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두신경통
"그게 그냥 그런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 미워할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옥섭 감독"
"제가 너무 미운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옥섭 감독이,
너무 좋았던 코멘트가
그 사람을 귀여워해보라고. - 배우 구교환"
"미국 여행을 할 때 2층짜리 버스를 탔어요.
어떤 여성 분이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는데,
냄새나고 싫었는데,
그냥 만약 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너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인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만약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려요.
-이옥섭 감독"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이효리 서울체크인 중에서
끈적이는 바람의 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풀냄새를 일으킨다
푸르름의 절정에서 나는, 끝없는 눈물을 맛보았다
마치 여름의 그것처럼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에서 유일한 나의 기록, 어느 날 후두신경통과 재회했다. 조회수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지만 누적 조회수가 9000을 향한다는 건,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지금 나도 아파요, 나도 그래요, 나도 그런 것 같아요."
"근데 2020년 글인데, 지금은 어때요? 다 나은 거 맞아요?"
남성분보다 여성분의 구독과 조회 비율이 높고,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걸로 보아 삶의 흔적이 쌓이면서 앓게되는 병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후두신경통 데이터란 게 이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기술이란 게 기록을 더 가치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근황이란 걸 더해보기로 했다.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스타놀이도 아니고.
[브런치북] 어느 날 후두신경이 찌릿하다면 (brunch.co.kr)
2021년을 되짚어봤다. 작년 봄, 주사지옥을 안겨주었던 동네 의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잠시 나와의 헤어짐을 고했다. 촘촘하게 만났던 물리치료사도 나와의 치료를 느슨하게 잡기 시작했다. 대신 한의원 침치료는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로 꾸준히 유지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 이야기 했죠? 90점 맞기는 해볼 만해도, 100점 맞기는 어려운 거예요.
이제 딱 그 정도니, 불안해하지 말고 한의원에서 풀어주는 시간으로 버텨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지난 해 서늘한 바람이 다시 불 때까진, 친절하고 살뜰한 한의사의 손길을 받았다. 약침을 메인으로 한 후 전기를 연결해서 나머지 근육들을 다독이는 방식이었다. 돌이켜보면 양방에서 정확한 타깃을 바로잡았고, 한방에서 여러 통증들을 잠재웠던 것 같다.
하지만 평생 한의원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면 이젠 좀 어디든 안 가고 싶었다.
뜨끔뜨끔한 증상도 한 달에 한 번 내지는 두 달에 한 번으로 잠잠해졌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겁먹지 말고 셀프 재활을 해보기로 했다. 물리치료사가 나에게 해준 방식들을 떠올리며 매일 스스로 뭔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미있는 건 회복도 장비빨인가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집에 들여보았다. 누가 그랬던 것 같다. 근육 옆에 신경도 있는데 근육을 풀어주면 신경도 함께 편안해진다고. 근막을 풀어주는 걸 지속적으로 하면 다신 이런 일을 안 겪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목과 뒤통수 부위를 따뜻하게 풀어줄 수 있는 찜질팩
- 딱딱하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 목의 C커브 상태로 고정해줄 수 있는 노란 베개.
(하지만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 오래 눕고 일어나면 안 통했던 피가 머리로 뻗는 상황이 벌어진다)
- 뒤통수 머리가 자라나는 뿌리 부분과 목의 경계를 깊숙하게 눌러대며 트리거 포인트를 찾는 하얀 괄사
(이건 글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유튜브에 후두하근을 풀어주는 요령이 나오니 검색해본다)
- 밖에서 어깨가 갑자기 뭉쳤을 때 빠르게 풀 수 있는 미니 마사지기(늘 충전해서 갖고 다닌다)
- 목 근막의 긴장감을 이리저리 이완할 수 있는 보라색 땅콩볼과 연두색 마사지볼
- 수시로 어깨 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검정색 마사지건(이건 무거워서 휴대가 어려움)
- 매일 빠지지 않고 이런저런 유튜브 영상을 보며 스트레칭에 사용하는 긴 폼롤러
늘 이것들과 난 하나가 된 것처럼 함께하고 있다. 제법 요령이 붙어서 머리가 아프기 직전의 느낌이 간파되면 바로 하던 것들을 멈추고 도구들을 총동원해 목과 어깨, 등에서 가장 아픈 부분을 찾아내 못살게 굴기 시작한다. 예전, 머리가 통증으로 쑥대밭이 될 땐 전조증상을 전혀 몰랐다면, 이젠 그걸 본능적으로 캐치한다.
