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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22.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5-3 (그리팅맨)

연천의 종점

김포에서 시작된 평화누리길은 파주를 거쳐 마지막 지점인 연천으로 이어지는데, 연천 지역 대부분의 트레킹 코스는 임진강을 서쪽에서 동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부터 물길을 북쪽으로 틀며 민통선 부근까지 접근하기 시작한다.

임진강이 이제 북으로 올라가면서 민간인이 접근하는 마지막 지점에 눈길을 끄는 거대한 조형물이 멀리서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바로 앞쪽까지 갈 수 있었지만, 이대로 연천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조금 아까워 트래킹 코스를 따라 연천 최후의 만찬을 즐겨보려고 한다. 임진강 남한 최북단 댐인 군남댐 주차장에 차를 대고 트렁크에서 잠자고 있던 등산화까지 갈아신으며 준비를 단단히 해 본다.

아직 가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멀리 시베리아 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연천지역을 먼저 지나면서 산의 옷은 어느새 단풍잎들로 빨갛게 물이 들고 노란 은행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수자원공사에서 설치한 판망길을 따라 슬슬 걸어 올라가 보니 어느새 탁 트인 지점이 나타나고 산능성전망대가 나타났다. 가까이서 군남댐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데 북한에 위치한 황강댐의 방류에 대비하고 임진강의 홍수 조절을 위해 2010년 설치된 비교적 최근에 설치되었다. 규모를 크게 하면 북한지역도 잠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작게 만들어졌다고 하니 여기에서 얼마나 북한이 가까운지 알 수 있었다.

이제 한번 더 산을 넘어 목적지를 향해 좀 더 힘을 내며 가본다. 확실히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지역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주위를 둘러봐도 민가 한 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바나 한복판의 황량한 풍경 속에서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오랬만에 느껴지는 이런 조용한 평화를 맘껏 누려본다.

임진강이 흐르는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개안 마루를 넘어 마지막 목적지인 옥녀봉 위의 조형물이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상당한 오르막길이라 힘은 들지만 연천의 마지막 순간이 와서 아쉽기도 하고, 그동안 갔었던 장소의 기억들을 파노라마처럼 발 한걸음 한걸음 발자국에 새기며 조심스레 올라가 본다.

900M 20분 동안 땀을 적시며 옥녀봉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조형물 앞에 드디어 도착했다. 바로 옥녀봉 정상에 거대한 위용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인사를 하는 그리팅맨이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남북 관계가 극에 달했을 때, 유영호 작가는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미술가로서 조금은 해소시키고 싶은 마음에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엔 옥녀봉, 북쪽에는 마량산 정상에 그리팅맨을 설치해 서로 인사하는 모습으로 연출해보고 싶었지만 아직까진 여기 연천에만 설치되어 있다.

지금 현재 연천에만 설치되어 있는 그리팅맨이지만 결코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다고 본다. 북쪽에서 내려온 시원한 바람이 나의 땀을 식혀준다. 아마 북쪽 동포들도 같은 바람을 맞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잠시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연천 여행을 조금씩 되짚어 본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연천은 강줄기를 따라 사람 사는 이야기 독특한 자연경관, 선사시대부터 시작해 고구려의 기상과 신라 망국의 아픔, 고려의 옛 유신들과 왕이 모셔져 있는 사당, 남북 분단의 아픔까지 모든 시대가 겹겹이 쌓여있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연비경가 역사탐방도 같이 하면서 연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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