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민 Oct 06. 2020

경기 유랑 파주 편 4-5 (출판 단지, 영어마을)최종

파주의 정체성과 미래

여기서 멀지 않은 장소에, 한때 무한도전, 런닝맨 등 예능과 각종 cf, 드라마, 영화에서 단골 로케이션 장소로 쓰이기도 했던, 영어마을로 가볼까 한다. 현재 영어마을은 없어지고, 경기 미래 캠퍼스로 명칭이 바뀌어 간판은 변했지만 외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한때 사람들로 북 적거 릴 정도로 관광객이나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나 같은 호기심 많은 몇몇 사람들과 근처 주민들이 산책을 하러 갈 뿐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마을 곳곳에 자리했던 외국인 주민들도 전부 사라졌다.

내부는 얼핏 보면 영국의 어느 한 마을에 온 것처럼 이색적이었고, 조경도 아름다워 정말 바람 쐬러 가볍게 한 바퀴 돌긴 좋았다. 그렇지만 건물 내부는 공사 중 아니면 텅 텅 비워져 유령도시의 풍경이 이런 거구나 하는 쓸쓸함만 더해갔다. 한때는 영어마을의 메인 스트리트를 가로질려 다녔을 트램은 한구석에 방치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고, 촌스러운 현수막만 영어마을 곳곳에 걸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영어 마을의 실패 요인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엔 영어 교육에 정말 열광적이었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세계화에 뒤처진다는 우리만의 열등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구나 유추할 수 있었다. 영어를 원활하게 소통하는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는가 하면 예전에 모 교육위원장의 발언처럼 오렌지라고 표기하지 말고 원어에 가깝게 오뤤쥐라고 바꿔야 한다는 촌극도 있던 시대다. 영어 공교육의 광풍에 힘입어 여기 파주의 영어마을을 필두로 전국 이곳저곳에 영어마을이 세워졌던 것이다.

별다른 철학과 비전 없이 세워진 영어마을이니 계속되는 적자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굳이 영어마을에 가는 것보다 해외로 쉽게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은 우리 나름대로 소중히 가꾸어야 할 존재고,  영어는 정말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훗날  재개장을 하게 되면 정말 제대로 된 영어테마파크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옆에 위치한 헤이리와 함께 관광명소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파주의 마지막 목적지인 파주 출판도시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책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정말 기대가 많이 되었던 장소라서 남은 시간들을 책의 은은한 향과 함께 독서를 즐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한국의 어지간한 출판사와 출판 인쇄소의 반 이상이 여기에 몰려있고, 단지를 구성하는 각 회사의 사옥들을 보면 독특하고 야심적인 건축물이 많다. 헤이리 마을과 마찬가지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물에 한정해서 허가를 내주었기도 하고, 유명 건축 디자이너들이 도심이 아닌 교외지역의 특성상 건물 대지의 쓰임새가 좀 더 자유로운 이유도 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위치한 지혜의 숲 도서관이다. 출판사나 개인 미술관 등 단체에서 기증한 책들이 한데 모여 엄청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인문학 서적을 비롯한 컬렉션들이 충실하게 갖춰져 있고, 1,2,3 공간마다 조금씩 다른 콘셉트를 지니며 정말 나 같은 책 덕후는 정말 며칠이고 살고 싶은 그런 장소였다.

도서관 한가운데는 카페가 있어서 커피를 즐기며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지름신을 이기지 못해 옆의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지르고 말았다. 출판단지를 보며 나도 언젠가 책을 낼 수 있는 작가로 거듭나기를 염원했다.

운정신도시의 호수공원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내가 사 온 책 한 권을 읽으며 노을이 지길 기다리고 있다. 파주라는 넓은 도시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 도시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dmz로 상징되는 명소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이 거쳐갔던 장소와 묻혀있는 묘들, 출렁다리와 호수가 있는 자연적 경관 그리고 예술인, 출판인들이 이주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마을들........ 파주는 서울의 새로운 대안도시가 되기 위한 기다림의 도시일지도 모른다. 남북이 화합하는 그날이 오면 파주는 더욱더 뻗어나갈 그때를 기다리며 파주 여행을 마쳐본다.

작가의 이전글 경기 유랑 파주 편 4-4 (헤이리 예술 마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