혹시 밖에서 그 불안함이 다가올 땐 마사지볼이나 미니 마사지기, 괄사를 반드시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며 증상 완화에 온 힘을 쏟는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 신경 쓰이면 나름 깔끔한 상태를 가진 화장실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미팅을 하던 중이면 상대에게 이해를 구한다. 타인도 그 시간에 스트레칭을 하길 권한다. 지난 날처럼 아파도 참으며 뭔가를 하진 않는다. 느껴지면 일단 몸부터 생각한다.
설거지나 요리를 하는 등 고개를 앞으로 숙여야 할 때면 그 동작을 최대한 짧게 마무리한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할 때면 초반 세팅은 내가 하고 지속적으로 뒤집는 건 남편에게 부탁한다.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해야할 땐 스탠딩 책상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밖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면,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받침대를 사용한다. 그것마저도 없는 상태일 경우는 책을 받쳐놓거나 그 시간을 빠르게 끝낸다. 습관이 생긴 셈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때의 자세다. 엎드려잤던 나를 되돌려놓지 않으면 재발할 것이기에, 반듯하게 잘 수 있도록 어떤 베개든 어깨 선까지만 베고 고개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지도록 한다. 즉 목 뒷덜미 아래에는 베개가 없다. 스트레칭 된 상태로 잠을 자는데, 아침이 되면 알아서 베개가 머리에 와있다. 이 자세를, 잘 때 뿐만 아니라 집에서 스트레칭 하고프면 곧잘 이렇게 누워있곤 한다.
목빗근이라고 하나, 이 부분이 쭉 늘어나는 기분이 들면 약간의 쾌감이 생기기도 한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 흉쇄유돌근이 좀 더 늘어나도록 천천히 왼쪽 오른쪽으로 더 늘려보곤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길게 많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린 속도로 스트레칭을 하도록 한다. 참고로, 티비에서 어떤 전문가는 목에만 베개를 베면 되는 동그란 형태의 베개도 있는데, 처음이라면 그것의 도움을 받아도 될 듯하다.
목베개는 이동시에 꼭 착용하는 아이템이다. 비행기나 버스, 자가용 안에서 늘 목을 받친다. 목이 긴장을 느끼지 못하도록 언제나 구비한다. 더운 여름엔 좀 별로긴 한데, 가방 옆에 걸 수 있는 형태면 좀 괜찮다.
불편하긴 해도 이런 것들이 몸에 익숙해지니,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현재는 머리가 따끔하는 게 올해 6개월 동안 한두 번 있었나, 그것도 아주 짧게 한 번 정도로 지나가는 정도다. 그럴 땐 나의 몸이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앞에서 늘어놓았던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온찜질부터 시작하는데, 밖에서 온찜질 어려우면 핫팩을 하나 사서 긴장을 푼다. 그렇게 나는 작년 가을부터 한의원을 가지 않았다.
이걸 기념해야 하나, 벌써 2주년이 됐다. 이런 나의 모습을 정리해보면, 후두신경통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내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이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제약이란 게 생겼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이제 다시 꿈틀대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더불어 만약 다시 그런 일이 다가온다면 그땐, 정체가 어떤 건지 정도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에, 그날처럼 당하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는 용기가 만들어진 듯하다.
미웠고 슬펐고 고통스러웠고 처절했으며, 가혹했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감싸안아야만 감내할 수 있는 게, 후두신경통일지 모른다고 말이다.