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돌아보자.
수원화성의 장안문에서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볍게 산보하듯이 걸어가며 경관을 감상했다. 이번에는 팔달문 주위에 있는 전통시장과 박물관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다. 보통 북문이라 불리는 장안문에서 흔히 시작한다. 장안문 지역은 서울 사당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서는 등 교통의 요지라 접근성도 편리하다.
▲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인 방화수류정과 연지 전경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인 방화수류정은 어떤 포인트에서 즐기던지 간에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장안문으로 들어가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수원화성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손꼽히는 북수문(화흥문)과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이 나타난다. 특히 방화수류정 앞에 있는 둥그런 모양의 연못인 용연과 성위에 우뚝 서있는 정자(방화수류정)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다. 방화수류정에 올라가서 용연을 조망하는 것도 좋지만 방화수류정을 구역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아무래도 잠시 성 밖을 나와 버들나무가 휘날리는 용연과 정자의 조화를 함께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야간 조명이 무척 아름다우니 밤에 이 부분만 떼어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 수원 화성의 연무대, 활쏘기 체험장 동장대 또는 연무대로 불리는 장소는 수원 화성에서 가장 넓은 평원지대다. 지금도 활쏘기 체험을 즐길 수 있고, 화성어차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멀리 화성을 대표하는 건축물 동북공심돈이 눈에 띈다.
그다음으로 수원화성 구간 내에서 가장 평탄하고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기도 하고, 화성에 머물던 장용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라 해서 동장대라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는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고, 화성 어차가 출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주위를 둘러보기 좋다. 그리고 성곽을 돌며 반대편으로 꺾이는 공간에 한옥 지붕을 한 둥근 망루가 있어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수원화성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북공심돈이라고 한다.
화성의 여러 건축물 중에 유일하게 원형 평면이고, 조선의 건축자재로 쉽게 쓰이지 않는 벽돌로만 건축된 게 특징이다. 원래는 내부에 들어가서 위를 조망할 수 있는데 필자가 답사한 날은 닫혀 있어서 아쉬웠다. 이제 동문이라 할 수 있는 창룡문을 지나 다시 팔달문을 향해 직선으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수원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치성(雉城)이 눈에 띈다. 성벽 중간중간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는 구조물을 말하는데 치성에 병사들의 감시초소를 지어 올린 것은 포루(鋪樓), 여기에 휴식처로서의 기능을 더한 게 각루이다. 그리고 벽돌로 작은 요새를 지어 올린 것이 공심돈이다. 기존의 다른 성에서는 살펴보기 힘든 구조물로 군사적으로 진일보함을 보여줌은 물론 미학적인 건축물이 화성 곳곳에 만들어졌다.
▲ 최근에 복원된 남수문의 모습 수원화성에서 가장 최근에 복원된 남수문 구간의 모습이다. 이제 수원 화성은 팔달문 구간만 복원을 남겨두고 있다.
포루, 치 등 각종 군사시설은 물론 봉수대 시설도 보존이 훌륭했지만 성벽 한편에는 일반 주민들이 사용하는 체육시설도 있었다. 시민들과 가까이 있는 문화재라는 점이 화성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수문을 거쳐 팔달문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중간에 시장들로 인해 길이 끊겨서 조금은 아쉽지만 순대로 유명한 지동시장, 영동시장 등 수많은 시장이 있어 사람들로 늘 붐비는 지역이다. 정조는 부국강병의 기초가 상업에 있다고 보고 수원에 전국 각지의 유능한 상인들을 불러 모아 팔달문 앞에 시장을 열게 했다고 한다. 역사상 왕이 만든 유일한 시장이었다고 하고, 버들나무가 많은 수원의 별칭이 유경이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수원의 상인들을 유상이라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래시장과 그 주변에는 유난히 먹거리가 많기로 유명하다. 지동, 영동, 팔달문, 뭇골 등 다양한 시장이 몰려있는 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먼저 식품 위주의 가게가 많은 지동시장에는 곱창 순대볶음이 유명한 타운이 있는데 칼칼한 육수 베이스에 곱창과 순대 그리고 당면 사리와 라면사리가 푸짐하게 들어가서 넉넉한 시장 인심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푸짐한 순대볶음을 허겁지겁 먹다 보면 한국인은 아무래도 밥을 먹어야 식사가 끝나니까 볶음밥까지 맛있게 마무리한다.
팔달문 시장에는 유난히 만두로 유명한 수원에서 나름 이름을 떨치고 있는 분식집이 있다. 1978년에 설립해 40년 넘게 그 자리에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코끼리 만두라는 집이 바로 그곳인데 여기는 튀김만두와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쫄면이 유명하다. 군만두와 사장님이 직접 담그신 섞박지, 그리고 새콤달콤한 쫄면을 함께 즐기면 순식간에 한 그릇이 비워진다. 팔달문 주위의 다양한 시장들 만큼이나 수많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새 답사의 출발점인 팔달문과 다시 만난다.
▲ 수원을 대표하는 팔달문 수원 화성에서 유일하게 끊긴 구간인 팔달문은 예로 부터 남문이란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수원의 주요 번화가 역활을 했었던 장소다.
서울의 남대문(숭례문)과 비슷한 위상을 지닌 팔달문은 흔히 남문이란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다소 쇠퇴했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수원의 중심지라 할 수 있었다. 당시 남문 일대는 수원 근방의 용인시, 안산시, 평택시 등지에서 죄다 몰려와서 지금 수원역에 필적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 수원역에 밀리게 되었다. 그래도 주위의 시장을 중심으로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여러 유적들 중에서 유일하게 홀로 외롭게 떨어져 있는 섬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화성의 모든 구간이 이어져 있지만 유일하게 끊긴 부분이 팔달문 구역이다. 주변에 들어서 있는 전통시장들로 인해 복원은 먼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수원 화성이 완전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팔달문을 이런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몫은 화성 답사의 미완의 여운으로 남겨둔다. 행궁광장에서 머지않은 장소에 수원화성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는 수원화성박물관이 있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기 직전 수원 화성을 축소해서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미니어처가 정말 볼 만하다.
직접 밟았던 장소를 전체적으로 가늠해보니 화성의 모든 모습이 확실하게 새겨들어온다. 화성 축성실에 먼저 들어가면 수원화성의 축성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면서 세계 유수의 성곽 모형은 물론 모형 전시를 통해 축성 물자의 이동 경로와 재료에 따른 축성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수원 화성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화성성역 의궤>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꼼꼼하고 세밀한 조선의 기록유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 반대편인 화성문화실로 가본다. 이 전시실에서는 정조의 행차 행렬과 조선의 군사개혁의 핵심인 장용영에 대해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전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지만 장용영 군사들의 무기와 무예, 서북공심돈에서의 가상 전투 장면을 통해 수원화성이 정조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 것 같다.
도심 속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앞으로 화성 일대가 어떻게 변할지 무척 궁금했다. 행궁은 물론이고, 화성 주변으로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복원, 발굴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도심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걸어서 주변의 여러 경관까지 돌아볼 수 있는 도시는 흔치 않다. 화성 안에는 게스트 하우스들이 꽤 많다. 한옥으로 된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날 좋은 밤에 달빛과 함께 아름다운 화성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1박 2일간의 수원 화성 답사를 마무리 지으며 내가 알던 것 이상으로 화성의 매력이 풍부하고, 대한민국의 문화적 역량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훌륭한 문화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을 유지하면서 활용을 잘할지는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수원은 가 볼 만한 장소가 아직 남았으니 좀 더 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