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현재와 미래
수원은 수원화성의 존재감이 유난히 크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도시에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그로 인해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다른 볼거리가 빈약한 게 아닌지 하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수원은 다른 볼거리도 충분히 많다.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분포한다. 수원을 대표할 수 있는 산인 광교산이 있으며, 정조 대왕 때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호수공원인 만석거와 서호공원(축만제)도 있다. 이곳에서 한가로운 산책을 거니는 게 가능하다.
수원에는 또 화교의 흔적이 유난히 짙게 남아있기도 하다. 흔히 인천이나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 화교들이 주로 분포해 있고, 그들이 몰려 있는 차이나타운 일대는 그 도시의 이국적인 색을 더하고, 주요 관광지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수원도 일제강점기 시절 경기도의 상업중심지 중 하나였던 만큼 팔달문 일대에 꽤 많은 화교들이 자리 잡았었다. 지금도 수원에는 화교 학교가 남아 있다. 수원역에서 팔달문 방향으로 가다가 세류로 가는 길에 접어들면 왼편에 한자로 쓰인 아치형 간판이 있는 학교가 보인다. 바로 수원 화교 중정 소학교, 즉 화교들을 위한 학교인 것이다.
▲ 수원에 위치한 수원 화교 중정 소학교 1946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로 수원지역의 화교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대만의 학제를 따른다고 한다.
1946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이고, 처음엔 수원 종로의 음식점 2층에서 처음 수업을 시작한 이후 인근 사찰로, 한국전쟁 시기에는 부산으로 학교를 옮겼다가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수 세대 전에 이주해 온 이들의 후손이자 국적이 대만인 화교들은 90년대 중국과의 수교 이후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중국인들과 결을 달리한다. 극변하는 한국의 현대사회에서 화교는 부동산을 마음대로 소유할 수 없었고, 오직 요식업에만 종사할 수 있는 차별을 받았다.
다문화 사회는 이제 되돌리기 힘든 시대의 흐름이고, 해외 이주민을 어디서나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수원은 안산에 이어 경기도에서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는 도시다. 수원에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음식점, 화상이라 적힌 맛있는 가게가 많다.
▲ 수원만두에서 먹을 수 있는 쇠고기 탕면 칼칼한 배춧국에 중화면을 넣어 만든 듯한 쇠고기 탕면은 전날 과음을 하고 해장하기에 알맞은 요리다. 수원만두에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메뉴다
그 대표 격인 가게가 수원 행궁에서 멀지 않은 수원 만두라 상호가 붙여진 중국집이다. 이름이 수원이란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줄만 알았는데 간판을 보니 '水原'이 아니라 장수를 기원하는 '壽園'이었던 것이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노포답게 실내는 빈티지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낡거나 허름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집의 특이한 점은 일반 중국집에서 먹을 수 있는 짜장면과 짬뽕이 메뉴판에서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이 집은 쇠고기 탕면이 특히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단단 탕면이란 음식이 나의 눈길을 끌어 두 개를 함께 주문했다. 쇠고기 탕면이라 해서 대만의 우육면과 비슷한 면요리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빨간 배춧국에 고기가 듬뿍 들어간 처음 보는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얼큰한 배춧국에 중화면을 곁들여 먹는 독특한 느낌의 탕면이었다. 술 한 잔 하고 나서 해장용으론 딱이다. 다음으론 단단 탕면이 나왔는데 확실히 탄탄면과 맛이 다르다. 비슷한 땅콩소스(마장 소스)가 들어가긴 하지만 정말 진한 땅콩 맛이 우려 나와서 담백한 느낌이다. 수원에 오신 분들에게 꼭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 효원공원 내에 위치한 중국식 정원 월화원 드라마 보보경심의 촬영지로 알려지게 되면서 월화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심상치 않게 늘어났다. 광동성과 경기도의 우호관계로 인해 생겨난 중국식 정원인 월화원은 계절마다 주는 아름다움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수원화성 다음으로 수원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가 어디일까? 수원과 중국의 인연으로 인하여 수원시청에서 가까운 인계동 효원공원의 한 구역에 아름다운 중국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몇 년 전 순천의 순천만 정원을 갔을 때, (순천만의 자연 풍광과 순천만 정원의 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관은 아름다웠지만) 구색만 맞춰 놓은 세계정원을 보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었다. 아무래도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려면 꽃, 나무 등 각종 조경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수원에 조성된 중국정원인 월화원은 그 구성이나 정성이 흡사 중국 현지에 온 듯하다. 다만 조경은 중국의 기후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현지 정원에 비해 손색이 없다. 월화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계동에 위치한 효행공원으로 가야 한다. 수원시청이 있는 인계동은 현재 수원의 최대 업무지구 행정 중심 지면서 주요 상권이 몰려 있는 거리다.
