9년 만에 다시 개인전을 개최했다. 도발적이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6. 그림이 대체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고, 강한 느낌이 첫인상에 오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그림을 보고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의 치유를 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연출하신 건지?
"작가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매력이 없다고 봐요. 작품은 그 작품을 읽는 독자 관객의 해석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리 보이는 거라고 봐요. 제 작품의특징은 그래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하고, 감정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려고 애를 썼던 지점 같아요."
"페인팅을 작업할 때도 그때 그대로 감정에 충실할 뿐이에요. 딱히 의도하는 건 없어요. 관객들이 있는 그대로 느끼고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7. 전 그림 중에 <일요일>과 <피크닉>이 흥미로웠는데 관람객들이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포인트를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드로잉, 페인팅을 그리면 기본적으로 누드를 많이 그리는 편인데요. 드로잉의 누드는 인체의 곡선을 드러내면서 감정은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페인팅 누드는 피부의 색, 빛의 반사로 인한 톤과 색감이 들어간 누드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무심한 듯한 느낌이 있어요."
"벗고 있지만 벗고 있는 게 주가 아니고, 설령 그것이 자극적인 모습으로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의 그림엔 우화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서 의외로 재치 있게 봐주시지 않을까 해요. 저의 그림을 액면 그대로 보기보단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해 주시면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8. 그림을 그리면서 브레이브걸스의롤린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주로 작업하실 때 노래를 들으시면서 하시는지
"9년 전과 제가 달라진 점인데 많은 회화작가들이 음악을 듣습니다. 노동요라고 흔히들 말하죠. 제가 원래 그림 그릴 때는 격하고 우울한 노래를 많이 들었습니다. 옛날 하드록이라던지 우울한 인디밴드의 곡을 들었죠. 어느 날 브레이브걸스의롤린이란 노래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요. 노래에 빠져 있는 군인들의 직캠이었죠. 노래와 영상에서 감돌고 있는 에너지와 함성이 흥미롭더라고요."
"저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흥이 넘치는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두렵고 긴장된 기분이었는데 이 노래를 즐기게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 흥을 유지해주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고요. 저의 기분을 긍정적으로 많이 바꿔 났다고 봐요."
9. 멍 때리기 대회가 엄청 화제였잖아요 2019년까지 열렸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나중에 팬데믹 상황이 끝나거나 랜선으로라도 여실 생각은 있으신지.
"한강 사업본부와는 2016년 대회부터한강에서 함께했었거든요. 올해는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2021년에 다시 할 수 있을지 이야기 중에 있습니다. 거리두기 잘 지키고, 방역 수칙을 잘 지켜서오프라인으로 라도 해보려고요. 주최하는 한강 사업본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번 가능하면 해보려고 합니다."
"시민들과 소통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멍 때리기 대회가 7년 동안 대중의 관심을 가진 대회였고, 모두에게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회를 기다리는 분이 많아요. 힘이 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팬 분 들을 위해서 부활했음 합니다."
10. 여러 가지 미술, 예술에 관한 다양한 도전을 하셨고, 앞으로도 계속하실 텐데 생각하고 계신 계획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올해는 반드시 무언가를 할 거야, 난 이런 작가가 될 거야’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 정체성이 아직 확립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 들었죠. 시간이 지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 보니 오히려 제가 다양한 분야를 하는 작가이고, 무언가 정답을 정하고 할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도 저고 뭘 해도 나니까 계획을 안 하는 게 결과적으로 저 다운 행동을 하는구나 싶었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잘해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11. 웁쓰양에게 인천이란?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 관람객들에게 하고픈 말
"인천은 제가 태어난 곳이자 가족들이 살고 있고, 친한 동료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천과 관련된 작업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제 작업에 딱히 지역색이 있지 않아요. 그래도 인천과 연관된 작업을 종종 하긴 해요. 인천에서 활동을 하는 건 가족과 동료들 덕분에 편하고 의지가 많이 됩니다. 마음의 안식처 고향 같은....... "
"저는 현대미술이 늘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사실 저도 어렵거든요. 정말 쉬운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쉽게 다가서는 예술을 한다는 의미지 easy는 아니에요.(웃음) 제가 사회 문화적 이슈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 어려운 현대 미술 틀 밖에 있는 작가가 되고 싶고, 미술계보다는 대중의 품이 더 따뜻하고좋다고 느끼는 사람이니 관심을 많이 가져주세요. 앞으로 저의 회화, 퍼포먼스 등 꾸준히 지켜봐 주시고 전시회에서 편안하게 작품을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천천히 다시 그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과연 설명을 듣고 보니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그림이 무척 편안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갤러리엔 21점의 드로잉과 12점의 페인팅이 전시중에 있는데, 페인팅 작품들은 전시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70프로가량 팔려나갔다고 한다. 전시회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 한다. 그중에는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도 있다고 하니 명성이 정말 대단한가 싶었다.
요즘 현대미술의 트렌드는 많은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현대인들의 경향과 맞물려 어렵지 않게 읽히는 서사가 없는 인스타그램 같은 그림을 선호한다고 한다. 자칫 가볍게 흘러갈 수 있지만 웁쓰양의 그림은 감정 분위기가 직관적으로 드러나고 쉽게 와 닿아서 더욱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웁쓰양의 개인전은 홍대입구에 위치한 동진시장 내 플레이스 막 1에서 열린다. 4월 17일 날 시작한 전시회는 5월 7일까지 열리고, 오전 12시부터 저녁 7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 화는 휴관일이다. 주변에 상당히 맛집도 많고 볼만한 가게가 많으니 날 좋은 날 웁쓰양의 개인전도 즐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