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방도시는 왜 재미가 없을까?

노잼도시

by 운민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전은 노잼도시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대전에 가면 딱히 할 거리나 볼거리가 없어 결국 성심당에서 빵을 먹는 것으로 여행이 끝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농담은 성심당을 전국구 명물로 만들며 도시 마케팅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실상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대부분 지방도시가 ‘노잼도시’라는 자조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대전을 필두로 광주, 대구, 울산, 청주 등 각지에서 “우리 동네도 노잼도시”라는 고해성사가 경쟁적으로 터져 나왔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다면,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지 모른다. 도시 역시 학벌처럼 서열화되어, 예부터 전해지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은 여전히 현실의 무게로 다가온다. 지방 거주민들도 어쩔 수 없는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잼도시’라는 말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심심해서 노잼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서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일까. 혹은 그 도시만의 차별성과 자부심을 만들어 줄 요소가 부족하다는 뜻일까. 천 년 이상 도시 자체를 보존해온 유럽, 영주가 장기간 한 지역을 통치하며 정체성을 쌓은 일본·인도, 광대한 국토에 다양한 지역성이 살아 있는 중국과 달리, 한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해 왔다. 6·25 전쟁으로 파괴된 기반시설을 복구해야 했고, 서울 중심의 개발 열풍에 편승해 ‘빠른 성장’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적 상황이 도시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특히 강남 개발 신화는 한국 도시계획의 표준이자 유혹이 되었다. 사대문 안을 제외한 서울의 여의도, 목동, 노원, 더 나아가 경기도의 분당·판교까지 강남의 성공 방정식을 본떠 성장했고, 강남은 결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성공 모델을 전국의 도시들이 무분별하게 모방했다는 점이다. 광역시는 물론이고 인구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소도시까지 앞다퉈 ‘작은 강남’을 꿈꾸며 구도심 옆에 신도심을 조성했다. 시청, 교육청, 공기업, 방송국, 터미널 같은 핵심 시설들이 새 도심으로 옮겨 갔고, KTX 개통 이후에는 역마저 신도심에 자리 잡았다.


결국 원도심에는 쇠락한 주택과 전통시장만 남았다. 관광 자원을 기반으로 한 경주나 일부 항구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방도시는 개성이 사라진 붕어빵처럼 획일화되었다. 뒤늦게 원도심을 살리겠다며 선거철마다 공약이 쏟아졌지만 장기적인 전략 대신 단기적 시혜성 정책에 그쳤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었다. 신도시 역시 세월이 지나 다른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면 금세 구도심의 전철을 밟으며 낡아갔다. 인구마저 감소하는 지금, 지방도시의 쇠락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노잼도시’라는 낙인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지방도시 쇠락의 가속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바라보는 인식 전환과 지역민들의 자부심 회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서울과 차별화되는 정체성을 만들고,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유잼도시’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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