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의 횡설수설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팬데믹 시기 핑계로 운동을 안 한지도 일 년이 넘어간다. 코로나로 변하게 된 나의 많은 상황들에 나름 의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맘고생이 없었던 건 아니다. 평소 변화가 잘 없는 몸무게가 코로나 이후 4킬로 정도 줄었다. 은근 심적으로 힘듦의 영향이 있었던 듯하다.
힘듦을 힘듦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미숙한 편이다. 긍정적이라는 표현으로 잘 포장된 회피형 같다. 어차피 지나갈 것을 알기 때문에 깊이 보고 알고 싶지 않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집중할 뿐. 그래서 그냥 괜찮은 것 같고, 가끔은 안 괜찮은 것도 같다.
스페인은 지금 40대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빨라서 어쩌면 여름휴가 전에 2~30대까지 다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이 시기를 잘 보내 보려 했던 다양한 노력에 비해 이 핑계로 체력관리에 소홀했던 것 같다. 운동을 너무 쉬었더니 조금만 야외 활동을 해도 피곤함이 쉽게 온다.
자율적으로 운동을 하는 타입은 아니라 짐을 등록해 놓아야 하게 되는 편이다. 그렇게 지난 5년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운동을 나름 꾸준히 해왔다. 작년 3월 처음 스페인 국가 전체 자가 격리가 시작되고 두 달간 했던 홈 요가를 제외하고 딱 한번 야외에서 조깅을 한 게 지난 1년 3개월 동안 했던 운동의 전부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달은 운동을 등록할 생각이다. 조금씩 일상을 찾아갈 준비를 해야지.
팬데믹이 끝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함이 동시에 있다. 개인적으로 하던 일을 접어야 했고 그래서 다시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한다. 변화가 올 때는 항상 기대와 불안함이 동시에 온다.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들의 갭. 흥분되지는 않지만 안정감을 주는 현실적인 것들. 불안하지만 쫒고 싶은 이상적인 것들. 그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한 번씩 파도가 되어 덮친다. 호르몬 핑계로 또 잘 회피해 본다.
이 시기 동안 긍정적으로 변한 것들을 생각해 본다. 파도를 잠재울 효능이 좋은 약 중 하나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덕분에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 터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하고 싶었던 와인 공부를 집중해 볼 수 있었고 요즘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영상 편집도 해 보고 있다. 목적은 부수입 창출이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본업 외에도 수입의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 삶을 기록해가는 다양한 매개체들을 얻게 되었다는 부분이 지금은 더 크다.
투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름 저축을 꾸준히 해 온 덕분에 이 시기를 경제적인 이유로 무언가를 급히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직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은 이 분야에 지금이라도 눈을 뜰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직 젊다는 생각에 돈을 현명하게 잘 불리기보다 하고 싶은 일 벌이기에 관심이 많았다. 몸을 움직여 일 하고 일한 만큼 벌었던 지난 시간 그리고 그게 행복이라 여겼다. 경제적 자유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잔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혼자서 하는 것들이 익숙한 편이고 근자감도 좀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혼자서 하는 게 편하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더 좋다. 소수의 깊은 관계와 심플한 넓은 관계를 좋아한다. 만나면 즐겁고 편안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 싸움의 팽팽한 기운을 못 견디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과 얼추 다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관계에 조금 방어적인 면도 있다. 이번 시기에 조금 바뀌게 된 부분이 있다면 관계의 깊이를 나누는 방법과 함께 하는 이유. 방해하고 방해받는(?) 관계가 그리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적인 성향이 조금은 나사가 풀려 틈을 만들어 준 것 같다.
오늘은 많은 그런 날 중 그런 하루이다. 생각이 많고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앞으로도 종종 찾아 올 그런 날에 내 마음을 내어 줄 공간을 한번 만들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