수원시의 중심 동네답게 거리도 구획도 반듯반듯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전형적인 도회지 풍경인 인계동보단 빨리 공원으로 달려가 그 유명하다는 중국정원을 보고 싶었다. 월화원에 가려면 우선 경기아트센터에 주차하고, 효원공원의 구역을 끝까지 가로질러 가야만 한다. 하지만 효원공원은 수원시청에서 근 거리에 자리한 만큼 수원시의 관리가 정말 잘 되어있는 깔끔한 공원이었다. 중간에 나무를 다양한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토피어리원을 볼 수 있는데, 분재와는 또 다른 형태의 조경이라 신선함이 가득하다.
바로 옆에는 한눈에 봐도 중국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월화원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 광둥 지방의 전통 양식을 본떠 만들어진 월화원은 2003년 경기도와 광동성이 체결한 '우호교류 발전에 관한 실행햡약'의 내용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전통정원을 상대 도시에 짓기로 한 약속에 따라 2005년부터 중국에서 건너온 전문가 80인의 손으로 지어졌다. 경기도도 광동성 광저우에 있는 월수공원 내 해동경기원을 조성했는데 담양의 소세원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월화원 정문에 들어서면 꽃문양의 녹색 유리창이 나 있는 흰색 담장이 가로막혀 있다. 우리나라 원림의 개방성과 다르게 중국정원 특유의 폐쇄성이 짙다. 정원 외부와 내부를 확실하게 차단해서 여기서부턴 확실히 정원 구역이라는 표현을 한 것 같았다. 담장 옆으로 돌아가 미로 같은 길을 통과하면 가운데 조그마한 연못을 중국식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중심 건물은 옥련당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데, 여기서 접대와 휴식의 장소로 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건물과 여기저기 피어있는 매화꽃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웠다.
▲ 월화원의 연못과 돌로만든 배의 형태를 띈 월방의 전경 월화원의 뒷편에는 연못이 있으며 연못의 주위를 돌때마다 월화원의 다양한 경관이 펼쳐진다. 특히 베이징 이화원에서 보았던 돌로 만든 배인 월방(석방)을 여기서도 볼 수 있던 점이 신기했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크게 감동이 없었지만 분재원을 지나 옥란당의 뒤편으로 가면 둥그런 연못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나 보던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연못 주위를 돌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들 꽃과 나무의 조화 군데군데 살아있는 디테일들.굳이 중국에 가지 않아도 중국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여기서 담아간다.
이화원에서나 보던 돌로 만든 배인 월방을 여기서도 보게 될 줄 몰랐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 장소에서 하염없이 머물고 싶었다. 연못의 끝 편으로 오면 연못을 판 흙으로 산을 만들어 그 산 정상에 세워진 중국식 정자 중연 정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본 월화원의 풍경이 절경이 아닐 수 없었다.
월화원의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새삼스레 여기가 아이유, 이준기가 출연했던 <보보경심 : 려>의 촬영지임을 떠올리게 했다. 꽃이 활짝 핀 계절에 다시금 월화원에 찾아 물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기고 싶은 곳이다. 수원에 온다면 화성 말고 월화원도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